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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회 시애틀국제영화제,그 낯선 풍경의 매혹 [2]

인터뷰 요청, 세미나 개최 등 열띤 호응

최근 몇년 사이 각종 영화제들이 한국영화에 주목하는 현상은 새로운 게 아니지만, 러브리지를 포함한 시애틀의 시선은 한국영화의 예술성보다 장르의 다양성과 고른 완성도에 닿아 있었다. 러브리지는 “한국영화가 중국, 일본 등 다른 아시아영화보다 예술적으로 뛰어나다기보다 장르가 다양해지고 작품의 질이 옛날에 비할 수 없이 향상된 것이 한국영화만의 힘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시애틀 포스트-인텔리전서>의 영화평론가 숀 엑스메이커는 한국의 감독과 배우, 기자를 두루 인터뷰하는 정성을 보였는데, 그는 한국영화 DVD를 수북이 쌓아놓고 “90년대 이후 액션, 멜로, 호러, 갱스터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가 쏟아지고 그 기술적 완성도가 할리우드 뺨치게 높은데 그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혹시 할리우드에서 공부하고 돌아간 스탭들 덕분인지, 그리고 장르영화에 정치적 함의를 담는 풍조는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집요하게 캐물었다.

영화제가 열리는 동안 시애틀의 워싱턴주립대에선 아시아영화를 주제로 한 세미나가 열리고 있었다. 여기서 일제 시대 한국영화에 대한 연구논문을 발표한 브라이언 예시스 교수(오스트레일리아 울롱공대학)는 소속 대학에서 최근 한국영화들의 경향에 대한 강의도 진행 중이라며 “<공동경비구역 JSA> <친구> <번지점프를 하다> <나쁜 남자> <복수는 나의 것> 등을 보여주면 학생들은 질적 완성도와 흡인력 있는 이야기 구성에 놀라워한다”고 전했다. 예시스 교수는 <복수는 나의 것>에 대해 한국 관객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편집이 아주 놀랍고 아직 발견되지 않은 영화로 시간이 지나면 한국 영화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헬싱키필름페스티벌 프로그래머 아이자 니스카넨(자신을 일본영화 전문가로 소개했다)은 “지금까지 20여편의 한국영화를 봤는데 착한 주인공이 꼭 선한 면만 있는 게 아니고 우리 주변의 이웃들을 보는 것처럼 좀더 사실적인 면을 담는, 권선징악의 틀을 벗어나는 노력이 아주 좋아보인다”고 했다.

해외 관객 정서 파악 · 자아성찰의 시간

한국 영화인들에게 영화제는 깔아놓은 멍석일 뿐 진정한 즐거움을 외부의 눈길에서 찾지 않았다. 자신의 영화를 객관적으로 다시 바라보는 것, 관객이 어떤 대목에서 반응을 일으키며 동료들의 영화는 나의 것과 어떤 지점에서 차이를 보이는지 관찰하면서 다음 영화의 방향을 가늠하는 모습이었다. 국내 시장의 규모는 제한적이어서 어떻게든 해외로 나가야 하는데 해외 관객의 정서에 호응하는 게 어떤 것인지 확인하는 데 굉장히 유용한 현장이며(<동승>의 주경중), 저 감독은 저런 캐릭터가 있어서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는 걸 확인하면서 나의 개성을 어떻게 영화에 잘 담아야 할지 고민하게 됐으며(의 이종혁), 내 영화를 스스로 웃고 즐기면서 보기는 처음인데 두 번째 영화는 좀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걸 만들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고(<죽어도 좋아>의 박진표), 다음 작품에 몰입해야 할 때가 왔는데 여유를 가지고 내 영화의 장·단점을 따져보는 마지막 시간이기도 했다(<광복절특사>의 김상진).

