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스타라고 할 만한 인물을 발견했다는 것이 만족스럽다. 나는 위대한 미국인이기도 한 인물을 발견해냈다.” 존 웨인을 영화 속에 기용하며 그에 대해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한 영화감독은 존 포드가 아니라 라울 월시였다. 사람들은 흔히 존 웨인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거의 반사적으로 또 다른 존(포드)의 존재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존 웨인이 미국영화의 전설이 된 것은 전설적인 포드의 영화들을 통해서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으니 이건 아주 자연스런 반응일 것이다. 그 점을 인정한다고 해도, 라울 월시는 존 웨인을 ‘발견’해낸 공헌이 그 누구보다 자신에게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절대 양보를 하지 않았다.
월시의 회고에 따르면, 그가 존 웨인을 ‘발견’한 것은 폭스 영화사의 촬영장을 걷고 있을 때였다. 그 당시 존 웨인은 스튜디오의 소도구 부서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건장한 체격을 가지고 힘차게 일했으며 독특한 걸음걸이를 보여주던 이 젊은이를 본 월시는 그 자리에서 자기 영화에 출연하겠냐는 제의를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이전까지 가끔 단역으로 영화에 얼굴을 비추곤 하던 그 젊은이는 난생처음으로 주연을 맡게 되었던 것이다. 월시의 <빅 트레일>은 무엇보다도 그뒤로 전설이 될 존 웨인의 존재가 ‘출현’하는 어떤 역사적 순간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먼저 기억될 만한 영화다(본명이 마리온 마이클 모리슨이었던 존 웨인은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세상이 알고 있는 바로 그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빅 트레일>에서 존 웨인은 우리가 흔히 그에 대해 갖기 쉬운 것보다는 훨씬 샤프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후의 영화들에서 확실하게 구축될 서부의 영웅이라는 이미지를 예고하는 듯한 인물로 나온다. 여기서 그가 맡은 콜먼은 서부를 가로질러 여행하는 개척자이자 자신의 친구를 살해한 자들을 잡으려 하는 일종의 추적자이기도 하다. 영화는 그가 동참하는, 희망의 땅을 찾아 미주리 강에서 시작해 멀리 오리건까지 향하는 사람들의 힘겨운 여정을 따라간다. 콜먼은 이 여정의 통솔자인 레드 플랙(타이론 파워)과 그의 동료가 비열한 살인자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심중에 품고서 수십대의 마차들이 이끄는 여정에 함께한다. 그러는 한편 콜먼은 캐머론(마거릿 처칠)이라는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에 빠진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개척자들에게 바친다는 자막이 나오는 것에서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듯이 <빅 트레일>은 그 여정이 개척의 정신을 찬양하는 과정과 동의어인 로드무비이다. 그 미국적인 정신을 제대로 찬양하기 위해서는 영화 속에서 인물들이 따라가는 여정을 희망을 품은 것이면서도 적잖이 고통스러운 것으로 그려야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영화는 일종의 시험의 순간들을 계속 제공해주는 식의 에피소드 구성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힘겹게 강을 건너야 하는 순간이 지나면 가파른 절벽을 내려가야 하는 또 다른 어려운 순간이 다가오고 그 다음에는 인디언들의 습격을 받아야 하는 위험한 순간을 맞이하는 식이다. 콜먼을 비롯한 영화 속 인물들이 그 각각의 역경의 순간들과 맞닥뜨려 ‘싸우는’ 과정들, 개척정신이 발휘되는 그 과정들을 영화는 장려한 스펙터클로 만들면서 동시에 영화의 내러티브 자체로 만들어낸다.
여러 인물들이 겪는 황야를 횡단하는 여정을 그렸다는 점에서 <빅 트레일>은 존 포드의 (그리고 존 웨인의) <역마차>(1939)를 떠올리게 할 법도 한데, 비교하자면 <빅 트레일>은 좀더 스케일을 넓힌 <역마차>라고 말해도 될 것 같다. 어쩌면 <역마차>와 유사하다고도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빅 트레일>은 좀더 많은 사람들을 포함하기에 필연적으로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캔버스 위에 옮겨놓는다. 그런 ‘확장’의 과정에서 <빅 트레일>은 <역마차>가 보여주는 것과 같은, 인물들 하나하나에 대한 관심과 응집력 있는 내러티브에의 관심은 뒤로 슬쩍 밀어내고 장대한 스펙터클 만들기에 공을 들인다. 비주얼과 스펙터클에 집중하는 이런 식의 영화적 추구는, 이것이 당시로는 드물게 70mm 대형화면의 포맷을 이용하려했던 ‘실험작’임을 생각하면 필연적인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빅 트레일>을 영화의 역사 속에서 기억하게 만드는 또 다른 중요한 요소인 그런 실험은 이 영화의 상업적 실패를 부추긴 면이 없지 않았다(당시 그런 실험에 대응할 만한 장비를 갖춘 영화관은 미국에서도 몇 군데 없었다).
다시 존 웨인의 이야기로 돌아와보면, <빅 트레일>의 상업적인 실패는 그를 아직 스타급 배우로 만들어주진 못했다. 이후 오랫동안 이젠 거의 잊혀진 싸구려 영화들에나 얼굴을 비춰야 했던 존 웨인을 정말이지 ‘구제’해준 것은 존 포드의 <역마차>였다고 봐야 한다. 홍성남/ 영화평론가 gnosis88@yahoo.com
The Big Trail, 1930년감독 라울 월시출연 존 웨인, 마거릿 처칠화면포맷 4:3 풀 스크린오디오 돌비디지털 2.0출시사 폭스자막 영어, 한국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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