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탑방 고양이> MBC 월·화 밤 10시
불장난의 계절이 돌아왔다. 여름의 옥탑방은 불붙기 좋은 곳이다. 36.5도의 체온은 옥탑방의 여름밤을 달구기에 충분하다. 후끈한 옥탑방에선 뜨거운 열정이 아니더라도 불장난이 벌어지기 십상이다. MBC 월·화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의 남녀주인공 경민(김래원)과 정은(김다빈)의 ‘하룻밤 실수’도 그렇게 시작됐다. 6월 첫쨋주에 시작한 <옥탑방 고양이>는 벌써 시청률 20%에 가까운 인기 몰이를 하고 있다.
마침내 안방 드라마에도 혼전동거가 찾아왔다. 2001년 여름 쿨이 “같이 삽시다∼ 살아 봅시다∼ 과연 우리 서로 잘 맞는지 어떤지를 한번 겪어보면 어떨지”라고 대한민국 청춘남녀를 꼬드긴 지 꼭 2년 만이다. 지난해 <한국대학신문>이 대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등에서 혼전동거에 대한 찬성비율이 절반을 훨씬 넘는 61.9%로 나타났지만, 말 잘 듣는 안방 드라마의 청춘남녀들에게 혼전동거는 지금껏 없는 현실이었다.
그러나 금기를 깨는 방식은 몹시도 조심스럽다. 예쁘지도 똑똑하지도 않지만 위풍당당한 정은이의 옥탑방에 노름빚에 쫓기는 잘생긴 수코양이 경민이가 뛰어 올라온다. 막무가내로 밀고 드러눕는 고양이가 싫지 않은 옥탑방의 주인은 “같이 살기는 하지만 그런 사이는 아닌” 동거를 허한다. 얹혀사는 고양이는 주제도 모르고 주인이 마늘을 까서 번 돈을 빌려 흠모하는 여인(혜련)에게 목걸이를 사 바치고, 새벽 신문배달로 번 돈을 훔쳐 구두를 사 신는 만행을 저지른다. 어색한 동거는 우연한 사고로 이어지게 마련. 고양이가 혜련(최정윤)에게 차이고, 정은이가 취업 면접시험에서 망신을 당하던 날, 드디어 사고가 터진다.
실의에 빠진 두 남녀가 순간 눈이 맞은 것이다. 고양이는 주인에게 “가끔씩 너 되게 예뻐 보여”라며 다가간다. 고양이에게 흑심을 품고 있는 주인은 그의 입술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다행히 정은은 고개를 돌리고 “너 나 사랑해”라고 묻지 않는다. 이때 옥탑방의 공기는 인생을 걸 만큼 무겁지 않다.
다음날 아침, 널브러진 옷가지 위로 자명종 시계소리가 쏟아진다. 알몸으로 등을 맞대고 누운 남녀는 사태를 파악하고 민망해 어쩔 줄을 모른다. 마주 앉은 아침 밥상에서 겉도는 이야기만이 오고 간다. 다행히 “처음”이라는, “책임지라”는 주책은 밥상머리에 오르지 않는다. 여러분들도 익히 아시는 ‘아가씨’는 이 사고에 대해 “어쨌든 둘 다 처음은 아니라는 것 아니냐”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둘은 아직 충분히 ‘쿨’하지는 못하다. 우연한 사고가 부담스러운 경민은 작별인사 없이 무작정 짐을 챙겨 옥탑방을 떠난다. 정은의 태도는 ‘책임지라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오락가락한다. 둘의 어정쩡한 자세는 이날 밤 친구들을 붙잡고 ‘내 친구 이야기’라며 자신의 하소연을 늘어놓는 것으로 드러난다. ‘작업’ 중인 여자가 따로 있는 경민이는 “성인남녀가 하룻밤 잤다고 책임질 수는 없지”라고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다. 정은이는 “남녀 사이에 그런 일이 있었으면 얼굴 맞대고 얘기는 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친구의 동의를 구한다.
가출한 고양이는 다시 사채업자들에게 쫓겨 옥탑방으로 돌아온다. 정은은 법대생인 경민에게 “네가 살길은 고시뿐”이라며 고시에 붙을 때까지 시한부 동거에 들어간다. 옥탑방 주인과 고양이는 “돈 버는 마누라 백수 남편 다루 듯”하며 아옹다옹 살아가고 있다. 섹스만 뺀 채. 옥탑방 주변에 정은을 구원할 백마 탄 왕자님 동준(이현우)이 나타나고, 혜련이 경민의 재능을 알아보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각관계가 형성된다.
하룻밤의 섹스로 출발한 <옥탑방 고양이>는 아쉽게도 본격 동거드라마로 나아가지 못한 채 윤리의 눈치를 살핀다. 혼전동거의 ‘앙코’인 지속적인 섹스가 빠져 있는 것이다. 드라마 첫머리에 나온 우연한 하룻밤은 이들의 물고 물리는 애정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장식으로 기능한다. 그래서 이들에게 우연한 섹스는 하룻밤의 추억이 아니라 하룻밤의 실수가 된다. 섹스가 독립변수가 되지 못하는 건전한 동거드라마. 이것이 공중파 드라마가 보여줄 수 있는 한계라는 듯. 그래서 옥탑방에 사는 또 다른 ‘아가씨’는 “근데 걔들 그뒤로 따로 자더라”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결국 이들의 발목을 잡는 것도 가족의 그림자다. 예쁜 여자만 보면 침을 질질 흘리는 ‘지병’을 갖고 있는 경민조차 서둘러 가정을 이루고 싶어한다. 그가 혜련이에게 끌리는 이유도 “엄마와 닮아서”이다. 경민은 조실부모하고 조부모 슬하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가족의 그림자를 지우고, 온전히 자신들의 몸과 욕망으로 밀고 나가는 혼전동거 드라마를 소화하기에는 이 사회가 너무 엄숙한 탓일까. 여름이 무르익을수록 옥탑방도 뜨겁게 불타오르길.신윤동욱/ <한겨레> 기자 s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