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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를 보면서 살자고?<생방송 세계는 지금>
2003-07-02

KBS 2TV 매주 월~목 밤 12시 15분

한국 국민인 나는 세계 인구 상위 30% 안에 드는 행복을 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프리카의 굶주림과 에이즈, 중동의 총싸움, 남아메리카의 경제 붕괴를 생각하면 이 나라에서 태어난 것은 정말 다행이다. 1만달러대의 1인당 국민소득까지 누리고 있으니 “이렇게 우리 은혜로운 이 땅을 위해” “아∼ 대한민국”을 노래해야 마땅한지도 모르겠다. ‘자유 대한’에는 기아는커녕 에이즈 감염률도 지극히 낮다. 게다가 경제 개발에 정치 민주화까지 이루어냈으니 더이상 바라면 나쁜 놈이다. 나의 ‘안온한 하루’가 끝나는 자정 무렵, TV를 켤 때마다 나를 이 나라에 ‘떨궈주신’ 신의 축복에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매주 월∼목 밤 12시15분부터 20여분 동안 방송되는 KBS2TV <생방송 세계는 지금>(이하 <세계는 지금>)에서는 전쟁과 기아, 가난과 차별에 시달리는 지구촌의 절규가 생생하다.

<세계는 지금>의 카메라는 총성이 울리는 지구촌 구석구석을 찾아간다. 러시아의 폭격에 희생당한 체첸 여전사를 위한 자장가를 들려주기도 하고, 서방의 평화운동가들까지 죽이는 ‘킬링 필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참상도 전한다. 전후 이라크의 참상과 미군에 대한 반감도 놓치지 않는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초점을 맞추는 뉴스 프로그램의 국제 소식이 외면한 지구촌 현실이다.

<세계는 지금>이 끝날 무렵이면 나의 안온한 저녁이 조금은 불편해진다. 그리고 깨닫는다. 내전과 대량학살, 기아와 에이즈, 여성학대와 인종차별…. 세상의 모든 고통은 사하라 이남에 있다. 이 시대의 체 게바라가 살아 있다면, 검은 대륙으로 달려가지 않았을까. 반성도 밀려든다. 그리고 자책한다. 넌 뭘 하고 있니. 네 이웃의 고통을 동정하는 척하며 즐기고 있구나. 국경 너머의 고통에도 눈물 찔끔거리는 네가 뿌듯하니. 지구촌 뉴스가 시뮬레이션 게임 같니. 너는 감동의 하이에나구나. 네가 역겹다.

이처럼 뜨거운 국제뉴스는 나 같은 감동의 하이에나들에겐 어느새 시들해진 이 나라의 뉴스를 대신하는 대체 상품이다. 수만명 단위의 학살과 수십만명 규모의 기아가 끊이질 않는 국제 뉴스를 듣다보면 ‘먹고사는 문제’와 결정적으로 상관없는 일로 물어뜯고 싸우는 이 나라의 아귀다툼이 때때로 시시껄렁해진다. 이 나라 뉴스에 ‘무심한’ 나 자신이 저절로 합리화된다.

다시 <세계는 지금>으로 돌아가자. 이 프로그램은 참상을 넘어 희망을 전하기도 한다. 인구 상위 20%가 토지의 90%를 소유하고 있는 브라질의 현실에 저항해 버려진 땅을 무단 점거하는 브라질의 무토지 농민운동(MST)을 처음 방송한 것도 <세계는 지금>이었다. 브라질 무토지 농민운동은 멕시코의 사파티스타 농민군과 함께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선 가장 중요한 농민운동이었지만 한국의 뉴스 프로그램에서는 ‘없는’ 현실이었다. 브라질 노동자당(PT) 출신 상파울루 시장이 만든 기아 퇴치 프로그램의 일환인 ‘1헤알 식당’의 감동도 잊을 수 없다. 이 짧은 뉴스를 보면서 나는 좋은 권력은 가난을 구제할 수도 있다는 ‘희망’에 들뜨기도 했다. 학교의 인종차별적 교육내용에 반대해 아이들을 집에서 교육하는 미국 흑인들의 홈 스쿨링 운동, 독재정권을 비판하는 방글라데시의 시네마테크 운동….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는 세계 곳곳의 ‘작은’ 노력들로 가끔씩 나의 저녁은 따듯해진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현지 통신원들이 직접 만들어 보내는 ‘월드넷 리포트’도 이 프로그램만의 장점이다. 현지에 뿌리박은 이들이 만든 프로그램은 비행기 타고 날아가 뉴스를 급조하는 기자나 PD들이 빠지기 쉬운 국외자의 낭만적인 시선을 최대한 배제한다. 아마추어의 서투르지만 신선한 눈으로 그 나라 사람들의 땀과 웃음을 전해듣는 재미는 숙련공의 뉴스와는 다른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세계는 지금>이 끝나고 채널을 돌리다보면 KBS1TV에서 <한민족 리포트>를 만나게 된다. <세계는 지금>이 지구촌의 현실을 통해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행운을 타고났다면, <한민족 리포트>는 아무리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어도 결국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홍보다큐멘터리가 되는 숙명을 벗어나지 못한다. 소재 자체가 지구촌 곳곳에서 활약하는 한국인으로 한정되기 때문이다. <한민족 리포트>는 결국 ‘우리도 남을 도울 만큼 성장했다’는 아제국주의 자부심으로 이어진다. 이 프로그램에는 졸부까지는 아니어도, 급격한 계급상승을 통해 지구촌 중산층으로 편입된 ‘한민족’의 허위의식이 깔려 있다. <세계는 지금>을 통해 지구촌의 고통을 즐기는 심리 또한 역겨운 지구촌 중산층의 그것일지도 모른다. 기아퇴치 성금이라도 내야겠다.신윤동욱/ <한겨레> 기자 s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