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하소연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1]

사회적 이슈도 편견도 내 앞에선 옷을 벗지요

팬클럽 회원 수 6만 육박하는 ‘청순한’ 에로배우 하소연 스토리

영화가 관음의 예술이라는 점은 이미 오래전에 동의된 명제다. 영화가 관음의 비즈니스와 만나면 이야기가 조금 복잡해진다. 고급과 저급의 상하관계가 생겨나고, 타의에 의하거나 자의에 의하거나 검열 장치가 작동한다. 배우 하소연은 그 공급과 수요의 양자 사이에서 이뤄지는 이중적인 역학관계를 폭로해주는 동시에 그 자신이 기묘한 위치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그는 끝내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P r o l o g u e

57019. ‘에로스타’ 하소연(21)의 공식 팬클럽 회원 수다(6월12일 기준). 팬클럽이 만들어진 지 2년이 채 안 돼 6만명에 육박하는 회원 수에는 방송사 관계자들도 놀란다.

정확히 1년 전, <한겨레21>의 ‘기자가 뛰어든 세상’ 꼭지를 통해 한 에로비디오 프로덕션의 촬영 스탭으로 합숙 제작에 참여했다. 그때 만났던 여배우들과의 대화에서 곧잘 허방을 짚었다. 공중파 방송이나 35㎜영화 같은 ‘메인 스트림’으로의 진출을 꿈꾸고 있지 않을까 같은 지레짐작. 희망이 뭔지를 묻는 말에 돌아온 답변은 너무나 현실적이었다. 커피숍과 갈빗집. 배우 생명이 길어야 6개월에서 1년이라는 숙명을 정확히 체감하고 있는 탓이었을까. 그들은 인터뷰에는 응하되 한사코 사진 찍기를 거부했다. 자칫 가족에게 알려질까 두려워서였다. 에로비디오는 ‘마니아’들만 보니까 노출이 상관없다면서.

하소연이란 배우는 그때의 목격담에서 한참을 비껴간다. 그는 자신이 에로배우라는 사실에 공개적이고 떳떳해한다. 또 데뷔 2년에 가깝도록 수명이 다하기는커녕 게임 캐릭터로까지 영역을 확장 중이다. 관능미보다는 청순미로 승부하는 이미지 컨셉도 색다르다. 존재하되 존재감을 무시당하는 ‘B급 무비’의 주인공을 그래서 만났다. 그런데 조금 당혹스러웠다. 그의 눈에는 희망과 낙관이 교차하되 ‘서글픈 냉소’가 머금고 있었다. 미리 고백건대, 이 글은 그와 그가 몸담고 있는 B급 세계에 대한 인상비평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 짧은 시간 동안 더듬어본 관찰의 주관적 기록일 뿐이라는.

키치의 세계

2001년 가을에 데뷔한 하소연이 그동안 출연한 영화는 15편. 이 가운데 그 자신이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꼽는 건 <동거>와 <깃발을 꽂으며>다. <동거>는 ‘신귀족주의’를 표방해온 클릭엔터테인먼트가 일본 AV(Adult Video) 제작사 ‘쿠키’와 합작으로 제작한 대작이다. “따로 연기지도도 받았고, 촬영기간도 열흘 정도로 길었고, 크레인 같은 고가 장비도 대거 동원됐다.” 클릭의 명성을 높인 이필립 감독이 연출한 화면톤은 여느 영화와 질적으로 차이가 난다. <가을동화> 같은 감성 드라마의 분위기를 제대로 풍기는 이 영화의 한 장면. 빨간 오픈 스포츠카 안의 남녀를 부감으로 잡았다. 하소연과 남자 파트너는 고급 승용차에 어울릴 만한 외모를 갖췄다. 그런데 대사가….

“입으로 해줘. 왜? 하기 싫어?”

“지금은 못하겠어요. 다음에. 미안해요. 그렇지만 호텔에 가면 하고 싶을지도 몰라요.”

“호텔? 꼭 호텔에 가야 되나? 모텔도 많은데.”

“남자들은 정말 이기적이에요.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여자를 유혹하면서 정작 여자가 허락을 하면 고작 4만원짜리 모텔로 데려가려고 하니 말이에요.”

화면의 우아한 색감에 비해 심각해 보이는 인물들이 만들어가는 대사나 상황은 너무나 ‘인간적’이다. 이건 조야하지만 취향에 따라 흥미를 느낄 수 있는 키치의 세계라고 볼밖에.

장갑차 사건을 일으킨 미군에 대해 성적 테러로 복수를 한다는 <깃발을 꽂으며>는 코믹에로물이다. 한국 배우가 분장해 등장하는 흑인 병사나 금발 여성은 코믹하기도 하고 기괴하기도 하다. 한때 등급보류 문제로 파란을 일으켰던 이 작품의 원제는 <태극기를 꽂으며>. 호스트바에서 대물로 인기를 끌던 남자가 뭔가 뜻깊은 일을 해야 한다는 정의감에 주먹을 불끈 쥐고 미국으로 떠나는 결단어린 뒷모습은 애교스럽다고 해야 할까. 단국대 연극영화과 출신의 공자관 감독은 로또 복권을 소재로 한 <로또걸>에서도 코믹에로를 선보였다(물론 이 영화에도 하소연이 등장한다). 사회적 이슈를 침대 위로 끌어오는 순발력은 기민하나 역시 키치의 선을 넘지는 못한다.

