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만 좋은 천사들
아이를 둘이나 낳아 기르면서 애니메이션과는 가까워지는 듯하면서도 서서히 멀어지는 경험을 하고 있는 중이다. 애니메이션을 전보다 자주 보긴 보는데 그게 대부분 유아용 애니메이션에 국한되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토이 스토리> 시리즈를 비롯한 픽사와 디즈니의 몇몇 작품들, <이웃집 토토로>를 위시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몇몇 작품들 그리고 <메이지> 등 ‘착한’ TV용 애니메이션들의 경우에는 반복적으로 너무 많이 봐서 다 외울 정도가 됐다. 반면 조금이라도 어렵거나 잔인하다거나 무서운 애니메이션들은 볼 수 있는 기회는 찾기 어려워졌다. 그렇게 색다른 애니메이션만이 줄 수 있는 충격을 경험하지 못한 채 몇년이 흘러가자 가끔은 그런 충격을 받고 싶다는 욕구가 마구 솟아오르곤 했다. 문제는 그런 기대감에 작정을 하고 잘 나간다는 애니메이션을 골라보면 거의 대부분 실망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옛말이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애니매트릭스>는 정말로 신선한 충격의 결정체였다. 사실 <애니매트릭스>의 몇몇 에피소드들이 인터넷에 공개되었을 때, 그것들을 볼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여러 번 고민하긴 했었다. 그러다 먼저 극장에서 속편을 보고 난 뒤에 DVD가 출시되면 좋은 화질과 음질로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꾹 참기로 했다. 그런데 정작 영화의 속편이 기대한 수준에 약간 못 미치자, <애니매트릭스>에 대한 기대까지 거의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저 ‘영화의 줄거리상에 연결고리들을 제공해준다고 하니 봐둬야겠군’ 정도의 의미밖에는 남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별 기대없이 본 <애니매트릭스>는 감히 ‘근래에 본 모든 영화, 애니메이션, 방송물들 중에서 가장 강렬하다’라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했다. 특히 두개의 에피소드로 나뉘어서 인간과 기계들간의 전쟁과 매트릭스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주는 <The Second Renaissance>는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미녀 삼총사>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미녀 삼총사>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올 여름 블록버스터 경쟁의 대표주자 중 하나인 <미녀 삼총사2>
사실 영화와 연계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TV나 비디오 또는 DVD로 판매하는 것은 이미 오래된 할리우드의 ‘원 소스 멀티 유즈’ 전략 중 하나다. 구구절절한 예를 들지 않더라도 영화의 성공에 기반을 두고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도 <애니매트릭스>가 주목을 끄는 이유는, 제작된 애니메이션이 단지 영화의 상품가치를 어떻게 해서든지 연장해보려는 심산에서 나온 뻔한 결과물이 아니라 영화가 가진 물리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영화를 통해 만들어진 설정의 확대/변형을 통해 관객에게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애니매트릭스>와 거의 유사한 전략을 가지고 만들어진 <미녀 삼총사>의 애니메이션이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었다는 사실은 큰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공식 명칭이 <Charlie’s Angels Animated Adventures>인 그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미국에서 6월 말 개봉을 앞두고 있는 <미녀 삼총사2>의 이전 이야기(Prequel)에 해당한다는 사실과 인터넷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6개의 에피소드들이 순차적으로 공개된다는 사실 때문에 <애니매트릭스>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첫 번째 에피소드인 <Most Delicious Angels>이 공개된 지난 5월13일 이후 일주일 동안 약 170만명이 방문했다는 사실은, 그런 특성에 기인한 네티즌들의 관심도를 잘 드러내주었다고 할 수 있다. 제작사인 콜럼비아조차 <스파이더 맨>의 예고편을 공개했을 때와 유사한 정도의 방문자 수에 놀랐을 정도. 콜럼비아의 마케팅 담당 사장 제프리 에머는 “영화와 관객을 연결시키는, 아주 재미있으면서도 혁신적인 시도다. 영화가 개봉되기 전부터 그 세계에 빠져들게 되는 관객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흥분되는 일”이라고 평가를 했다.
그러나 내용의 전개상으로는 분명 <미녀 삼총사2>의 이전 이야기라서 관객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한 면이 있지만, 애니메이션 자체의 완성도에서는 많은 문제점이 존재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네티즌들의 평가다. 홈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일러스트레이션으로 표현된 미녀 삼총사들의 섹시하면서도 귀여운 모습을 기대하면서 에피소드의 스트리밍을 시작하면, 이른바 전형적인 미국식 애니메이션으로 그려진 황당한 모습의 캐릭터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캐릭터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도 기존의 저가 셀애니메이션 방식으로 만들어져, 웬만한 TV애니메이션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즉 외형적으로는 관객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지만, 정작 애니메이션은 전혀 혁신적이지 못하고 완성도까지 낮은 것.
결국 <미녀 삼총사> 애니메이션은 영화 개봉 전에 필요한 마케팅상의 효과는 충분히 발휘했을지 모르지만 <애니매트릭스>와 같은 혁신적인 성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 물론 그런 성과를 바라고 시도된 것이 아니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배급사를 탓할 이유도 없지만 말이다. 단 배급사도 원치 않았을 확실한 부대효과가 하나 생겨났는데, 그것은 바로 <미녀 삼총사> 애니메이션의 존재가 오히려 <애니매트릭스>의 가치를 더 높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철민
만화 <미녀 삼총사> 공식 홈페이지: http://www.animatedangels.com
<미녀 삼총사2> 공식 홈페이지: http://www.sonypictures.com/movies/charliesangelsfullthrott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