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의 감독 조지 로메로가 게임 <바이오 해저드>의 광고를 맡은 건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좀비’라는 강력한 공통분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헬레이저>의 클라이브 바커가 게임 <언다잉> 제작에 참여한 것 역시 다재다능한 원작자의 개입이라는 의미에서 오히려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배틀 로얄>의 후카사쿠 긴지가 게임 <클락 타워3>의 총감독으로 나선다는 소식은 영 곱게 들리지 않았다.
<클락 타워>라면 모든 게임기를 통틀어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호러 시리즈 중 하나다. 작품성으로 평가받는 호러 시리즈에 유명감독의 이름을 슬쩍 걸어 흥행 대박을 노리는 것이 분명했다. 인트로 동영상을 보자 의혹은 더욱 짙어졌다. <클락 타워> 고유의 이미지보다는 원제작사로부터 게임 판권을 사들인 캡콤의 분위기만 물씬했다. 이래가지고야 <바이오 해저드>나 <사일런트 힐>과 차별성이 없어 보였다. 제니퍼 코넬리를 빼닮은 주인공과 카리스마 넘치는 가위 사나이가 사라진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캡콤 하면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제작사다. 흥행 게임사가 유명 시리즈를 사들여서 유명 영화감독의 이름을 걸어놓고, 자사의 기존 어드벤처 게임 제작 툴로 찍어낸 게임이라는 음모론이 수월하게 완성되었다. 불평불만 속에 동영상이 끝나고 게임이 시작되었다. 리얼타임 컷신이 시작되면서 조금씩 편견의 더께가 씻겨나가기 시작한다.
게임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게임 플레이와 컷신이 하는 역할은 각각 다르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게임 플레이가 추상적 즐거움을 준다면 잠시 패드에서 손을 떼고 구경하는 컷신은 게임의 구체적 내용과 이미지, 주제를 전달한다. 두 가지가 적절하게 조화될 때만이 게임의 재미를 온전하게 즐길 수 있다. 한창 액션을 즐기던 차에 어설프게 끼어드는 컷신으로 김이 새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컷신으로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지기만 하는 일도 흔하다. 반면 제대로 된 게임에서는 자연스럽게 삽입되는 컷신으로 지금까지의 게임 플레이가 정리되고 앞으로에 대한 기대가 고조된다. 이야기를 충분히 즐기고, 더이상 생각할 필요없이 다시 액션으로 뛰어든다.
<파이널 판타지>의 스퀘어가 추구한 ‘영화 같은 게임’은 영화적 이미지의 복제로서의 컷신이다. 이의 기반이 되는 것은 물론 놀라운 동영상 기술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스퀘어 게임에서는 게임 전체보다 컷신 자체가 더 중요시되는 듯한 느낌까지 든다. 반면 캡콤 게임의 컷신에서 두드러지는 건 단연 주인공이다. <데빌 메이 크라이>나 <카오스 레기온> 등에서는 세계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웅장한 이미지를 연출하는 것보다는 주인공이 근사하게 보이는 데 훨씬 많은 품을 들인다. 굳이 영화를 끌고 들어가자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보다는 홍콩 누아르쪽에 더 가깝다.
<클락 타워3>의 컷신에서는 게임이 영화와 일체화되는 시선이 두드러진다. 대부분의 게임에서 컷신은, 지금까지 플레이하면서 게이머가 쫓아갔을 시선의 궤적에 무관심하다. 그저 모니터를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만을 가질 뿐이다. 그러나 <클락 타워3>에서는 플레이 화면에서 게이머가 진행하던 시선이 컷신에서도 그대로 유지된다. 컷신이 시작되자마자 이질감을 느끼며 게임 속 공간에서 현실 공간으로 밀려나는 일이 없다.
후카사쿠 긴지가 실제로 게임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정말 이름만 내걸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클락 타워3>에서 발견한 것은, 이름의 후광이 아니라 그늘에서 조용히 이루어진 컷신의 진화다. 박상우/ 게임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