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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 반 산트 감독의 <드럭스토어 카우보이>
권은주 2003-06-19

천국의 문은 굳게 닫혀 있다

Drugstore Cowboy, 1989년감독 구스 반 산트 출연 맷 딜런EBS 6월21일(토) 밤 10시

“중독이라는 단어가 이미지, 신화 등에 관한 중독으로서 막연하게 사용되는 것은 위험하다. 중독은 그것이 제거된다고 할지라도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불안을 야기시키는, 심각한 증상을 뜻한다.” ‘중독’에 관한 전문가로 우리는 미국의 소설가 윌리엄 버로즈를 떠올릴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선구자로 칭해지는 그는 <벌거벗은 점심> 등의 대표작을 마약중독 상태에서 쓴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에도 버로즈는 마약에 관련된 독특한 견해로 세계 지성의 관심을 끌었다. 그는 <드럭스토어 카우보이>에 직접 출연한다. 버로즈는, 낮고 거친 목소리로 예언자 같은 자태로 등장해 거동이 불편한 나이임에도 특유의 입담을 과시한다. 이 정도면 존경심이 솟을 만하다.

마약중독자인 밥과 다이앤 등은 남의 물건을 훔치면서 떠돌이 생활을 한다. 이들은 약국에서 약을 훔쳐 환각제를 맛보는 것이다. 환각작용을 경험하며 도둑질을 일삼는 밥 일행은 차츰 중독증상이 심해진다. 어느 날 밥과 다이앤 등이 병원을 털러가자 혼자 남은 네이딘은 금지된 약물을 복용한다. 거처로 돌아온 밥은 네이딘이 싸늘한 사체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밥은 네이딘의 사체를 모텔 천장에 숨긴다. 상황이 악화되기 시작하자 밥은 자신의 삶에 대해 되돌아본다.

<드럭스토어 카우보이>는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첫 번째 성공작이라 할 만하다. 영화는 미국과 유럽 비평가들에게 고루 지지를 얻었고 구스 반 산트 감독은 이후 <아이다호>(1991)를 통해 ‘아웃사이더’ 들에 관한 표현에 남다른 재능이 있음을 보여줬다. 영화에서 맷 딜런이 연기하는 밥은 스스로 아웃사이더가 되길 택한다. 일하기도 싫고 단지 약에 취해서 하루하루 살기를 원하는 것이다. 동료가 약물과용으로 숨지고 남의 가게를 털어 생활하지만 조금의 죄의식도 느끼지 않는다. <드럭스토어 카우보이>에선 밥의 환각상태에 관한 묘사가 눈에 띈다. 몽롱한 구름 위에 떠 있듯, 그리고 세상의 모든 사물은 중력의 손길에서 벗어난 듯 그의 눈앞에서 흘러간다. 그것은 지상의 천국일까? 하지만 천국의 문은 오래 열려 있지 않다. 밥은 마약중독에서 벗어날 결심을 하고 그의 아내는 아주 짧게 반응한다. “당신 미쳤어?” 서로의 걸어갈 길이 갈리는 것이다.

<드럭스토어 카우보이>는 뛰어난 로드무비다. 대표작이라 할 만한 <아이다호>, 그리고 이후 철저한 상업영화였던 <굿 윌 헌팅>(1997)에서 변함없이 그랬듯 구스 반 산트 감독은 “길의 감식가”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는다. 밥 일행이 허름한 몰골로 거리를 떠돌아다닐 때 카메라는 그들의 시점에서 황량한 현실의 벽을 감지한다. 뛰어넘기엔 높고 가파르다. <드럭스토어 카우보이>는 여러 면에서 1960년대 미국영화를 닮아 있다. 마약과 청춘의 반항, 그리고 로드무비의 원형에 해당하는 <이지라이더>와 <보니와 클라이드>의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비서사적 실험영화를 보는 듯한 환각작용에 관한 장면 역시, 이 영화가 과거에 대한 ‘향수’에 어느 정도 의지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