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돌아버린 세상에 활력을 허하라!
활력연구소 `후보단일화 대소동`의 느슨하고 산만한 감독들을 만나다
지하철 3호선 충무로역에 가면 ‘활력연구소’라는 곳이 있다. 그 이름 탓에 혹자들은 여기에 전화를 걸어 “PC방인가요?”, “요가하는 곳 맞죠?”, “남녀 혼탕입니까”라고 묻는다. 이제는 그런 전화하지 말 것. ‘활력’은 시민들과의 소통을 위해 영상 교육프로그램과 라이브러리, 상영 시설까지 겸비한 공공적 성격의 ‘영상미디어놀이터’이다. 우리는 그곳에 ‘어떤’ 입소문을 따라 무작정 발을 디뎠다. ‘그들’이 ‘활력’에 자주 출몰한다는….
그러니까 ‘살짝 돌아버린’ 몇몇 영화들이 독립영화판에 출몰하는 것을 목격하면서도 처음에는 그저 무심코 지나쳤었다. 그런데 그 영화의 감독들이 ‘친구’라는(혹은 친구가 되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믿기 힘들었다. 철학서의 한쪽을 찢어다놓은 듯한 실험영화 계열의 영화에서부터 허구와 실재를 뒤섞어 ‘모조’ 그 자체를 전략으로 삼는 막가파 판타지까지, 그리고 독립영화의 전통적 다큐멘터리 수사학을 뒤엎는 반골 기질의 힙합성 다큐멘터리까지. 한 영화에서 다른 영화로 선을 이어볼 자신감을 상실할 만큼 그 사이들은 관계없어 보였다. 그래서 그들이 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 편집자
## 편하게 놀면서 소통하라
거점이냐고? ‘활력’은 ‘공동미디어놀이터’이다! 시작은 약간의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활력연구소가 배출한 감독들’, 또는 ‘활력연구소를 거점으로 하는 감독들’이라는 화두와 명단을 들고 충무로역에 있는 활력연구소를 찾았을 때, 정책실장 김완씨는 이곳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감독들 중 ‘후보단일화대소동’팀을 소개했다. 후보단일화대소동이라…. 미리 준비해간 ‘활력명단’과 거의 일치했지만, 일원 중 한명인 윤성호 감독은 오히려 되묻는다. “임권택 감독님 영화를 단성사에서 많이 상영했다고 그곳을 거점이라고 말하진 않잖아요?” ‘후보단일화대소동 프로젝트’를 처음 상영한 곳이 활력연구소이긴 하지만, 활력이 배출한 감독들이라는 식의 권력지향적 표현은 옳지 못하다는 수정을 받으며 ‘그들’과의 대화는 시작되었다.
그들은 활력연구소와 자신들 사이를 ‘느슨한 관계’라고 주장한다. 이들에게 느슨하다는 말은 나쁜 뜻이 아니라 상당히 중요한 관계를 표현하는 말이다. 지나가다 가방을 맡기거나 무작정 찾아와 “진짜 편하게 놀 수 있는 공간”, 또는 서울시와 운영비 문제로 집회가 있을 때면 달려와 참여해주기도 하는 “공동의 공간”. 바로 그런 상하의 위계가 아닌 자유롭고 수평적인 공동체의 관계가 유지되는 공간. 그 자유로운 ‘활력극장’에서 포스트콜로니얼리즘 세미나를 방불케 하는 열띤 토론과 일급 토크쇼 수준을 뛰어넘는 유머로 진지함과 유치함을 횡단하며 때로는 반박하고 때로는 동의하면서 이루어진 그들과의 대화.
## 활력4人 배후 공개
최진성. 1974년생. <뻑큐멘터리-박통진리교> <그들만의 월드컵>으로 독립다큐멘터리영화의 수사학을 흔들고 있음. ‘윤성호 감독에 따르면’ 집요한 정치적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감독이라는 세간의 당위적인 시선과 상관없이(!) 사적으로는 “섹스를 무척 좋아한다”고 함. 항상 대화의 중심으로 되돌아오도록 유도하는 ‘정리파’. 대한민국의 가장 큰 적은 ‘애국자’라고 생각하고 있음. 주위 사람들의 표현에 의하면 ‘독립다큐의 <딴지일보>’, ‘좌파 <VJ특공대>’, ‘회화식 진보주의 입문’(진보에 대한 이해를 쉽게 펼쳐준다는 의미에서)이라는 별칭을 얻고 있음. “<이소라의 프로포즈> 같은 착하고 순수한 프로의 프로듀서를 하는 것이 꿈일 때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 ‘세상이 좆 같다’는 걸 느끼고 ‘삐딱한’ 영화를 만들기로 작정.
윤성호. 1976년생. <삼천포 가는 길> <회화식 아줌마 입문> <중산층 가정의 대재앙>으로 영화와 세상이 갖고 있는 고정과 보수의 관념들을 마음껏 비꼬고 패러디하는 재주가 있음. 최진성 감독에 따르면, “섹스를 무척 잘한다고 함”. 스스로 엉터리 영화감독이라고 부르지만 ‘시민영상제’와 ‘서강영화제’의 프로그래머를 했을 만큼 영화에 대한 기본기가 탄탄함. 올해 영상원 전문사 연출전공 입학. 이상하게 영화를 욕하는 것보다 농구실력을 욕하면 더 화를 냄. 대한민국의 가장 큰 적은 ‘신자유주의’, 부수적인 적으로는 “현대는 무한경쟁사회 어쩌고저쩌고하며 합리적인 척하는 젊은 꼴통 수구들”을 꼽고 있음.
