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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산업 X-ray 5 - 현장 스탭의 처우개선 [2]

02. 어떻게 조직력을 만들 것인가?

스탭들의 초과된 노동시간에 대한 보상은 여전히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촬영이 24시간 이상 지속되는 경우에도 특별한 수당을 기대하긴 힘들다.(사진은 기사내용과 상관없음)

일단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 노조를 만든다면 조직이 쉽게 힘을 가질 수 있겠지만 분야별 스탭이 모여 단체를 구성한다고 곧바로 노조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노조에 대립항이 돼야 할 사용자가 불명확하고 영화별로 계약하는 스탭을 노동자로 인정할 수 있는지도 법적 문제를 고민해야 할 일이다. 때문에 현재 협회를 준비 중인 사람들은 “당장 노조를 만들자”고 주장하지 않는다. 협회가 나갈 길도 직능조합의 형태일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

조감독협회 부회장 이상필씨는 “협상테이블에 누가 나올지 생각해보면 막막하다. 어떤 요구를 한다고 해도 협상할 대상, 즉 사용자가 불분명한 상황”이라고 말한다. 이는 조합을 만든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지만 일단 조합은 노조처럼 법률적 검토를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현재로선 분야별 협회가 직능조합으로서 조합원의 권익보호활동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감독조합, 프로듀서조합, 편집기사조합 등이 모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장기적인 전망을 내놓기 전에 당면한 문제가 있다. 지난해 2월 창립총회에 200여명이 참석해 분야별 협회 가운데 가장 적극적인 참여도를 보인 조감독협회조차 올해 3월 정기총회에는 20여명이 참석하는 저조한 참여도를 보였다. 이상필씨는 “막연히 많은 일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협회 설립에 적극 참여했지만 각자 작품 활동이 우선이다보니 조직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라고 말한다.

이런 상황은 촬영조수협회도 비슷하다. 촬영조수협회 임시회장 이창재씨는 “그동안 활동이 미미해서 2기 운영진을 뽑으면서는 핵심적인 활동을 할 사람들의 모임을 따로 구성했다”고 전한다. 이처럼 스탭들의 참여가 저조한 것은 직업의 성격상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스탭들에겐 공동의 이해관계보다 당장 계약한 개별 영화가 우선이고 하루빨리 감독으로, 기사로 입봉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조감독협회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려던 사람이 감독 제의를 받고 작품 준비에 들어가면 그때부터 협회 활동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자주 모임을 할 수 없는 직업의 특성 때문에 현재 협회들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한 홍보와 의견교환에 힘을 쏟는 상황이다. 조감독협회는 2001년 9월부터 공식홈페이지(aduniom.ck.kr)를 운영했으며 제작부협회는 그동안 프리챌에 마련했던 동호회 홈페이지를 없애고 협회의 공식홈페이지를 만들 계획. 4부 연석회의에서도 각 협회가 홈페이지를 구축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일단 소수 정예를 중심으로 확고한 진지를 마련한 다음 여러 가지 활동을 통해 차근차근 조직의 힘을 모은다는 것이다.

03. 어떻게 전문성을 확보할 것인가?

제작자들이 스탭처우개선의 조건으로 전문성 향상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협회 역시 무게중심을 스탭 전문성 강화에 두고 있다. 영화인회의와 4부 연석회의가 지난해 7월부터 준비한 영화인 재교육사업은 처우개선을 요구하기 전에 전문성부터 확보하겠다는 스탭 스스로의 의지다. 현재 영화인 재교육은 연출부, 제작부 강의내용을 확정하고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7월부터 실시할 예정. 제작부협회 준비위원장 곽중훈씨는 “제작부 막내의 경우 엑셀프로그램을 쓸 줄 알고 운전면허가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막내로 한 작품을 하고나도 전문성을 쌓기는 어렵다. 제작부 매뉴얼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하며 영화인 재교육사업에서 그런 기회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다른 협회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조감독협회 부회장 이상필씨도 “연출부의 경우 선배 조감독이 입봉하면서 노하우가 사장되고 만다. 데뷔 속도가 빨라지면서 이런 현상은 심해지고 있다. 연출부에 대한 교육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교육사업의 의의를 설명한다. 영화인 재교육은 4부 협회가 모두 출범한 다음인 내년부터 촬영, 조명부를 포괄하는 과정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처럼 스탭 스스로 재교육을 요구하는 배경엔 도제시스템의 붕괴가 자리잡고 있다. 최근 현장엔 연출부나 제작부로 3편 이상 경험을 가진 인력이 많지 않다. 그만큼 감독이나 프로듀서 데뷔가 쉬워졌지만 거꾸로 경험과 능력을 고루 갖춘 조수급 인력을 구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이런 문제는 신생영화사일수록 심각한데 고급인력을 구하기 어려워 경험이 부족한 인력을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경험부족은 영화의 질에 악영향을 끼치고 스탭 인건비가 악화되는 데도 일조한다. 결국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도 스탭의 전문성 향상이 필수적인 상황이다. 상대적으로 도제시스템이 많이 남아 있는 촬영부나 조명부에선 거꾸로 “막내 구하기 힘들다”는 말이 많이 나온다. 노동에 비해 적은 보수를 감내할 인력이 점점 줄어드는데다 특정 기사 밑에 있다고 미래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 새로운 인력이 쉽게 유입되기 위해서도 교육사업이 필요한 실정이다.

