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자면, 이 글은 <니모를 찾아서>를 보지 않고 쓴 글이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니모를 찾아서>의 약 30분만 보고 쓴 글이다. 지나치게 개인적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밝히고 넘어가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밝힌다.
지난주에 이 코너를 읽은 독자들은 기억하겠지만, 필자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네살짜리 아들녀석 때문에 신물이 나도록 똑같은 애니메이션들을 반복해서 보아왔다. 그 속에 픽사의 모든 작품들이 망라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다. 문제는 바로 지난주의 그 칼럼을 쓰면서 ‘집에서 장편애니메이션을 지겹도록 봤을 정도면, 우리 아들녀석을 극장에 데리고 가서 <니모를 찾아서>를 보여주면 정말 좋아하겠군’이라는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다. 네살짜리가 극장에 가서 애니메이션을 본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이야기인지 아닌지를 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아들에게 극장이라는 곳을 경험시켜주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하루 휴가를 내서는 아들녀석을 데리고 와이프와 함께 <니모를 찾아서>의 더빙판을 상영하는 극장으로 향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도착한 극장에서의 시작은 예상보다 아주 훌륭했다. 일단 월요일에 그것도 더빙판을 상영하는 시간이라서 극장에는 엄마 손을 잡고 온 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아이들밖에 없었고, 아들녀석도 극장이라는 장소를 신기해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니모를 찾아서>의 초반부가 아주 흥미진진하게 진행되어 아들녀석도 집중하는 듯한 눈치였다. 하지만 시간이 20분쯤 흘렀을 때부터 상황은 돌변하기 시작했다. 몸을 비비 꼬며 엄마, 아빠를 번갈아 쳐다보는 아들녀석의 모습이 신경에 거슬리기 시작했던 것. 몇번을 무시하다가 조용히 “왜, 재미없어?”라고 묻자, 아들녀석 왈 “무서워요”. 물론 준비해간 과자와 각종 감언이설로 아들을 설득하려 노력했지만 모두가 헛수고였고, 결국 10분 뒤 우리는 어둠을 뚫고 극장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각설하고, <니모를 찾아서>는 내가 겪은 경험만큼이나 재미있는 뒷이야기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일단 아이디어의 시작점부터 그렇다. 감독 앤드루 스탠튼이 1992년 어느 날 캘리포니아의 벨레지오라는 곳에 있는 마린 월드 수족관에 아들과 놀러갔을 때, 5살짜리 아들에게 “이거 만지지 마라”, “그리로는 가지 말아라”를 연발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아버지-아들 물고기가 등장하는 스토리를 생각해낸 것이 그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어린 시절 공포의 대상이었던 치과에서 항상 보았던 커다란 어항의 기억이 합쳐지면서, 최초의 시놉시스가 완성될 수 있었다.
<니모를 찾아서>의 제작과정에서 나온 각종 스케치와 컨셉을 모아 출간한 <The Art of Nemo>
드림웍스에서 제작하고 있는 ‘상어 마피아 코미디’ 컴퓨터애니메이션 <Sharkslayer>
도리의 목소리를 연기한 엘렌 드제너러스와 감독 앤드루 스탠튼
하지만 그 시놉시스가 본격적으로 시나리오로 쓰여지기 시작한 것은 몇년이 더 지나서였다. 픽사에서 일하던 스탠튼이 어느 날 문득 커다란 고래와 작은 물고기가 그려진 스케치 한장을 자신의 책상 앞에 붙여두고는, 본격적인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던 것.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시나리오가 최종적으로 작품화 결정에 이른 것은, 거기서 시간이 더 흘러 앤드루가 <벅’스 라이프>를 공동 감독하던 때였다. 그 당시 어느 날 스탠튼은 픽사의 대표인 존 래세터에게 시나리오와 몇장의 컨셉 이미지를 보여주며 <니모를 찾아서>를 제작해야 하는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했고, 묵묵히 듣고만 있던 존 래세터가 마지막에 “그래”라고 한마디를 던졌던 것이다.
하지만 <니모를 찾아서>가 본격적으로 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드림웍스가 물고기를 등장시킨 컴퓨터애니메이션의 제작을 착수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위기감이 돌기도 했었다. <Sharkslayer>로 알려진 그 애니메이션은 마피아영화를 물고기의 세계로 패러디한 ‘상어 마피아 코미디’인데다가, 윌 스미스, 로버트 드 니로, 안젤리나 졸리, 마틴 스코시즈, 르네 젤위거 등 호화 목소리 출연진으로 인해 시선을 충분히 끌 것이라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슈렉>의 성공으로 드림웍스의 기세가 등등하던 시점이어서, 두 애니메이션이 맞붙을 경우에는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던 상황으로 보였다. 다행히 <Sharkslayer>가 2004년 11월에 개봉하는 것으로 결정되면서, 현재는 직접적인 경쟁을 피하게 된 상황. 오히려 드림웍스 입장에서는 <슈렉>으로 잡은 승기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 개봉 전까지 <Sharkslayer>를 한층 더 발전시켜 <니모를 찾아서>와 확실히 차별화해야만 하는 부담을 가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니모를 찾아서>가 개봉을 코앞에 두고 있던 얼마 전에는, 미국의 관상용 물고기 판매업체들이 집단행동으로 개봉을 저지하려 한 일도 있었다. 안 그래도 약 2400억원 규모(미국 기준)로 작은 시장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는데, <니모를 찾아서>를 본 이들이 관상용 물고기들의 처지를 불쌍하게 생각하고 구매를 줄이게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집단행동은 결국 실행되지 못했다. 그것은 <니모를 찾아서>가 오히려 어린이들에게 집에서 ‘니모’를 기르고 싶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분출되었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는 1996년작 이 개봉되었을 때 달마시안의 판매가 급증했던 사실이 제기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판매가 늘 것이라는 의견이 확산되자, 미국 어항/수족관 협회의 대변인이 나서서 ‘만약 판매가 늘게 되더라도, 대부분의 물고기들은 물고기와 환경에 모두 안전한 방법으로만 길러지고 잡힌 것들이 될 것’이라고 애써 강조하는 일까지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니모’라는 이름이 실은 <해저 2만리>에 등장하는 니모 선장의 이름에서 나왔다는 사실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디즈니가 <해저 2만리>의 DVD를 <니모를 찾아서>의 개봉에 즈음하여 출시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음모론이 제기되어 주목을 끌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에 대해 앤드루 스탠튼 감독은 ‘그저 바다와 연관된 느낌을 주는 이름으로 결정했을 뿐 의도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끝까지 항변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철민/인터넷 칼럼니스트
<니모를 찾아서> 공식 홈페이지 : http://www.findingnemo.com
<니모를 찾아서> 팬사이트 : http://www.magicalears.com/animation/Finding_Nemo
Animated-movies <니모를 찾아서> 사이트: http://www.animated-movies.net/FindingNemo.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