김선. 1978년생. 쌍둥이 형제 김곡과 같이 활동하는 영화집단 ‘곡사’의 이름으로 <반변증법> <시간의식> 등 일련의 “실험영화적인 내러티브영화”를 철학적으로 만들고 있음. 완벽주의자이면서 편집증 환자. 말하자면, 5분짜리 롱테이크숏도 마음에 안 들면 30테이크씩 가고, 영화를 찍고 나면 불만스러워 좀처럼 잠을 못 이룸. 한편, <반변증법>의 조연출을 했던 김동명 감독에 따르면 당일 입고 나온 ‘똑같은’ 티셔츠가 옷장에 수십벌이나 있다고 함(사진 참조하실 것). 영화는 매번 어렵게 만들면서도, 미스터 빈이 출연하는 영화 보기를 즐기는 취향을 지녔음. 최진성의 영화 <그들만의 월드컵>에 출연하여 ‘민족주의’의 폐악에 대해 일갈하는 모습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집에는 커다란 태극기가 걸려 있다고 놀림받음. 요즘 동료들에게 자신(들)의 영화가 관념적이라는 비난을 받자, 즉각 다큐멘터리를 할 것이라고 슬며시 꼬리를 내리기도 함. “폭파시켜버리겠다”는 핑계로 들어간 서울대 대학원에서 매번 한번도 빠짐없이 꼬박꼬박 페이퍼 제출하고 있음. 대한민국 사회의 가장 큰 적은 두말할 것 없이 ‘자본’. 곡사의 다음 작품 중에는 <자본당 선언>이 준비되어 있음.
김동명. 1978년생(참고로 남자 아님). <차원의 정의> <위상동형에 관한 연구>를 만들었고, 그 지향하는 형식은 <시간의식>과 매우 유사함. <위상동형에 관한 연구>가 인디포럼 개막작으로 상영됐다는 점에 못내 그 흡족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음. 이런 모습은 동료들에게 실망감을 주고 있는데, 왜냐하면, 처음 만났을 때 느낀 마치 세상을 등지고 자살이라도 할 것처럼 보였던 그 물욕없어 보이는 이미지와 상반되고 있기 때문. 현재는 결코 “자살 같은 건 못할 위인”이라는 굳은 평가를 받고 있음. 그러나 여전히 인터뷰 바로 전까지도 남산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하산했을 만큼 지적 독서광. “인문학적인 영화를 만든다”, “퍼포먼스 같다”는 동료들의 칭찬을 받기도 함. 대한민국 사회의 가장 큰 적은 ‘민족주의’.
왼쪽부터 윤성호, 김동명
## 우리는 집단이 아니다
‘후보단일화대소동’, 그 ‘초대안적’ 경제학을 보라! 이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같이 활동하게 된 계기, 또는 적극적으로 그 활동을 통해 나온 첫 번째 결과물이 바로 ‘후보단일화대소동’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이들을 가리키는 집단의 명칭이 아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이들은 스스로 “집단이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들이 고정적인 집단이 아니기 때문에 더 의미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단단한 결속력에 갇히기를 오히려 거부한다(이들은 자신들이 단일화되기를 혐오한다).
호칭상 ‘후보단일화대소동’팀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지만 이것은 지난 서울독립영화제 동안 이들이 펼쳤던 “초대안적 노점상 프로젝트”의 이름이다. “대안이 안 서기 때문에 초대안적”이기도 한 이 프로젝트는 6명의 서로 다른 감독들, 그러니까 주로 ‘10만원비디오페스티발’ 등의 영화제를 다니다가 뜻이 맞은 몇몇 감독들의 작품을 비디오 테이프 세개로 패키지화하여 판매했던 것이다. 배급사를 갖고 있지 못한 관계로, 내용물 복사에서 제목 스티커 붙이는 일까지 모든 공정을 자급자족하여 해결했다(여기에는 지금 군대에 있는 이창석 감독과 인터뷰 자리에 참여하지 못한 원숙현 감독의 작품까지 포함되어 있다). 일주일 동안 판매한 순수익금이 비록 각자에게 2만원씩밖에 돌아가지 않았지만, 목적은 돈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같이 만나 놀기 위한 구실”이기도 했고, 좀더 많은 관객을 만나기 위한 “소통” 전략이기도 했던 셈이다.
이상하게 들리는 그 명칭은 버스 안에서 김선 감독이 갑자기 생각해낸 것이며, 몇개의 다른 명칭들을 놓고 내부투표를 하여 결정했다고 한다. 정확히 노무현-정몽준 공조체제가 아직 결렬되기 이전이었다고 회고한다. 원래 쓰려고 했던 프로젝트의 제목은 따로 있었다. “환원불가능한 자폐적 퇴행.”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던 것은 아니며, 평론가들이 사용했던 말 중 도저히 어려워 이해되지 않는 문장들 중 하나를 고른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조롱의 뜻도 함의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초대안적 노점상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게 된 활력연구소쪽에서 올 2월 상영회를 제안했고, 뒤이어 내부 프로그램 중 하나인 ‘활력토크’까지 이어지면서 활력과 친분을 맺게 된 것이다. 그런데 ‘기발한’ 이들의 프로젝트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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