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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회 시애틀국제영화제,그 낯선 풍경의 매혹 [1]

세상에! 이런 영화제도 있구나

감독 · 배우 7인과 함께 떠난 제 29회 시애틀국제영화제, 그 낯선 풍경의 매혹

마이크로소프트와 보잉의 ‘사령부’가 둥지를 틀고 앉아 자그마한 자기 고장을 먹여살리고 나아가 미국 경제의 한 핵을 이루고 있는 도시. LA보다 하루 일당이 높고 LA보다 안전도의 체감지수가 비교할 수 없이 높아 풍요의 기운이 감싸고 도는 도시. 그런 시애틀은 미국적이면서 비미국적이다. 1990년대 초반 그런지록으로 세계의 불온한 젊은이들을 잠시나마 들뜨게 했던 얼터너티브록을 배출했고,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 대한 가장 격렬한 반대시위로 무소불위의 신자유주의를 타격했다. 10만명 이상의 서명으로 법안제출이 가능한 주민발의안(직접민주주의가 시행되고 있다니!)으로 몇년째 세금을 동결시켜 주예산을 부족하게 만들 정도로 결집된 민의를 과시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아메리칸 스타일의 커피를 강렬한 에스프레소로 무릎 끓게 만든 스타벅스와 시애틀베스트의 산실이란 점도 어쩐지 이 도시의 풍모와 어울려 보인다(시애틀베스트를 흡수합병한 스타벅스가 초국적 기업이긴 하지만).

`당신은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을 것` 이라고 장담하는 듯 `노 데자뷰(기시감)`를 내세운, 귀여운 영화제 포스터. 지난해 관객 15만 6천명, 관객의 74%가 25~45살, 관객의 96%가 대졸 출신이란 데이터가 나와 있다.

<질투는 나의 힘> 등 14편 초청

200편을 훌쩍 넘는 상영 편수와 25일간의 행사 기간을 따져 미국 최대의 영화제로 꼽히는 시애틀국제영화제 역시 자기 도시의 취향을 갖고 있었다. 빌 게이츠와 공동으로 마이크로소프트사를 만든 폴 앨런의 개인기금이 가장 큰 후원이지만, 영화제는 주류적이라기보다 비주류적이다. 선댄스나 뉴욕영화제처럼 영화인들을 중심에 놓거나 심오한 예술가적 자태를 과시하지 않는다. 세계 3대 영화제처럼 경쟁부문에 권위를 부여하려 애쓰지도 않는다.

제29회 시애틀국제영화제(5월22일∼6월15일)는 올 행사의 최대 이슈 중 하나로 한국영화를 선정했고 비교적 큰 규모로 한국영화와 영화인들을 초청했다. 14편의 영화를 초청했고 이 가운데 모두 7명의 감독과 배우가 5월28일부터 6월4일까지 시애틀에 머물렀다. 박기용 감독(영화진흥위원회 산하 영화아카데미 원장)을 실질적인 단장으로 <동승>의 주경중 감독, <광복절특사>의 김상진 감독, <죽어도 좋아>의 박진표 감독, <H>의 이종혁 감독, <YMCA야구단>의 김현석 감독, <오아시스>의 배우 문소리씨로 이뤄진 ‘한국 대표단’은 영화제의 아리송한 면모에 한동안 어리둥절했다. 딱히 메인상영관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극장이 어느 한 거리에 모여 있는 것도 아니다. 평일은 오후 4시30분부터 상영을 시작하니 관객은 더더욱 분산된다. 한국영화인들은 ‘노(NO) 데자뷰(기시감)’라는 영화제 슬로건에 어울리는, 이제껏 볼 수 없었던 낯선 풍경 속으로 빠져들었다.

시애틀영화제는 철저히 관객을 위한 행사다. 영화인에 대한 배려는 그 다음이다. 기간을 한달 가까이 늘려 잡는 까닭도, 영화제의 가장 큰 시상부문인 ‘골든 스페이스 니들 어워드’(최고의 작품, 감독 등 6개 부문)를 관객의 투표로 뽑는 이유도 관객을 위한 서비스 정신에 있다(물론 ‘아시안 트레이드윈드’ 같은 또 다른 경쟁부문이 있긴 하다). 무려 20개의 섹션 및 행사가 열리지만 상영관 앞에 마련한 안내팸플릿은 ‘게이가 흥미를 가질 만한 영화’, ‘레즈비언이 흥미를 가질 만한 영화’ 식으로 구분돼 있거나 나라별로 요령껏 간추려놓았다.

가장 인기가 높은 프로그램은 ‘시크릿(비밀) 페스티벌’. 이 행사의 정체를 파악하는 데 꽤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이 부문에 관한 한 집행위원장부터 미국 기자까지 모두들 말을 아꼈다. 올해말고 지난해 혹은 그 이전에 어떤 영화를 상영했는지 누구에게 물어도 늘 “I can’t…”란 답이 돌아왔다.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30분에 예고되지 않은 영화 한편을 상영한다는 게 공식적인 정보의 전부다. 관객은 어떤 영화가 상영되는지도 모른 채 일찌감치 줄을 서고 “영화에 대한 어떤 것도 누설하지 않는다”는 서약서에 서명을 해야 한다. 심지어 언론조차 리뷰를 쓰더라도 ‘시크릿 페스티벌’에서 상영된 작품이라는 점을 밝히지 않는다. 갖가지 법적, 산업적 걸림돌에 묶여 있는 ‘문제적’ 영화들을 공공연히 즐기기 위한 안전장치다.

