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난 꿈을 꿔
요즘도 가끔 버스정류장을 보면, 어설프게 담배를 물고, 눈에는 눈물이 그렁한 채 <꿈꾸는 나비>를 흥얼거리던 전경이 어디쯤 앉아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나비야 두터운 니 과거의 슬픔을 뚫고, 가볍게 아주 가볍게 날아라, 깊은 밤길에 나앉은 여인의 눈물 자욱한 담배연기를 마시고 꿈을 꿔도 모든 걸 뒤엎을 순 없어 그래도 넌 꿈을 꿔….”
<네 멋대로 해라>를 잔잔히 채웠던 몽환적이면서도 허스키한 목소리의 당사자인 ‘3호선 버터플라이’의 보컬 남상아씨. 칠흑같이 검은 머리 속에 예민하게 빛나는 눈, 그녀의 얼굴이 낯익다면 아마 영화 <질주> 때문일는지 모르겠습니다. 데뷔작을 위해 인디그룹 뮤지션을 찾고 있던 이상인 감독은 허클베리 핀에서 활동하던 남상아씨를 보게 됐고 99년 그녀는 엉겁결에 <질주>라는 영화 한편을 찍어낸 배우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4년 뒤, ‘눈물 가득한 담배연기를 마시고 꿈을 꾸던’ 인디보컬 ‘바람’의 자유로운 이미지는 세월이 지나도 그대로인데 “사람들이 영화 이야기를 할 때면 숨고 싶을 만큼 부끄러워졌다”는 마음은 이제 “색다른 추억”으로 편안하게 웃을 만큼 증발해버리기도 했습니다.
허클베리 핀을 거쳐 성기완, 김상우 등의 멤버와 결성한 3호선 버터플라이는 <네 멋대로 해라>에서 전경의 ‘미완성 밴드’가 연주하는 곡들을 포함한 1집과 2집 <Oh! Silence>까지 내고 순항 중입니다. 그러나 음악은 배고픈 직업이라 했던가요. 가끔 하는 공연만으로 이 젊은 뮤지션이 살아가기에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습니다. 하여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덕에 포스터 디자인 일도 하고 가끔 들어오는 영어번역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는 6월28일 정동극장에서 벌어지는 3호선 나비들이 야간비행을 마치고 나면 그렇게 조금씩 모은 돈으로 그는 유년의 추억을 묻었던 영국으로 짧은 여행길에 오를 거라고 합니다. 어쩌면, 여행에서 돌아온 뒤, 상아씨의 묘한 방황의 기운들은 조금 더 짙은 빛을 뿜어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성숙을 눈보다 귀로 먼저 느끼게 될 겁니다. 글·사진 백은하 luci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