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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칸 영화제 결산 [5]
박은영 2003-06-07

“타르코프스키와 체호프가 나의 스승”

심사위원 대상받은 <우작> 감독 누리 빌게 세일란을 만나다

터키 출신의 누리 빌게 세일란이 <작은 마을> 에 이은 세 번째 장편 <우작>을 들고 칸에 나타났을 때 “심상치 않을 것이다”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이미지에 강하고 가족과 고향을 즐겨 이야기한다는 이 감독은 제작과 촬영과 편집까지 도맡는 만능 영화인이라고도 알려져 있었다. 누리 빌게 세일란의 <우작>은 그래서 화제작이 드물었던 영화제 초반에 관심의 초점이 됐던 작품.

<우작>은 두 남자의 이야기다. 또는 이스탄불이라는 도시의 이야기다. 공장 폐업으로 일자리를 잃은 시골 총각은 이스탄불에 사는 사촌형 집에 머무른다. 청년이 찾는 이상적인 직업은 마음껏 세상을 돌아다니며, 미국달러도 벌 수 있는 외항 선원. 그러나 선원이 될 길은 요원해 보인다. 한편 사진작가인 사촌형은 이혼한 뒤 줄곧 혼자 살고 있고, 대화를 시도하는 사촌동생을 번번이 내친다. 동생이 연모하던 여자와 일자리를 포기하고 시골로 돌아가면서, 둘은 가까운 듯 멀었던 동거 생활을 마감한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스탄불의 우울한 겨울 풍광 속에서 소소한 일상이 나열되다가, 결국 아무 사건도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은 채 마무리되는 <우작>은 이미지와 풍경의 나열과 직조를 통해 세심하고 은근한 캐릭터 연구를 선보였다. 타르코프스키의 그늘이 드리워진 이 작품은 특히 서구 평단의 지지를 받았고, 심사위원 대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기대 이상의 성과를 길어올렸다.

당신의 영화에선 타르코프스키의 영향이 느껴진다. 타르코프스키는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감독이다. 처음에 나는 <솔라리스>를 끝까지 보지 않았다. 몇년 뒤 영국에서 그 영화를 다시 봤을 땐 달랐다. 사흘 동안 충격에 빠졌고, 이후에 그의 전작을 섭렵했다. 그의 영화는 고유한 분위기가 있었다. 그중 <거울>을 가장 좋아한다. 힘들 때 그 영화를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삶이 밝아지는 걸 느낀다. 이 영화의 이미지도 타르코프스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소통 불능의 문제를 다루려 한 것인가. 그것보다는 삶의 무의미함, 공허, 난센스를 보여주고 싶었다. 내 영화는 몇몇 인물에 대한 이야기일 뿐 아니라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도시인들은 남에게 의존하려 들지 않기 때문에 결국 스스로 지은 감옥 속에서 살아가는 쪽을 택한다. 남에게 아무것도 부탁하지 않고, 또 주지 않는다. 도시생활은 고립과 소외를 수반한다.

인물에게 가족과 고향이 중요하게 작용하며, 우울하게 묘사돼 있다. 내 삶 자체가 고향과 밀착돼 있다. 고향에 가면 언제나 죄책감과 함께 고통을 느낀다. 내게 중요한 공간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감정이 드는 것 같다. 몇년 전 터키는 역사적으로 가장 심각한 경제위기에 빠졌다. 빈민층은 물론 상류층도 흔들릴 만큼 큰 위기였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은 그때 시작했다. 당시 온통 경제 위기에 대한 뉴스와 이미지로 넘쳐났으니, 영화에도 그런 분위기가 반영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대상과 사물보다는 인물에 집중해 촬영했다. 어떤 의도인가. 나는 대상보다는 관찰자를 주목하는 편이다. 일례로 러브신에서 소프트 포커스 효과를 써서 남자가 바라보는 여자가 아니라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에 집중하게 했다. 사람들은 여자가 옷 벗는 장면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난 그렇지 않다.

아름다운 이미지와 현실적인 이야기 사이의 균형이 절묘하다. 이전 영화에서 지나치게 아름다운 이미지로 비판을 받았고, 많이 고민했다. 아직 현실적인 이미지가 뭔지 답을 찾지 못했지만 노력 중이다. 타르코프스키의 도움이 컸다. 그의 영화는 우리가 평소 관심을 갖지 않던 것에 시선이 가게 만든다.

유머러스하고 해학적인 장면이 많다. 실제 삶에서 비극적인 사건에도 유머가 숨어 있음을 발견하곤 한다. 이런 면을 끌어내는 데 체호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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