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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못된 놈!` 해주세요,<와일드카드> 배우 이동규

무서웠다. <수사반장>이 방영될 때 악랄한 범인으로 출연했던 배우들을 볼라치면 슬슬 피했다는 동네 할머니처럼, <와일드카드>에서 ‘휭휭휭’ 쇠다마를 날려 길가는 시민들을 ‘퍽치기’로 죽였던 이 배우를 만나기 전에 아찔한 공포감이 엄습해 왔다. 퍽치기파 두목 ‘노재봉’은 그만큼 강렬한 역할이었다. 영화 홈페이지에 “때려죽일 ***”같은 감정섞인 글들이 올라오는 것도 무리가 아닐 만큼. 그러나 스튜디오로 들어서는 이동규를 보는 순간, 이 모든 생각들은 순식간에 날아가버리고 만다. 웃을 때 군데군데 골짜기를 만드는 사람 좋아 보이는 주름, 조용하고 나른한 말투, 좀체로 흐트러짐 없는 태도, 그를 구성하고 있는 많은 것들은 ‘노재봉의 것’이라고 믿기 힘든 것이었다. “강한 인상이라 그런지 오히려 조금만 바뀌어도 많이 바뀌어 보이는 게 제 장점이에요.” (웃음)

고등학교 1학년 때 연극반 생활을 시작했던 그는 우연히 동문극단의 조연배우가 사정이 생겨, 그를 대신해 공식적인 무대에 처음 오르게 되었다. “처음으로 무대가 큰 매력으로 다가온 순간이었어요.” 이후 야간자율학습도 빼먹고 저녁이면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고, 깜깜해진 마로니에 공원의 빈 무대에서 혼자 가상의 청중 앞에서 연기를 해보였다. 그리고 이런 바람들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의 입학으로 이어졌다. 사실 <와일드카드>에 앞서 그의 스크린 데뷔작은 김응수 감독의 <욕망>이다. 한 부부와 동시에 육체관계를 갖는 호스트바 남자 ‘레오’ 역할을 맡았던 그는 “6달 리허설에 2달 촬영”이라는 재미있는 프로덕션 과정을 거쳤다. “함께 공연한 안태건, 이수아씨 등과는 거의 합숙하듯 지냈어요. 한번은 밤새 열심히 술먹으면서 영화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는 지금 감독님을 꼭 만나야 한다’며 새벽에 김응수 감독 집에 쳐들어갔다가 야단맞고 쫓겨난 기억도 있죠.” (웃음)

<와일드카드>의 노재봉은 시나리오 단계에서도 전사(前史)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저 주민등록상에 없는 사람이라는 하나의 단서를 가지고 나름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상상해보기도 했지만 오히려 연기 중에는 크게 괘념치 않았다. “노재봉은 그냥 나쁜 놈이에요. 감독님은 ‘너를 잡을 때 모두들 희열을 느껴야 한다’고 하셨고, 저 역시 괜한 연민을 느끼게 해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역할이란 전체 영화를 표현하기 위해 잘 쓰여지면 되는 거 아닌가요?” 인물에 몰입되기 위해 늘 ‘쇠다마’를 가지고 다닐 정도였다는 그는 촬영을 준비하는 내내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사람들 뒤에 앉아 ‘이 순간 이 사람을 어떻게 쳐야지 한방에 죽을까?’ 같은 끔찍한 상상을 했다. “모든 사람들이 늘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여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배우라서망정이지 정말 퍽치기 살인자라면 이 사람도 바로 죽을 수 있구나 하는….”

이제 겨우 78년생, <섬>이나 <브레이킹 더 웨이브> 같은 영화를 좋아한다는 이 독특한 취향의 젊은이는 ‘내 연기의 원천은 즐거움이에요’라고 해맑게 웃는 또래 연기자들과 달리 “연기는 고통”이라고 말한다. “그로토우스키의 <가난한 연극>에서 보면 ‘배우는 자신의 전 존재를 바치는 것이다’란 말이 있어요. 전 먹고살기 위해 연기하는 게 아니라, 연기하기 위해 먹고사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렇게 고통 속에 한 배우가 자라나고, 그가 꿈꾸는 이상적인 연기라는 “보여주려는 연기와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연기의 간극이 제로로 좁혀져가는 ” 그 순간, 아마 관객은 이 젊은이가 던지는 쇠다마 한방 같은 연기에 얼얼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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