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쇠 팔, 무쇠 다리, 로켓 주먹!
어린 시절 <마징가> <짱가> 등 TV애니메이션이나 <로보트 태권 V> <썬더 버드> 등 극장용 애니메이션들을 보면서, ‘언젠가 저런 로봇들을 직접 조정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거대한 빌딩만한 로봇이 하늘을 날고 미사일을 뿌려대는 장관을, 과학이 조금만 발달하면 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가면서, 사람들의 그런 거대 로봇에 대한 환상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서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너무나 많고 내용도 뻔한 거대 로봇 애니메이션들에 식상해졌기 때문이다. 그러한 변화에 대응해서 나와 큰 성공을 거둔 것이 바로, 좀더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거대 로봇이 등장하는 <에반겔리온>이라고 할 수 있다. 전기가 끊어지면 움직일 수 없는, ‘무쇠로 만든 사람’ 아닌 생체병기의 등장은 신선할 수밖에 없었다.
재미있는 것은 90년대 들어 일본에서는 거대 로봇들이 차츰 인간적인 생체병기로 진화하는 동안, 미국에서는 전혀 상반된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바로 거대 로봇을 스크린에 담은 실사영화들이 제작되었던 것. 가장 대표적인 것이 1990년에 개봉된 <로봇 족스>(Robot Jox)다. 1985년 유혈이 낭자하는 가운데서도 폭소를 터뜨리는 색다른 공포영화 <좀비오>(Re-Animator)를 통해 일약 B급 영화계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던 스튜어트 고든 감독이 공포영화에서 벗어나 처음 선보였던 작품이 바로 <로봇 족스>였다. 세계 3차대전이 끝난 이후 전세계를 나누어 지배하게 된 두개의 세력이 과거와 같은 전쟁을 하지 않고, 거대 로봇을 만들어 그 로봇들간의 대결 결과에 따라 영토를 확장해나간다는 것이 기본적인 설정이다.
이 영화의 특징은 일본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거대 로봇의 특징을 그대로 실사영화에 적용했다는 것인데, 예를 들어 인간 조종사가 로봇 안에 들어가 조정하는 설정이라든가 그런 조종사를 어린 시절부터 양성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설정이 그렇다. 하지만 문제는 당시의 기술로 거대 로봇을 실감나게 스크린에 옮기기에는 한계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미니어처 장면이 등장할 때면 반드시 ‘피식’ 하는 소리가 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어색하고 조악해 보였던 것. 일종의 속편으로 3년 뒤에 개봉되었던 <로봇 워즈>(Robot Wars)도 그런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고, 1996년 만들어진 <로보 워리어스>(Robo Warriors)를 끝으로 결국 할리우드에서 거대 로봇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트랜스포머스>의 극장판 포스터.
<트랜스포머스>에 등장하는 로봇들.
그런데 얼마 전 <트랜스포머스>라는 로봇 애니메이션을 영화화한다는 뉴스가 퍼져, 인터넷의 관련 사이트들은 물론 로봇 애니메이션 마니아들이 흥분하고 있는 중이다. <트랜스포머스>는 1984년 9월부터 1987년 10월까지 미국에서 방영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로봇 애니메이션. 비록 제작 자체는 일본에서 수행되었지만, 대표적인 미국의 장난감 회사인 하스브로가 처음부터 미국의 어린이 시청자들을 타깃으로 기획한 애니메이션이라는 특성 때문에 뚜렷하게 차별화되었던 작품이다. 전쟁과정에서 외계의 두 로봇 세력들이 지구에 떨어져 트럭 형태로 위장해 살아가는데 악한 세력이 지구를 장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선한 세력에서 막아선다는 설정을 기본으로, 제목처럼 다양한 변신 로봇들을 등장시킨 것이 결정적인 성공의 원인이었다.
직접 제작사를 자처하고 나선 하스브로사는 <올리버 스톤의 킬러>의 제작자인 돈 머피와 <엑스맨> 시리즈의 제작 총지휘를 맡았던 톰 드산토를 앞세워 <트랜스포머스>의 실사버전 제작을 착수 중이다. 물론 아직 작가와 감독조차 결정되지 않았지만, 원작애니메이션의 설정을 그대로 유지하는 시나리오 초안은 이미 완성된 상태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과연 <로봇 족스>의 실패를 <트랜스포머스>가 답습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많은 의구심들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거대 로봇의 중량감을 어떻게 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할 것인가는 초미의 관심사다. 그에 대해 돈 머피는 큰 트럭들이 거대 로봇으로 변신하는 장면을 컴퓨터그래픽으로 제작해 실사 촬영된 사람들의 모습과 합성하는 실험은 끝났으면, 그 결과가 아주 만족스럽다고 밝히며 자신감을 표현했다.
그러나 설령 기술적인 문제가 다 풀렸다고 하더라도 넘어야 할 산은 더 있다. 특히 먼저 제작에 들어간 일군의 로봇 애니메이션, 실사영화들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부담이 가장 크다. 일단 <아이스 에이지>로 재미를 본 이십세기 폭스사가 제작 중인 컴퓨터애니메이션 <로봇>(Robot)이 가장 큰 경쟁자인데, 이미 이완 맥그리거, 할리 베리, 멜 브룩스, 스텐리 투치 등의 쟁쟁한 배우들이 목소리 연기를 하기로 결정된 상태다. 거기에 아이작 아시모프의 원작을 각색하여 윌 스미스를 내세워 지난 5월부터 촬영에 들어간 실사영화 <아이, 로봇>(I, Robot)도 비록 성격은 다르지만 잠재적인 위협 요소가 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위협 요소들을 잘 관리해 <트랜스포머스>가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를 보여준다면, 그것은 아마도 엄청난 일이 될 것이다. 그저 애니메이션 속에서나 가능했던 거대 로봇간의 전투장면이 실사영화에서 실감나게 그려진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흥분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봉이 예정된 2005년까지 전세계의 수많은 로봇 팬들이 <트랜스포머스>의 제작 진행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만화 출신의 슈퍼히어로가 아닌 애니메이션 속의 로봇들이 스크린을 점령하는 시대의 서막을 <트랜스포머스>가 열어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말이다. 이철민/인터넷 칼럼니스트
<트랜스포머스> 팬사이트: http://www.transformersnetwor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