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남의 위탁을 받아 진실하고 아름다운 것을 창조할 수 있나요?” 기자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감독 구이도는 말문이 막힌다. 그는 지금 최악의 상황에 몰려 있다. 아내 루이자는 습관적인 그의 외도와 거짓말에 지쳐 이혼을 결심했고, 경박한 정부 카를라는 공개 장소에서 그를 번번이 난처하게 만들며, 자전적인 이야기로 출발했던 신작 영화의 컨셉은 똑똑한 시나리오 작가에 의해 무참하게 난도질당한다. 제작자는 빨리 시나리오를 내놓으라 아우성이고, 기자들은 영화의 의미와 테마를 줄기차게 질문하며, 배우들은 맡은 배역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칭얼거린다. 삶이 파멸로 치닫는 것처럼 보일수록 환상과 추억은 더욱 생생하게 되살아나 그를 혼란 속으로 디민다. 정말이지, 이 모든 모호한 존재들에 정확한 얼굴을 부여한다는 것이 처음부터 가능한 일이었을까?
타인의 시선에 포박당한 자, 감독은 ‘영원히 땅으로 내려오라’는 무시무시한 요구에 따라 곤두박질친다. 그는 땅에 발을 디딘 채 타인에게 천상의 비밀을 알려주어야 한다. 그것이 그의 숙명이다.
하지만 남의 힘을 빌려 자기 이야기를 한다는 것, 가장 나답고 진실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라는 욕망은 어쩌면 환상 속에서나 실현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감독은 자신의 환상 속에서만 절대 군주다. 모두 내 규칙을 따라야만 해! 구이도는 채찍을 휘두르며 소리친다. 그에게 참과 거짓은 똑같다. 그에게 영화는 삶과 분리될 수 없다. 똑같은 희열이자 고통. 하지만 자신의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어하듯 그렇게 영화로부터 달아나려 하던 마지막 장면, 구이도를 엄습한 에피파니는 진심으로 감동적이다. 인생은 축제다. 인생은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타인을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구이도는, 그리고 ‘위대한 거짓말쟁이이며 광대’ 펠리니는 비로소 손을 내민다. 자신과 불화했던 모든 인물들에게, 그리고 관객과 평론가와 사나운 제작자에게 손을 내민다. 니노 로타의 음악에 맞추어 둥글게 춤을 추자구, 친구들!
커티스 핸슨은 “히치콕을 모르는 이에게 <이창>을 보여주라. 히치콕의 모든 것이 들어 있으니”라고 했다. 만약 누군가 “페데리코 펠리니가 어떤 감독이며 어떤 영화를 만들었나요?”라고 묻는다면 두말할 것 없이 을 꼽아야 하지 않을까. ‘영화는 놀이의 연장‘이라고 공언하며 모든 영화에 자전적인 흔적을 남겼던 펠리니답게, 창작의 위기에 몰린 중견감독의 갈팡질팡 모험담을 다룬 은 감독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카메라와 수많은 스탭들을 자신의 내면에 굴복시키는가, 그리하여 어떻게 영화는 온전히 감독의 것이 되는가를 웅변하고 있다.
작가주의라는 용어는 이젠 한물간 엘리트주의의 발로에 불과하다고? 그러나 은 예술가의 본질적인 나르시시즘이 어떻게 예술이라는 숭고한 미명으로부터 빠져나와, 우리의 부박하고 비천한 삶 속으로 스며들며 비로소 생생한 활력을 얻는지를 항변한다(펠리니 자신이 그것을 성취하지 않았는가). 영화는 그런 것이다. 삶처럼 덧없지만 불가사의하게 달콤한 경이로움으로 가득한 존재. 만든 이의 진심이 보는 이에게까지 전달되며 놀랄 만한 변증법의 화학작용을 거치게 되는 존재. 영화와 영화 만들기에 대한 펠리니의 절절한 고백서인 을 마주하는 순간, 당신은 정말로 영화와 다시금 사랑에 빠져버릴 것이다.
나와 그리고 당신들에게 은밀하게 간직되고 있을, 영화에 처음 매혹되어버렸던 순간의 경이로움을 떠올리며 진심으로 <페데리코 펠리니 박스세트>( <사기꾼들> <영혼의 줄리에타>와 펠리니 다큐멘터리를 한꺼번에 볼 수 있다)를 권한다. 김용언 mayham@empal.com
8 1/2 , 1963년감독 페데리코 펠리니출연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 아누크 에메,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바바라 스틸장르 드라마DVD 화면포맷 아나모픽 와이드스크린 1.85:1, NTSC오디오 돌비디지털 2.0 모노출시사 알토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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