<죽어도 좋아> 상영시각과 겹치던 5월31일, 문소리씨가 대표단을 이탈해 시크릿 페스티벌에 어렵사리 동참했고 감동했다. “깔개까지 마련해 몇 시간 동안 극장 앞에 진치고 기다리는 관객 사이로 이상한 기운이 감돌았다. 극장 안에 들어서니 술렁거림은 더해졌다. 한 가족의 기괴한 성적 모험을 그린 <마이 마미 다이>란 블랙코미디였는데 순간순간 터져나오는 객석의 자지러진 폭소에 계면쩍기까지했다. 주인공 중 한명인 엄마는 성전환자였다.”(영화제쪽이 정보누설죄로 문소리와 <씨네21>을 다시는 초청하지 않을는지 모른다. 이 영화는 IMDb를 뒤져도 나오지 않는다.)

문씨는 “이렇게 경쟁적 느낌이 없는 영화제는 처음”이라며 “예술영화든 장르영화든 자기가 즐기고 싶은 영화를 고루, 자유롭게 볼 수 있는 이런 영화제가 우리에게도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찬옥 감독의 <질투는 나의 힘>을 불러들인 ‘워먼 인 시네마’가 지난해까지 독립적인 영화제로 존재하다가 재정문제로 시애틀영화제에 통합되고, UCLA가 책임지고 영화를 선정하고 필름 일부를 복원까지 한 홍콩 쇼브러더스사의 옛 무협영화들이 대거 상영되는 게 또 다른 특징이랄까. 시애틀영화제의 미국 내 위상을 확인해준 건 대표단이 귀국하기 전날 LA에서 날아온 <디 아더스>의 프로듀서 박선민씨였다. “예술영화를 배급하려면 뉴욕, 샌프란시스코에 이어 시애틀을 빼놓을 수 없게 됐다. 예술영화뿐 아니라 할리우드 스튜디오가 관객의 반응을 체크하기 위한 시험무대로서도 중요하다.”

매니징 디렉터이자 5명의 프로그래머 가운데 한명인 헬렌 러브리지는 “올해 시애틀의 발견은 단연 한국영화”라며 “특히 <오아시스>는 너무너무 판타스틱하다”고 했다. ‘신예 거장’들 부문에 홍상수 감독을 선정하고, ‘클라우드 킹덤’(Cloud Kingdom)이란 이름으로 한국영화 특별전을 마련한 당사자가 그였다. ‘포르티시모’에서 10년 동안 배급 일을 담당하기도 했던 러브리지는 “‘신예 거장들’ 부문에 캐나다, 독일, 프랑스 감독 등 3명이 들어 있지만 애초에 한국 감독들을 좀더 포함시켰다가 사정상 뺐다. 가장 중요한 인물은 물론 홍상수 감독”이라며 공공연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인터뷰 / 대럴 맥도널드 시애틀영화제 집행위원장“한국영화의 다양성과 완성도에 놀랐다”

대럴 맥도널드는 법학을 공부하다가 선택과목으로 영화산업을 들은 것이 계기가 돼 변호사의 길을 접었다. 시애틀영화제의 공동 설립자이며 90년대 밴쿠버영화제를 리디렉팅하기도 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노 데자뷰’란 슬로건이 의미하는 바는. 예전에 보지 못했던 것이나 익숙하지 않은 걸 보여주겠다는 의미인 동시에 우리와 함께 발견의 항해를 하자는 뜻이다.

시크릿 페스티벌에 대해. 이 영화제의 또 다른 재미이자 메인 파티다. 19년 전에 브레인스토밍을 하다가 미리 프로그램을 알려주지 않고 사람들이 즐기게 하되 모든 걸 비밀로 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법적문제를 살짝 우회해가는 방법이기도 하다. 표가 먼저 팔리는 등 호응이 가장 좋다. 어떤 비평도 접하지 않고 자기 눈으로 처음 접한다는 점에서 영화를 보는 가장 이상적인 상태가 아닐까 싶다. 발견의 맥락이란 영화제 지향과도 잘 맞아들어간다. 할리우드의 요청으로 테스트 상영을 하기도 하는데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가 그랬다. 그래서 감독들도 이 부문을 굉장히 좋아한다.

영화제 기간이 한달 가까이 된다. 일부러 세계에서 가장 긴 영화제를 만들려고 했던 건 아니다. 관객과 영화인들을 위해 그렇게 했을 뿐이다. 10일 안팎으로 열리는 영화제에선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 종일 시달리며 영화를 본다. 그러면 진정으로 영화를 감상할 수 없다.

한국영화 특별전에 ‘구름 낀 왕국’(Cloud Kingdom)이라고 이름 붙인 까닭은. 옛날 영국의 탐험가들이 한국을 다녀와서 표현한 말이다. 미스터리한 느낌인데 단어 자체가 한국영화의 역사를 잘 설명해준다고 봤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영화는 해외에 잘 알려지지 않았으니까.

각종 영화제에서 아시아영화가 유행이다. 유행이란 사그라진다는 점에서 비판적으로 볼 수도 있지 않나. 동의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시아영화에 아주 오래 전부터 관심을 보였다. 미이케 다카시,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를 미국에서 제일 먼저 보여준 게 우리다. 이건 재능과 관련있는 것이지 패션과 연결되는 건 아니다. 지금 한국영화는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지만, 10년 뒤에도 지금처럼 강력할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우리는 과거에 홍콩영화들에 정말 열광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뭐가 지금의 영화에서 중요한가 하는 발견의 문제이며 영화의 질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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