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제3 |
세상은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서사의 중압을 탈피하라
과거사와 인간의 내면이 더이상 흥미롭지 않다면, 의미있는 건 지금 이곳의 사건일 뿐이다. 복잡다단한 인물들의 관계는 최소로 줄어들고, 남녀는 서로간의 옥신각신, 또는 티격태격 공방전으로 거의 모든 내용을 채울 수밖에 없다. 이것이 <엽기적인 그녀>가 나와 그녀 사이의 숨바꼭질일 수밖에 없는 이유, <옥탑방 고양이>가 주인님과 고양이의 쾌유적인 사랑놀이가 될 수 있는 이유이다. 여기서 구성의 미덕이나 심리적 깊이는 더이상 존중되지 않는다.
인터넷 소설에서는 결론이 중요하지 않다. 때로는 멈춰서는 이야기도 있다. 앞의 사건을 뒤의 사건이 따라붙거나, 앞의 원인이 뒤의 결과를 책임지는 일 등은 드물다. 촘촘하게 얽혀 있는 전체의 틀은 인터넷 소설과 그 영화들의 기준에서는 짊어질 필요가 없는 무게이다. 단지 유사한 양과 사건으로서의 에피소드들이 이들이 원하는 것이다. 벽돌처럼 쌓이면서 원한이 깊어간다거나, 의혹이 짙어가지 않는다. 매번 그회, 또는 그 다음회에 막을 내리며 그들 관계의 동등한 ‘다툼’의 장을 재구축한다. 영화에선 이 점이 한 공간을 구분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옥탑방 고양이>의 옥탑방과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2층집 공부방처럼.
물론, 그 에피소드는 단발적인 코미디의 영역에서 소재를 바꿔가며 큰힘을 발휘한다(현재 영화화되는 인터넷 소설 대부분은 유머 사이트에 올랐던 것들이다). <엽기적인 그녀>가 보여주었던 갑작스런 에피소드들, 그러니까, 소나기 패러디, 시나리오 상상 등이 그렇다. <동갑내기 과외하기>에 시도때도 없이 끼어드는 주변 인물들. 에피소드는 모든 전형성을 탈피하려는 의도로 차용된다. 올리고 싶을 때 올리고, 들어오고 싶을 때 들어오는, 그런 자유로움을 서사의 방식으로 차용한다. 영화는 그 논리를 따라 신을 나눈다. 따라서 전형적인 인과관계의 요구는 이들 사이에서 묵살당한다. 이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은 짤막한 에피소드를 통해서이며, 그건 그때마다 다른 시각으로 본다는 말이다. 전형의 서사가 강박으로 흐르는 바로 그 지점에서 유쾌하게 빠져나오는 전략을 꾀한다. 여기에 만화적 상상력이 서사의 허술함을 상쇄하는 무기로 등장한다.
명제4 |
만화적 세상을 찬미하라-이모티콘 혹은 만화적 상태에의 동경
인터넷 소설 영화화과정에만 만화가 개입했던 것은 아니다. <비트>는 만화주인공을 스크린으로 데려와 감정이입시킨 성공적인 캐릭터였다. 그러나 인터넷 소설과는 차이가 있다. 인터넷 소설의 특징이 무엇인가? 인터넷 소설의 출현을 영상세대의 소설쓰기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마치 인물들의 감정과 표정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이모티콘이 사용된다. 일종의 약호가 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모티콘은 영상으로 사고하는 과정에 만들어진 문자이다. 그러므로 그 이모티콘이 지배하는 소설을 영화로 만든다는 것은 다시 한번 영상과 문자 사이의 재협상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터넷 소설이 감정의 표현을 이모티콘으로 소화했다면, 그것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는 다시 이모티콘을 배우들의 표정과 반응으로 연출한다. 그런 점에서,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수완과 지훈의 표정은 영락없이 살아 있는 이모티콘이다. 이들의 연기가 서투르다는 건 올바른 지적이 아니다. 이들은 만화적인 연기를 하는 것이다.
인터넷 소설 중에서도 서술의 재치에 생명을 거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한 문장과 다음 문장의 행간을 이용하여 상상의 그림을 채워 넣도록 요구하는 작품들이 있다. 10대 작가의 작품일수록 그 수위는 더하다. 이들 행간에는 만화의 그림이 빠져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만화를 사이에 두고 인터넷 소설과 영화 사이에 이루어지는 협상의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는 셈이다. 만화적 동심의 테이블 말이다.
