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어떤 모임에서 여섯명의 여자들이 자기 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대개 그 자신이 이미 엄마이기도 한 40대 초중반의 여자들이었다. 놀라웠던 건, 그 가운데 절반이 엄마에 대해 부정적인 기억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가장 극단적인 경우는, 원치 않는 아이로 태어나 엄마에게 자주 심한 매를 맞고 “천덕꾸러기는 잘 죽지도 않아”라는 악담을 들으면서 자란 이인데, 그는 언젠가 엄마에게 뼈아프게 복수를 하리라 별렀지만 막상 자신이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힘이 생겼을 때 돌아보니, 그 기세등등하던 엄마는 어딜 가고 쪼그라든 늙은이가 있더라 한다.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이라는 책을 보면 “서른이 넘었으면 자기 인생을 부모 탓으로 돌리지 말라”고 쓰고 그 아래 조그만 글씨로 “이 나이를 스물다섯으로 낮춰라”고 덧붙이고 있지만, 나쁜 엄마의 히스테리에 무방비로 노출된 어린 시절을 보낸 딸에게 엄마는 평생의 상처다.
그의 친구 가운데는 계모에게 그만큼 학대당하는 이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그에게 “너가 더 불쌍해”라고 말했다 한다. 계모에게 학대당하던 친구는 늘 세상을 저주했고 생모에게 학대당하던 그는 늘 자신을 저주했다, 는 얘길 듣고 보면 수긍이 간다.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우리는 수많은 계모이야기들을 갖고 있다. 그 가운데서 ‘장화 홍련’의 이야기만한 비극이 또 있을까. 콩쥐나 서양의 신데렐라, 백설공주, 헨젤과 그레텔, 백조왕자는 계모에게 시달림 받는 대표적인 캐릭터들이다. 하지만 모두 우화적 판타지들이고 결국은 동화적인 해피엔딩을 맞는다. 그에 비해 장화 홍련은 성인소설인 만큼 섬뜩하게 사실적이다. 계모의 음모와 저주 때문에 물에 빠져 죽은 자매의 이야기엔 소름끼치는 비극성이 있다.
계모와 딸 이야기는 봉건시대 여성수난극의 한 전형이다. 비극적인 가족스토리지만, 거기엔 아버지와 아들은 빠져 있다. 아버지는 집안의 지존(至尊)으로서 그 모든 자질구레한 시비들을 초월해 있으며, 따라서 무기력하기보다 무관심하고, 전처든 후처든 큰 상관없는 사람이다. 또한 계모에게 박해받는 아들 이야기는 없는데, 아들은 아버지의 직접관리 대상이며 호주승계순위로 봐도 계모와는 비할 바 없는 우월한 지위를 갖고 있다. 게다가 이들 남자들은 사회의 공적영역에 속해 있는 신분이다. 그러니 아이 딸린 남자에게 시집간 ‘팔자 드센’ 여자와 엄마 잃은 불쌍한 ‘계집아이’, 집안의 울타리에 발이 묶여 있는 이 비운의 여자들끼리 죽자사자 머리채를 움켜잡는 것이다.
그 모든 동서양의 옛날이야기들에 나오는 계모들은 하나같이 사악하다. 백설공주나 백조왕자의 계모는 심지어 마녀다. 물론, 병약해서 일찍 죽은 생모들은 선량하고 온순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이분법은 정직한 것일까. 그렇지 않을지 모른다. 나쁜 계모와 착한 생모가 엄마의 두 모습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모성이 갖는 애증의 양면성 가운데 생모가 ‘애’(愛), 계모가 ‘증’(憎)의 배역을 할당받은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그 고전의 시대에, 작가들에게 창작의 윤리였을 것이다. 모성의 신화에 도전하고 가족이데올로기의 뿌리를 흔드는 선동이 쉽게 허용되지 않았을 테고, 작가들도 ‘악한 계모, 착한 생모’라는 익숙한 패러다임과 타협했을 것이다. 생모인 엄마를 사악하고 잔인한 인물로 묘사해서 논쟁에 휘말리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생명체의 창조는 신의 행위에 해당하고, 그래서 모성은 거의 신화의 권위를 누린다. 잉태와 출산으로 시작되는 모성은, 그 관계의 원초성과 절대성에 비해 불안정한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벅찬 것이다. 엄마가 되기에 누군가는 너무 미성숙하고 또 누군가는 너무 어리다. 더구나 엄마가 된다는 것의 그 무한책임은 아찔한 애증의 벼랑을 품는다. 세상에! 사람을 낳아서 기르다니,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어쨌든 간에, 사악한 계모들이야 무수히 재생산되는 ‘콩쥐팥쥐’와 ‘신데렐라’ 버전들에 의해 응분의 처벌을 받고 있다 쳐도, 남의 죄까지 뒤집어쓴 무고한 계모들의 누명은 좀 벗겨졌으면 좋겠다. 게다가 이혼율 30∼40%의 시대, 도처에 새엄마, 새 아빠다. 계모 이데올로기도 전면적인 개보수가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세상의 모든 계모들은 나름대로 악조건 속에서 생존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그러니 이제, 계모들 좀 그만 괴롭히고 내버려둬! 조선희/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