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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남 감독 신작,전설의 현장을 가다 [1]
이영진 2003-06-13

하루에 90컷! 남기남식 영화찍기의 진수를 보여주마

남기남 감독의 <갈갈이 삼형제와 드라큘라> 촬영현장 하이라이트 지상중계

전설의 남기남 감독을 아시는지. 속사(速射)로만 따지면 충무로에서 그를 따를 자가 없다. 1년에 무려 9편을 찍기도 했던 1970년대, 그는 짧게는 3일, 길어야 일주일이면 촬영을 끝마치곤 했다. 1989년에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10일 동안 영화 2편의 촬영을 끝냈다는 믿기 어려운 일화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외화 수입 쿼터를 따내기 위한 수단으로 한국영화 제작이 이뤄지던 시대이기에 ‘빨리찍기’의 대가인 그는 충무로의 총애를 한몸에 받았다. <평양맨발>(1980), <영구와 땡칠이>(1989) 등의 히트작을 내놓으면서 그의 주가는 한층 치솟았다.

하지만 1990년대는 그를 벼랑으로 내몰았다. 이후 10여년 동안 그는 9편의 어린이, 멜로, 코믹액션영화를 제작·연출했지만 번번이 미끄러졌다. 오직 빨리 찍기 위해 터득한 허술한 트릭은 더이상 먹혀들지 않았다. 그를 신봉해마지 않던 어린이 관객조차 그의 영화를 외면했다. 심지어 2년 전에는 전 재산을 영화에 상납하며 멜로영화 <너 없는 나>를 찍었지만 극장 개봉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노쇠한 카우보이의 운명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그는 다시 일어나 카메라를 잡을 수 있게 됐다. <개그콘서트>의 주역들을 이끌고 <갈갈이 삼형제와 드라큘라>라는 영화 촬영에 돌입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 한달 전. 여름방학 특수를 누리기 위해 긴급 투입된 그는 바쁜 개그맨들의 스케줄과 싸우며 일주일에 2번씩 드문드문 촬영을 진행하고 있었다. 3차례의 촬영만을 남겨두고 있던 현장을 뒤늦게 찾은 바로 그날, 그는 녹슬지 않은 ‘빨리 찍기’ 비법들을 하나둘씩 토해냈는데, 이를 두고 촬영장 한쪽에서는 “코미디야, 코미디”라는 코웃음도 흘러나왔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만의 속도전을 즐기고 있는 듯 보였다. 언젠가는 더이상 볼 수 없을 이 희귀한 촬영현장의 풍경을 여기, 지상중계한다. - 편집자

땡칠 아…, 아…, 하나 둘 셋. 마이크 시험 중.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남기남 감독의 <갈갈이 삼형제와 드라큘라> 촬영이 이뤄지고 있는 서울종합촬영소입니다. 오늘 촬영현장 중계를 위해 제 옆에 평소 남기남 감독의 팬인 영구(映口) 님 나와계십니다. 오늘 참 날씨 화창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남기남 감독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네요.

영구 맘이 편치 않을 거예요. 10년째 연패 아닙니까. 촬영이 없는 날 충무로의 한 다방에서 만나뵈었는데 어떻게 지내셨느냐 했더니 손사래를 치더군요.

땡칠 2년 전엔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멜로영화를 찍기도 하셨는데요. 개봉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건 어찌된 연유입니까.

영구 <너 없는 나> 말이죠? 본인은 지명도가 없는 신인배우를 기용해서 그런지 극장주들 반응이 썰렁해서 결국 개봉을 못했다고 그러더군요.

땡칠 이번 영화는 스타급 개그맨들이 총출동하니 좀 다르지 않을까요?

영구 그렇긴 한데, 스케줄 조정문제로 머리가 여간 아픈 것이 아니랍니다.

땡칠 풍문에 슬럼프에 빠지고 나서 남 감독이 한때 죽음까지도 생각했다고 들었습니다.