“휜 얼굴… 짧게 올려세운 노란 머리… 쌍커풀 없지만 큰 눈… 일본 혼혈아처럼 생겨 있었다… 일본 만화책에 종종 등장하는 반항아에 전형적인 얼굴….(-_-^)”_ <그놈은 멋있었다>
“야옹이가 3개월 동안 부산대 뒷문 근처에 있는 만화방에서 알바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T.T 아아~~ 그 산더미 같은 만화의 궁전… 만화책 베고 덮고 깔고 하던 그 꿈의 시절.”_<옥탑방 고양이>
에필로그 |
가능성과 한계
말하자면, 인터넷 소설의 독자와 그 영화화된 작품의 관객은 일치하는가? 또는 그 효과는 같은가? 그 사이에는 어떤 융화의 전략이 있지는 않은가라는 질문이 있어야 할 것이다. 무비캠의 김형준 이사는 “잘못하면 생뚱맞은 영화가 나올 수도 있다”고 말하면서 인터넷 소설 영화화 과정에 신중함이 필요할 때임을 지적한다. 여기서 생뚱맞음이란 여러 의미를 포함할 수 있겠지만, 우선은 관객을 자극하지 못하는 유효기간 지난 재료로 인터넷 소설이 사용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렇다면, 과연 인터넷 소설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그들의 경험에 바탕하면서도, 그 시기를 이미 훌쩍 넘어버린 관객의 ‘추억’까지도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 공감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 모색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몇 작품이 그러했듯 인터넷 소설을 영화화하는 작품들은 스토리를 보충하고, 또는 덜 엽기적으로 강도를 가라앉히고, 또는 다른 장르적 코드를 가용하면서 통합적인 모습을 띨 것이다.
지금까지 인터넷 소설의 영화화는 흥행적으로 실패한 적이 없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그 패러다임의 유효성에 따라 실패와 성공으로 분명하게 양분될 여지가 있다. 인터넷 소설의 영화화에 관한 제작자들의 하나같이 동일한 대답들이 오히려 그 점을 뒷받침한다. 아직 좌표를 잡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인터넷 소설의 영화화는 소재 마련의 용이함이라는 측면으로 쉽게 ‘가능성’이라고 불려서는 안 될지도 모른다. 이것은 현상이다. 조폭코미디가 코미디를 끌어들였을 때, 그러니까 <넘버.3>가 조폭을 코미디의 대상으로 만들었을 때 그것은 가능성으로 도약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당분간 인터넷 소설이 영화의 소재로 각광받을 것이지만, 우리는 그 첨가와 수정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수용의 좌표를 조정해야 할 것이다.정한석 mapping@hani.co.kr
현재진행형의 인터넷 소설들우리 수다가 영화로 된다구요? +_+///
(원작/원작자/제작사/진행상황)
■ 옥탑방 고양이 | 김유리 | LJ필름 | 시나리오 작업 중
반지하방에서 옥탑방으로 ‘위치 상승’한 25살 여주인님과 함께 사는 고양이 두 마리. 한 마리는 3kg. 또 한 마리는 70kg. 이 큰고양이와 동거생활. 남들 머리 위에서 옥신각신, 티격태격하며 살아가는 동거남녀의 이야기. 여주인님은 그를 야옹이라고 부른다. 텔레비전 드라마와 달리 원작에 비교적 가깝게 영화화할 예정.
■ 내 사랑 싸가지 |이햇님 |제이웰엔터테인먼트 | 시나리오 작업 중
“니가 아무리 싸가지가 없어도… 넌 내가 사랑하는 왕자님이야….” 싸가지 없는 것만 빼면 모든 것이 완벽한 안형준. 나(강하영)의 과외선생. 또는 옵빠. 대체로 그넘이라고 부른다. 10대 인터넷 소설의 신호탄.
■ 그 놈은 멋있었다 | 귀여니(이윤세) | BM&LP픽쳐스 | 시나리오 작업 중
10대 인터넷 스타 작가 귀여니의 고2 때 작품. 곱슬머리 파마, 별로 예쁘지도 않은 한예원, 잘생기고 쌈 잘하는 사대천왕 대가리, 지은성에게 맞장을 걸다. 일본 만화의 정서에 한국 여학생의 현실?
■ 백조와 백수 | 나영준 | 청년필름 | 시나리오 작업 중>
인터넷 소설계의 노짱. 끝이 ‘지’자로 끝나는 게임을 하며 만난 그놈 혹은 그 백수. 할 일없어 보이는 그 백조. 백조와 백수가 만들어내는 유쾌한 러브 스토리. 각각 백조와 백수의 시각으로 에피소드를 이끌어간다. <품행제로>의 이해영, 이해준이 작업 중.
■ 삼수생의 사랑 이야기 | 이원영 | 튜브픽쳐스 | 시나리오 작업 중
미대생 유니(이효리 캐스팅 확정)를 짝사랑하는 어느 음대 지망 삼수생의 짝사랑 이야기. 사랑에 대한 인터넷식 유머.
■ 색마전설 | 정성환 | 신씨네 | 시나리오 작업 중
하이텔 성인 유머난의 베스트셀러. 보험회사 대리인인 27살 조거봉과 노처녀 형사 오미란이 벌이는 ‘성적’ 사건들의 연속. 야한 대사, 야한 상상. 제목만큼 밝히는 그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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