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Nuit Americaine, 1973년감독 프랑수아 트뤼포 출연 재클린 비셋 EBS 6월14일(토) 밤 10시
“나는 내 인생의 첫 영화들을 거의 돈을 내지 않고 관람했다. 극장에 들어갈 때 비상문이나 화장실 창문으로 숨어들어갔던 것이다. 그곳을 드나들면서 난 히치콕과 르누아르, 오슨 웰스, 채플린의 영화를 봤다. 이제 난 영화감독과 비평가로서 일하게 된 계기에 대해 질문을 받곤 한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알고 있는 것이라곤 그저 조금 더, 조금 더 영화와 가까워지려고 했던 것뿐이다.”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이 언젠가 했던 이야기다.
트뤼포 감독은 고다르 등 프랑스 ‘누벨바그’의 일원으로 영화광 출신 감독이었다. <아메리카의 밤>에서 이는 여실히 드러난다. 영화에 직접 출연한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은 낮에는 촬영장에서 정신없이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밤에 호텔방에서 악몽을 꾼다. 꿈속에선 어린 시절의 감독이 극장 게시판에서 영화사진을 남몰래 훔친다. 영화사의 걸작으로 기록되는 <시민 케인>의 사진이다. <아메리카의 밤>은, 어느 영화광의 내밀한 자기고백 같은 작품이다.
어느 스튜디오에서 영화감독 페랑은 <파멜라를 찾아서>라는 영화를 찍고 있다. 시아버지와 아들의 약혼녀가 불륜에 빠지고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한다는 비극이다. 배우들이 모여들고 할리우드의 스타 줄리가 비행기로 도착한다. 페랑은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어떠한 사적 감정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는 매일 전쟁터에 나가는 기분으로 촬영장으로 향한다. 한편, 줄리는 노이로제 증세로 고생하고 배우 알퐁스는 실연당해 상처를 입는다. 그리고 감독은 매일 밤 침대에서 악몽을 꾼다. <아메리카의 밤>은 영화제작에 관한 영화다. 다시 말해서 어느 촬영장에서 일어나는 세밀한 디테일을 화면으로 옮기고 있는 것이다. 지루해 보일지 모르지만 의외로 재미있다. 영화는 소품에서 세트, 배우 연기, 음악 등 영화제작의 각 단계와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여준다. 한편의 다큐멘터리처럼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것이다. 배우들은 대사를 외우지 못해 벽에 큰 글씨로 써놓은 채 읽고 스탭들은 감독 지시에 따라 동분서주한다. 이 과정은 다른 누벨바그 감독작, 즉 고다르의 <경멸>이나 자크 리베트 감독이 그랬듯 창조과정의 영화화, 그리고 영화매체의 환영적 측면에 관한 노출이다.
어느 비평가는 <아메리카의 밤>에 대해 “르누아르의 관점의 폭을 가진, 인생의 충만함을 담은 작품”이라고 논했다. 그것은 트뤼포가 연기한 영화감독이나 다른 스탭들이 지독한 고난을 헤치고 나가면서 “영화 만들기는 즐거운 작업”이라고 자평하는 역설과 맞물린다. 트뤼포의 영화 중에서 <아메리카의 밤>은 구조적으로 나무랄 데 없으며 그의 독특한 영화사랑을 엿볼 수 있는 수작이다. 명료하게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어느 영화 관련 서적들이 화면에 차례로 선보이는 것이다. 브레송에서 히치콕, 장 콕토에 이르기까지 <아메리카의 밤>은 숨은 그림 찾기처럼 영화사의 거장 이름을 은닉해놓고, 관객의 호명을 기다리고 있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