에로비디오의 업그레이드

기획부터 편집까지 보름이면 한편을 뚝딱 만들어내는 키치의 세계에서 하소연은 이질적인 존재다. 하소연의 캐릭터는 청순미와 백치미가 7 대 3 정도로 배합된 듯한 인상이다. <동거>에서 처음으로 섹스에 목말라하는 배역을 맡았을 정도로 수줍은 이미지의 캐릭터를 주로 맡아왔다. 소녀의 태를 벗지 못했으나 남성의 손길이 닿으면 거침없이 열리는 캐릭터는 남성의 판타지를, 관음증을 자극한다. 그를 둘러싼 이야기나 인물이 키치적일수록 이런 이미지는 더욱 ‘영롱’하게 빛난다. <깃발을 꽂으며>에서는 지성미를 더했다. 광화문의 실제 촛불시위 현장에서 취재기자로 동분서주하는 그의 모습은 잠깐이나마 이 에로물을 방송다큐멘터리로 착각시킬 만하다.

“섹시하고 도발적으로 보이지 않게 함으로써 돋보이게 했죠. 깨끗해 보이는 걸 트레이드 마크로 만들어갔어요. 기존 배우는 섹시함만 강조하려고 화장도 야하게 하잖아요. 저는 반대로 했어요. 화장도 안 한 듯 투명 메이크업으로 하고.”

하소연 본인이나 그의 전속사 클릭은 그의 이미지가 계산된 것이라는 걸 숨기지 않는다. “영화 시작하기 전까지 전 외모에 신경을 안 썼어요. 머리도 숏커트였고 거의 남자처럼 지낸걸요. ”

통념의 에로배우상을 거스르는 전략은 영화 바깥에서 동시에 이뤄졌고, 시너지 효과를 냈다.

“이왕 할 거면 무슨 나쁜 짓 하는 것도 아니고 떳떳하게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뭐든 공개적으로 나간 거죠. 오픈된 마인드를 가지겠다는 것, 이게 기존 배우들과 제가 다른 점이죠. 그래선지 ‘에로비디오를 어둡게 봤다. 이상한 사람들이 만드는 줄 알았는데 너 때문에 생각을 달리하게 됐다’는 식의 말을 자주 듣게 됐어요. 나 때문에 에로비디오가 업그레이드됐다는 말을 들으면서 처음에는 없었던 자부심도 갖게 됐고요.”

청순한 이미지가 계산된 전략이라면 ‘오픈 마인드’는 자연인 하소연의 기질에서 자연스레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고?

청순? No! 터프걸

오픈 마인드를 포함한 하소연의 매력이 ‘기획 작품’이라고만 볼 수 없는 게, 그는 사건이 터지면 자기 주장을 아끼지 않는 적극파다. 지난해 초 한 지역민방의 시트콤에 출연했다가 중도 탈락한 적이 있다. 문제는 외주제작을 맡았던 프로덕션의 태도였다. 제작자가 “하소연을 빼게 된 이유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연기력이 부족하여 수없이 NG를 내고, 그로 인해서 제작이 엄청 지연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빼게 된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히자 그가 발끈했다. 인터넷에 공개적인 반박문을 직접 게재하고 고소할 움직임까지 보였다. “너무 터무니없었어요. NG 내지 않는 배우가 어디 있나요. 제작에 차질을 빚을 정도로 NG를 내지도 않았고, 그럴 만큼 비중있는 배역도 아니었어요. 업그레이드를 하고 싶어서 출연한 건데 ‘에로배우가 공중파 나왔으면 됐지, 무슨 출연료냐’라는 말까지 듣고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어요. 그들이 나에게 바랐던 건 다른 거였어요.”

<깃발을 꽂으며>가 ‘심의’ 파동에 휩싸이자 역시 인터넷에 뭐가 문제인지 장문의 글을 올렸다. “사회적 이슈 거리를 코미디로 풍자해서 웃어보자는 것이었는데 어이가 없었어요. 화도 났고요. 35㎜에선 태극기란 단어를 써도 되고 우리 업계가 이 말을 쓰면 왜 안 되죠?”

그의 강단진 기질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는 지난해 가을 열린 제주국제울트라마라톤대회 출전기다. 정규 마라톤 코스보다 훨씬 긴 60km 부문에 도전해 12시간22분 만에 완주했다. “처음에는 30㎞ 정도만 뛰려고 했는데 뛰다보니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끝까지 달렸어요.”