늘 한산하고 여유로워 보이던 시애틀의 6월2일 오후, 이제껏 볼 수 없었던 많은 경찰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와 무장하기 시작했다. 얼마 뒤 대규모 시위 행렬이 거리를 누볐다. 매년 한 차례씩 전 지역의 경찰 수뇌부가 모여 비밀회의를 여는데 올해 그 행사가 시애틀에서 열리며 그에 대한 반대시위라고 영화제 스탭이 설명해준다. 피켓에 적힌 구호는 아주 다양했다. 이미 상황이 종료된 ‘노! 이라크워’도 눈에 자주 띄었다. 시애틀=글·사진 이성욱 lewook@hani.co.kr

인터뷰 / 피터 정 <애니매트릭스> 애니메이터“인간과 기계의 갈등을 뒤집어서 풀었어요”

DVD용으로 만들어진 <애니매트릭스>의 출시일을 불과 사흘 앞둔 5월31일 밤, 9편의 단편 전부를 한 차례 상영하는 행사가 열렸다. 열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상영 5시간 전부터 줄지어 극장 앞에 진을 치더니 <이온 플럭스>로 유명한 한국계 애니메이터 피터 정이 나타나자 환호성이 좀체 가라앉지 않았다. 줄곧 무덤덤한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했던 그도 관객의 ‘난리법석’에는 흐뭇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가 각본·연출을 맡은 <매트리큐레이티드>는 한국의 애니메이션 업체가 하청을 맡은 작품이기도 하다.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원래는 9편 모두를 일본 애니메이터들이 만들기로 돼 있었다. 3년 전에 <애니매트릭스>가 제작된다는 정보를 듣고 참여하고 싶어 워너브러더스와 접촉을 해봤으나 이미 감독이 다 정해진 상태였다. 한두달 뒤 워너에서 1명이 빠지게 됐다며 연락을 해왔다. 워쇼스키 형제를 만나보니 <이온 플럭스>를 보고 팬이 됐다며 한 작품을 맡기고 싶었는데 연락할 길이 없었다고 하더라.

작업은 어떻게 진행됐나. 워쇼스키 형제가 이미 4편의 각본을 써놓은 상태였다. 난 마지막으로 합류했지만 아이디어가 있으면 얼마든지 제안하라고 하더라. 그래서 세 가지 스토리를 내놨고, 그중 <매트릭스>의 컨셉을 뒤집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물론 2, 3편에 대한 정보는 단 하나도 받을 수 없었다. 인간과 기계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테마를 뒤집어서 풀었다. 기계의 관점에서, 양쪽이 공존하는 쪽으로(피터 정의 작품에선 인간이 아닌 살인기계에 ‘네오’의 이미지가 부과된다). 다른 애니메이터들과의 작업은 철저히 독립적으로 이뤄졌다.

워쇼스키 형제와의 만남은 어땠나. 워쇼스키 형제의 사무실에 들어가보니 <매트릭스>의 컨셉추얼 디자인을 담당한 만화가 조프 대로의 원화들이 벽에 잔뜩 걸려 있었다. 조프 대로의 만화 원화들 말이다. 오타쿠적인 냄새가 짙었다. 책장에는 과학과 컴퓨터 분야의 책들이 유난히 많았다. 둘 다 캐주얼한 스타일이었는데 (독서광인) 래리가 90% 이상을 말하더라. 프로듀서 3명을 포함해 그들과 함께 있던 스탭들은 존경을 넘어서 거의 숭배 수준이었다. 시나리오, 캐릭터디자인 등 워쇼스키 형제가 일일이 다 검증할 수 없어서 스탭에게 책임을 위임했는데 워쇼스키 형제의 컨셉을 무조건 보호하려고 너무 까다롭게 굴기도 했다. 물론 난 끝까지 싸웠다.

작품을 끝내고 나서 얻은 게 있나. 여러 면에서 좋았다. 우선 기술적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됐다. 이전까지는 2D로 작업했는데 컴퓨터그래픽을 실험적으로 많이 썼고, 새로운 이미지들을 만들어내는 데 유용했다. 또 평소 존경하던 일본 작가들과 직접 일을 한 건 아니지만 내 작품이 그들의 작품과 나란히 상영된다는 점에서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사실 <매트릭스>와 연결이 되니까 일반인들의 관심이 아주 높더라. 내 작품 중에서 이렇게 많이 알려진 경우는 없었다.

다음 계획은. 한국·일본·미국 등에서 공동으로 투자받고 제작은 한국에서 할 장편애니메이션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고민이 생겼다. <애니매트릭스>를 보고 다른 할리우드 스튜디오에서 실사영화와 함께 애니메이션 버전을 만들려는 경향이 생겼고 나에게도 제안이 들어온 상태다. 내 작품을 하고 싶은데 어찌해야 할지 생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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