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헤인즈 감독은 <벨벳 골드마인>에서 혼란했던 1970년대의 성정체성을 ‘글램’이라는 테마로 압축시켜 보여준 바 있다. <파 프롬 헤븐>에서는 성정체성에 인종적 자기 정체성에 관한 테마를 혼합시키고 있는데, 감독은 그 혼합이 가장 효과적으로 성립될 만한 공간을 1950년대에서 찾고 있다.
<벨벳 골드마인>의 다소 현란했던 스타일과는 대조적으로 이번 영화의 분위기는 차분하고 조용하다. 전형적인 할리우드 고전 멜로드라마의 느낌을 오늘에 되살렸다고나 할까. 동글동글하게 생긴 1950년대풍 자동차들이 거리를 지나다니고 줄리언 무어는 손에 장갑을 끼고 머리에는 머플러를 두르고 다닌다. 이쯤 되면 1950년대를 그대로 떠온 느낌.
이렇게 고전적인 할리우드 분위기를 내는 데 톡톡한 역할을 하는 사람 중 하나가 음악을 맡은 엘머 번스타인이다. 그는 이미 할리우드의 전설이 된 영화음악 작곡가. 1922년생이니까 나이가 여든이 넘은 호호할아버지다. 그런데도 이만큼 섬세하게 장면들을 따라가는 스코어를 썼다니 놀랍기까지 하다. 그가 영화음악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1951년이니까 이미 40년 세월이 넘도록 영화음악 일에 종사하고 있다. <Birdman of Alcatraz> <To Kill a Mockingbird>를 비롯, 수많은 고전 할리우드영화의 음악을 담당한 바 있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를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한, 율 브리너가 주연했던 <율 브린너의 황야의 7인>의 테마를 만든 작곡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 테마는 우리도 탁, 들으면, 아, 이거, 하게 될 만큼 유명하다.
그의 전성기는 아무래도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초반이라고 해야겠지만 그렇다고 그의 활동이 그 시기 이후에 줄어든 것은 아니다. 전성기 시절에 유지했던 웅장하고 과장된 느낌의 편곡법을 1970년대 들어 조금은 시니컬하고 심플하게 바꾸는 과감한 자기 변신을 감행, 새로운 스타일의 영화들에서도 여전히 음악을 담당해왔던 것이다. 1990년대 들어 다시 낭만적인 분위기의 고전적 할리우드 스타일로 복귀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끝없는 자기갱신을 통해 현장감을 유지하는 몇 안 되는 작곡가이다.
<파 프롬 헤븐>에서의 음악은 전형적인 할리우드 멜로 스타일이다. 대규모 편성도 아니고 그렇다고 소규모 실내악 편성도 아닌, 단출하다 싶으면서도 부피감이 느껴질 정도로 딱 맞춘 편성이 부담스럽지도 않고 미흡하지도 않다. 영화를 통해 확인한 것의 하나는, 이 노장 작곡가가 절대로 ‘작품’을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 그의 음악에서는 일 냄새가 물씬 난다. 수십년을 영화음악에 종사했던 사람답게 그는 거의 본능적으로 장면 뒤에 숨는다.
그렇다고 장면들을 세세하게 미키마우징하면서 따라가는 것도 아니다. 약간의 거리를 두고 담담하게 장면들을 치켜세우는 기술을 탁월하게 구사한다. 젊은 사람이 편곡한 음악처럼 뽐내는 스타일이 아니고 소박하다는 느낌을 주는 스타일. 고졸하다는 생각도 든다. <파 프롬 헤븐>이라는 영화의 착 가라앉은 분위기에 이 이상의 음악을 기대하는 것은 영화를 방해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엘머 번스타인의 음악은 하나의 경지를 보여준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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