고교 시절, 그는 왈가닥이었다. 고2 때 학급 회장을 뽑는데 담임이 자신을 추천하기에 왜 그랬는지 나중에 물었더니 ‘아이들이 네 말은 잘 듣지 않느냐’고 하더란다.

그는 이제 어려 보이는 것보다는 차분하고 성숙한 이미지가 더 좋다고 한다. 에로 비디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뜬금없이 물었다.

“다른 이들에게 대리만족을 주는 거죠. 자기가 하지 못하는 걸 대신 해주면서 즐기게 해주는 것. 맘속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눈으로 즐기는 게 더 낫지 않아요? 옷을 벗는다고 저질이라면 35㎜에선 왜 벗죠?”

대리만족의 대상이 된다는 게 기분 나쁘지 않은지 다시 물어야 했다.

“그걸 기쁨으로 삼아야죠. 마니아들을 위한 영화니까. 보시는 분들만 보고 안 보는 분들은 안 보는데.”

AV배우에서 35㎜로 진출한 홍콩의 서기를 염두에 두며 ‘역할모델’을 물었다.

“신은경씨요. 액션, 멜로, 에로 등 여러 장르에서 두루 잘하잖아요. 중성적인 이미지도 좋고. 나도 좀 중성적이잖아요. 아, 물론 중성적인 게 좋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고.”

서기는 어떠냐고 물었더니 “별로 인상적이지 않다”며 일축해버린다.

이중성, 그리고 갈림길

다음카페의 공식 팬클럽 회원 수가 6만명에 육박하고 하소연의 출연작을 구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문의가 자주 올라오지만, 정작 오프라인 모임에 얼굴을 드러내는 회원은 불과 10여명이다. 지난해 3월 하소연의 생일파티를 마치고 팬클럽 운영자가 올려놓은 후기 중 일부다.

“‘핫소스 2회 정모: 하소연 생일 party! 추카추카’라고 큼지막하게 써서 강남역 한복판에서 약 한 시간가량 들고 있는 만행을…-_-;; (나중에는 우리 팬클럽 식구들도 슬슬 저를 피하는 분위기…-_-;;). 하여튼 강남역에서 제일 이목이 집중되었던 시간이었죠…”

그때 모인 회원이 15명. 올해 생일파티에 참석한 수도 비슷했다.

“사회의 이중성은 저도 느껴요. 그러나 수의 많고 적음에 별로 개의치 않아요. 많이 나와도 부담스럽잖아요. 제 팬은 인터넷으로 활동을 많이 하는데 직장인이나 대학생이 일반 연예인들 쫓아다니듯 할 수는 없잖아요. 일반 연예인들을 쫓아다니는 건 중·고등학생인데 어린 학생들이 오면 밥만 먹여 보내요.”

하소연 자신은 별로 개의치 않아하는 눈빛이지만, 그가 전속해 있는 클릭엔터테인먼트 이승수 대표의 생각은 다르다.

“소연이에게 힘도 넣어줄 겸 정모 모임이 잘됐으면 해서 음식도 많이 장만하고 드레스도 따로 준비해주고 그랬는데 어찌 그리들 보이지 않는 데서만 즐기는지….”

팬들의 태도는 하소연의 ‘오픈 마인드’를 좇아오지 못하지만 그를 곤란하게 하는 진짜 이중성은 좀더 크고 강한 기류를 형성하고 있다. 그가 출연한 일련의 작품들을 시간 순으로 보면, 직접 옷을 벗는 경우가 갈수록 드물어짐을 알 수 있다. 주연에서 조연으로 비중도 낮아진다. 싫증을 내지 않게 하면서 망각의 여지를 줄여가는 스타 보존 전략이다. 새로운 출구, 즉 활동 범위의 확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데 그게 여의치 않다.

에로비디오 산업은 지난해 초부터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35㎜ 비디오 시장이라고 사정이 그다지 나은 건 아니지만 이쪽은 좀 심각하다. 지난해까지는 웬만한 제작사라면 손발이 맞는 감독을 데리고 월급을 주면서 영화를 찍었다. 지금은 그래서는 수지가 맞지 않는다. 최근에는 프리랜서 감독들이 500만원 정도로 후딱 찍어 유통망을 가진 제작사에 넘기는 극약 처방이 생겨났다. 일반적으로 하루 촬영 비용이 700만원 안팎이니 얼마나 날림으로 제작되는지 알 수 있다. 2천∼5천만원짜리 작품이 쏟아지던 시절은 과거지사가 되고 있다. 당연히 질은 추락하고 고객은 더욱 줄어들게 마련이다. ‘질’ 좋고 콘텐츠의 양에서 압도적으로 앞서는 일본 AV가 국내 성인물 시장을 잠식하리라는 건 명약관화다. 이미 편법이 자행되고 있다. 국내에서 제작·투자가 이뤄졌다는 서류만 있으면 베드신이 아무리 길어도 유통에 별다른 걸림돌이 없다.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