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고집불통에 무뚝뚝한 사람은 매력이 있다. 그런 사람은 실상 위태롭다.
강해 보이지만 어느 날 갑자기 사소한 것에 스스로 무너져버리는 그런 모습은 옆에서 보기 안타깝다. 그리고 이런 인물은 매혹적이다.
마치 조르주 상드의 <사랑의 요정>에 나오는 랑드리가 아닌 소심한 실비네처럼 말이다. 내 사촌동생은 결국 군대를 들어갔다(얼굴은 조폭, 마음은 소녀…. <엔젤전설>의 주인공 같음). 그 녀석은 군대 가기 전 친구들이 모여서 환송회한답시고 술을 마셨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단짝 친구가 같이 서울에 올라와 아직도 어울려 다니는데 사회계열과 공대계열로 갈렸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 친구, 다시 시험을 쳐서 지금은 사촌동생과 같은 학교 공대를 다닐 만큼, 짝꿍이 하나 있다. 이들은 서울에 올라온 촌놈들답게 자신들 분위기에 잘 어울린다며(?) 왕십리 시장통에서 만나 술을 마시는 듯하더니 그 둘에 꼭 그 친구의 여학생 친구까지 한명 붙어서 왕십리 삼총사라며 몰려다니는 듯했다.
그 여자애가 환송회 자리에서 ‘떠나니 섭섭하다’라고 말했단다. 동생은 ‘어차피 서로 모르던 사이이고 앞으로도 그럴 텐데 뭐가 아쉽냐’며 무뚝뚝하게 독설을 내뱉었단다. 그런데 그때 그 여학생이 눈물을 뚝뚝 흘리기에 자신은 영문을 몰랐다고 이야기한다. 나랑 이야기할 때도 녀석은 계속 고개를 갸웃거리며 걔가 왜 그런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내심 마음이 흔들렸던 모양이다. 그날 우리 3남매와 코가 삐뚤어지도록 마시면서도 계속 ‘왜 그랬을까’ 하며 혼잣말을 하고는 했다. 그리고 나중엔 급기야 ‘누나, 나 변태 아닐까?’라고 내뱉는 게 아닌가! 왜냐하고 물어보니 자신의 말에 울고 있는 그 여자애가 그 순간 좋았단다.
이럴 수가… 바보로군… 그게 너의 본마음이야. 넌 너 마음조차도 모르는구나. 이 바보야. 동생은 밤새도록 ‘난 바보다’며 혼잣말만 해대다가 결국 군에 들어갔다. 더운 여름날 한겨울에도 홑이불 덮고 자며 ‘어… 덥다’를 소리 지르는 러닝셔츠 브러더스였던 녀석이 이 더위에 얼마나 고생할까를 생각하며 <겨울의 심장>이란 영화를 떠올려본다. 클로드 소테 감독의 <금지된 사랑>(Un coeur en hiver), 다니엘 오테이유, 에마뉘엘 베아르가 나오는 영화로, 원제는 <겨울의 심장>인데 어찌된 일인지 출시는 <금지된 사랑>이라는 별 매력없는 제목으로 출시되었다. 나는 이것을 EBS에서 우연히 본 뒤 아직도 마지막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스테판(다니엘 오테이유)과 맥심(앙드레 뒤슬리에)은 악기를 제조하는 일을 하는 동업자이며 오래된 친구 사이다. 어린 시절부터 친구이며 같은 일을 하는 이들은 서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지만 사생활을 존중하며 일상적인 나날을 보낸다. 이들 사이에 어느 날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어쩐지 청교도적인 냄새를 풍기는 바이올리니스트 까미유(에마뉘엘 베아르)가 끼어들면서 이들의 일상은 깨어진다. ‘맥심’과 ‘까미유’는 서로 사랑하게 되지만 스테판은 어쩐지 그들을 못 마땅해한다. 그는 사랑 따윈 믿지 않는 차가운 심장을 가진 사람이다. 감동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자신이 친 방어막에서 쉽게 나오려고 하지 않고 사람과의 관계도 깊게 빠져드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 손쉽게 호의를 보이거나 하지도 않고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습게도 까미유는 맥심보다 스테판에게 점점 빠져들게 되는데…. 우디 앨런의 말처럼 ‘사람은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클럽에 가는 것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클럽에 가는 것’인지…. 마지막에 사랑에 좌절한 여자는 울고 나가고 남자는 눈을 껌뻑거리며 커피숍에 조용히 앉아 있다. 난 이렇게 줄곧 평화롭게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이럴 것이라고 생각이라도 하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 있다. 위태로운 것은 울며 나간 여자가 아니라 정자세로 가만히 앉아 있는 그가 위태롭다
이름하여 그대로 겨울의 심장인 것이다. 자기가 사랑하는 줄도 모르는 얼음의 심장 자기 자신의 마음조차 모르는 청춘들이 얼마나 많을까….
우리는 자신의 마음도 모르면서 섣부르게 기호에 휘둘리고 상식에 숨어 있고 평온함에 갇혀 있다. 동생이 그런 것처럼 외롭고 비겁하기 때문에 독설을 퍼붓곤 쉽게 자신의 사랑도 포기해버리며 짐짓 평화로운 체한다. 하지만 겨울의 심장이 아닌 여름의 심장을 가진 그 녀석은 다음날 아침에 거울보며 잠시 후회를 했겠지…. 혼자 중얼중얼거리며 말이다.
아… 지금쯤 훈련소에서 쨈버거에 농협우유나 마시겠구나. 동생이여 돌아오라 구릿빛 건강한 얼굴로 너가 울면, 우리 같이 울어줄 테다!김정영/ 영화제작소 청년 회원 · 프로듀서 sicksadworld@orgi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