슬랩스틱 첩보물이라. <쟈니 잉글리쉬>는 미스터 빈으로 잘 알려진 로완 앳킨슨이 영국비밀정보국의 한심한 정보원으로 나오고 호주 시드니 출신의 가수 나탈리 임브루글리아가 약간 한심한 연기를 한다. 악역을 맡은 존 말코비치는 한심한 프랑스 악센트가 섞인 영어로 연기를 펼친다. 어떤 의미로는 한심한 영화지만 그 한심함 자체가 이 영화의 핵심이다. 관객이 기대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만큼 그 한심함의 선을 설정하느라 무척 고심한다. 너무 한심하면 ‘한심한 영화’라는 소릴 들을 것이고 한심하지 않으면 그건 미스터 빈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상황은 슬랩스틱으로 설정하고 내러티브는 임무를 완수하여 영국 왕실을 지키는, 다분히 007스러운 방식으로 끌고 가는 혼합 전술을 택한다.
음악 역시 혼합 전술이다. 음악을 맡은 에드워드 쉬아머는 할리우드의 정통 오케스트레이션 사운드의 화려함 속에 B급의 느낌을 저속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잘 섞었다. 영화의 서두에 흐르는 음악이 그 특징을 잘 대변해준다. 팀파니가 자주 울려대는 웅장한 편곡 사이사이에 테크노적인 비트가 섞이고 그 안에 <샤프트>를 연상케 하는 리듬 기타 프레이즈가 녹아든다. B급적 요소들을 할리우드의 관현악 취향으로 포장했거나 아니면 그 반대든가. 포장재질을 ‘할리우드’로 생각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이것은 우리가 허구한 날 듣는 바로 그 영화음악일 뿐이야’ 하는 주장을 음악들이 순간순간 내뱉어준다. 주인공이 똥을 뒤집어쓰고 캔터베리 주교가 엉덩이를 까는 이 영화가 스스로 그렇게 말하듯이 말이다. 이런 음악적 혼합은 최근 많은 영화음악가들이 시도하는 것이지만 <쟈니 잉글리쉬>에서의 쉬아머만큼 자연스러운 방식의 결과물을 내놓기란 그리 쉽지 않다. 포장재질로서의 할리우드가 너무 강해 색깔을 완전히 잃는 수도 많다. 또 어색하게 섞인 경우도 있다. <매트릭스2>의 음악이 조금은 그처럼 어색하게 섞인 음악이다. 그러나 쉬아머의 음악은 교묘하게 잘 섞어 자연스럽게 들린다. 테크니션의 음악이다.
영화의 타이틀이 뜰 때 흐르는 로비 윌리엄스의 노래 <A Man for All Seasons>가 이 영화의 주제가라 할 수 있는데, 로비 윌리엄스의 노래 솜씨가 썩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노래. 로비 윌리엄스는 보이 밴드 출신의 가수라서 별로 대단한 뮤지션 대우를 해주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선입관을 버리고 들어보면 그의 노래가 보통 이상이다. 차분하면서도 노래의 감정선을 놓지 않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물론 그의 노래는 어둡거나 불안하기보다는 대부분 편안하다. 21세기형 스탠더드 팝의 전형이라고나 할까. 로비 윌리엄스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예전에 프랭크 시내트라 같은 가수가 풍겼던 약간은 속물적이면서도 관객의 마음을 즐겁게 물들여주는 분위기를 더욱 자기 것으로 만들어나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어쨌든 로완 앳킨슨-로비 윌리엄스-나탈리 임브루글리아. 영국의 관점에서 본다면 가장 대중적인 수준에서의 팝적인 결합이다. 거기다 여왕까지. 그 동네에서 흥행하기 위한 그리 어렵지 않은 수순이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