영구 90년대 들어 구단주(제작자)를 겸하면서 경제적으로 손해를 꽤 많이 봤어요. 9전9패. 그러면서 홀라당 까먹은 돈이 30여억원이나 돼요. <너 없는 나>는 특히 남은 재산을 모두 처리하고 임해서 아쉬움이 클 거예요. 박사과정에 있던 아들까지 공부를 중단했다고 그러던데.

땡칠 패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영구 어린이 관중의 기호를 정확하게 읽지 못한 것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90년대부터서 컴퓨터 게임이 등장하면서 어린이들의 넋을 빼놓았거든요. 80년대, <영구와 땡칠이> 아시죠? 시민회관에서 쭈쭈바 하나 물고서 ‘영구없다’를 연호하던 어린이들. 그 광경이 엊그제처럼 눈에 선한데 안타까운 일이에요. 다시 자신의 특기인 코믹액션을 들고 나왔다는 점에서, 이번 영화는 그에게 사활을 건 재기전이 될 것입니다.

땡칠 이번에 그에게 지휘봉을 맡긴 구단주는 누구입니까?

영구 개그맨, 리포터로 활동 중인 박승대, 아시죠? 박준형, 이승환, 정종철 등 갈갈이 3형제를 클린업 트리오로, <개그콘서트> 개그맨들을 몽땅 출연시켜 영화를 한편 찍어보는 게 어떨까 하는 기획을 갖고 있었는데. 학교 가랴, 학원 가랴 바쁜 어린이들이 좀 한가해지는 여름방학에 개봉 시기를 맞춰야 하다보니 영화 빨리찍기로 소문난 남 감독에게 의뢰를 한 것이죠.

땡칠 유명 개그맨들을 대거 스카우트할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군요.

영구 남 감독의 강점인 특유의 인화력도 작용한 듯 보입니다. 갈갈이 3형제의 일원인 이승환은 남 감독의 첫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고 말하는데요. 구단을 꾸리기 전에 미팅을 가진 적이 있는데, <개그콘서트>를 본 적 없을 것 같은 이 노장 감독이 자신들의 이름을 죄다 외워서 부르기에 기절초풍했답니다. 얕잡아봤는데 금방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하더군요.

땡칠 아, 드디어 남기남 감독이 촬영장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트레이드 마크인 검은 장갑은 오늘도 여전히 두손에 끼고 있군요. 아, 그런데 말이죠. 촬영 중에 욕설을 대단히 즐긴다고 들었는데요.

영구 배우들의 플레이가 맘에 차지 않으면 곧바로 한마디 하죠. “니네 그렇게 하다가 라면 국물이라도 얻어 먹겠냐?”라고.

땡칠 아, 말씀하시는 순간 욕설이 터져나옵니다. 못 들으신 분들을 위해 다시 한번 읊어주시죠.

영구 “내가 너희들 이 장면 끝나고 대갈통을 안 까부수면 개새끼다!”

땡칠 살벌하네요. 욕설 때문에 혹시 배우들이 주눅들거나 현장 사기에 영향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보십니까?

영구 지금 분위기 보면 아시겠지만, 남 감독이 욕을 퍼부어도 다들 싱글벙글합니다. 스타일을 익히 들어 알고 있는 터라 욕을 먹어도 웃죠. 진심이 아니라는 걸 다들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옥동자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정종철은 아예 시시때때로 남 감독의 성대모사까지 해요. 완전히 똑같다니까요. 한 구단 관계자는 남 감독의 욕이 현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추임새 같다고 합니다. 뒤끝이 없어 오히려 좋다는 선수들도 있습니다. 사실 후배감독들 중에선 말 못하고 끙끙 앓다 나중에 아쉬웠다, 서운하다 뒤통수치는 경우도 많거든요.

땡칠 말씀하시는 순간, 카메라 돌아갑니다.

“자, 슛 들어간다. 조용! 오라이. 레디∼잇 고∼우!” 목청이 참 좋지 않습니까. 청천벽력이에요. 60이 다 되어가는데도 양수리 골짜기가 쩌렁쩌렁 울립니다.

땡칠 비결이 뭡니까?

영구 누군가는 수시로 기차화통을 삶아드신다는 말을 하긴 합디나만….

땡칠 레디 고를 부른 다음, 곧바로 ‘컷’이 나오네요. NG가 난 겁니까?

영구 보통 남 감독은 ‘한방에 가자’ 주의예요. 야구로 말하면, 무조건 초구를 노리라고 주문을 하는 식이죠. 이번에는 스틸기사의 머리가 그만 카메라 앵글에 걸려서 NG가 나긴 했습니다만.

땡칠 아, 그러는 동안 남 감독, 김다래와 권진영에게 무슨 지시를 내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내용입니까.

영구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박준형과 함께 우비 3남매로 유명세를 얻은 김다래와 권진영 선수는 이번 영화에서 마을 대감의 외동딸, 몸종으로 각각 나오는데요. 아직까지 영화출연 경험이 없는데다 코믹한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남 감독이 “정극 배우처럼 연기해야 한다”고 거듭 주문하는 것 같습니다. 드라큘라를 물리친 갈갈이 3형제가 마을을 떠나는 것을 두 여인이 슬픈 눈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장면이니까요.

땡칠 과연, 두 배우가 감독의 기대를 단번에 소화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라고 말하려는 순간 오케이 사인이 나오네요. 레디 고 부른 다음 눈 깜짝하니 컷이에요. 아, 정말 전광석화입니다.

영구 일사불란하죠. 테이크를 1회 이상 가는 것을 수치로 여길 정도니까. 지난번 촬영 때 1시간 남짓 들여다본 적이 있었는데 무려 20컷을 찍더라구요. 본인은 전엔 하루에 300컷을 찍은 적도 있는데, 요즘엔 많아야 90컷 정도 찍는다고 합니다.

땡칠 체력이 문제인가요?

영구 남 감독의 체력은 끄떡없는데, 스탭들이 너무 힘들어해서 그런다네요.

땡칠 어디로 이동하는 건가요.

영구 오후 촬영이 이뤄지는 <취화선> 세트로 이동 중인데요. 남 감독 스타일상 이동하면서 몇컷을 더 찍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땡칠 <취화선>의 어떤 장면에 대한 오마주인가요?

영구 아니죠. 세트 비용을 절감하자는 차원이죠.

땡칠 저건 못 보던 건데요. 뭡니까. 크레인 아닙니까?

영구 이번에 각오가 대단해요. 크레인이야 메이저 촬영장에선 흔히 볼 수 있는 장비입니다만, 남 감독은 그동안 예산문제로 크레인을 사용하지 않았거든요. 아, 말이 나와서 말인데요. 속칭 후왕이라고 불리는 대형 강풍기도 이번에는 3∼4회 쓴다는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땡칠 순간, 남기남 감독 크레인을 올리라는 지시를 하고서 남은 시간을 체크하고 있습니다. 그러더니 정종철을 부르는군요.

영구 돌발 지시를 내리는 듯합니다. 원래 시나리오대로라면 마지막 엔딩장면을 찍어야 하는데 추가로 어떤 장면을 삽입할 것 같아요.

땡칠 카메라, 조명 코치 모두 남 감독 주변으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영구 아, 맞습니다. 남 감독 즉흥적으로 장면을 만들어 넣네요. 갈갈이 삼형제가 드라큘라가 출몰한다는 마을로 입성하던 도중 옥동자가 설사로 인해 급히 뒷간을 찾는 장면을 삽입하는군요. 여기에 아낙들이 엉덩이를 까보인 옥동자를 발견하고 괴성을 지른다는 설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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