대안의 하나로 검토할 만한 것은 전문 조수제다. 전문 조감독이나 카메라 포커스를 책임지는 촬영조수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 하지만 제작자나 스탭 모두 전문 조수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전문 조감독을 기용할 영화가 몇편이나 되겠으며 보수가 획기적으로 오르지 않는 한 조수 인건비로 생계가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현재로선 상당한 시간이 지나야 미국 같은 전문 조수제가 정착되리라는 전망이다.

“협회가 전문성을 살리면서 시장문제를 같이 고민하는 단체가 된다면 환영이지만 시장 상황을 무시한 일방적인 이익추구를 한다면 곤란하다.”(씨네2000 대표 이춘연) “협회가 생긴다고 우려하는 건 없다. 객관적인 목소리를 내길 바란다.”(명필름 대표 심재명) “현재 시스템의 미덕과 전문가 체제의 효율성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게 관건이다.”(나비픽처스 대표 조민환)

아직 협회가 활발한 활동을 하지 않은 상황이라 제작자들은 협회가 생기는 것에 대해 대체로 찬성도 반대도 아닌 입장을 취하고 있다. 노조가 됐든 직능조합이 됐든 스탭 스스로 조직을 만든다는 것에 정서적 거부감을 느끼지도 않는 편이다. 제작자 스스로 스탭 경험을 거친 경우가 많고 그들의 경제적 어려움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거꾸로 스탭 역시 제작자의 고민을 함께 떠안으려는 쪽이다. 제작사의 영세성을 익히 알기에 무턱대고 인건비 인상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영화인 재교육을 통해 전문적인 스탭을 길러낼 테니 능력과 경험을 인정할 수 있는 스탭에 관해서는 지금보다 나은 대접을 해달라는 것이다.

결국 현단계 스탭처우개선운동은 스탭의 전문성을 높이는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 됐다. 교육사업을 통해 협회의 조직력을 높이고 이런 조직력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스탭의 권익을 지켜가는 게 수순이다. 제작자들이 이런 제안을 반기지 않을 이유는 전혀 없다. 남은 일은 스탭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인가이다. 이젠 정말 “열악한 환경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스탭들의 의지가 중요해졌다. 남동철 namdong@hani.co.kr

충무로는 아직 도제시스템 영향권미국·프랑스 벤치마킹, 한국형 개발해야

능력있는 젊은 감독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도제시스템이 큰 위기를 맞았지만 한국영화는 지금도 도제시스템의 영향력 아래 움직인다. 일례로 프로듀서가 서로 잘 모르는 촬영감독, 퍼스트(제1조수), 세컨드(제2조수)를 맘대로 지정하는 경우는 없다. 도제시스템이 거의 무너졌다는 연출부도 마찬가지다. 제작사의 편의대로 조감독을 지정한다고 쉽게 받아들이는 감독은 드물다. 도제시스템으로 묶여 있던 관계가 아니라도 학교에서 만났거나 단편영화를 같이 만들었던 연출부가 그대로 결합되는 일이 많다.

이런 상황은 전문 조수가 나오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가 된다. 전문 조감독을 하겠다고 나서도 감독이 전문 조감독을 원치 않는 경우가 흔히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카메라의 포커스를 맞추는 일을 담당하는 포커스 풀러도 마찬가지다. 자신과 동고동락한 퍼스트, 세컨드가 있는 촬영기사인 경우, 전문 포커스 풀러를 사용하는 데 반대할 것이다. 충무로가 미국처럼 카메라 오퍼레이터, 조명을 담당하는 개퍼, 잡일을 담당하는 그립 등 각 부문이 전문화된 시스템으로 바뀔 수 있을지는 아직 의문이다. 한 제작자는 “분야별 전문가로 스탭을 운용하면 프로듀서 입장에선 지금보다 편하게, 안정적으로 제작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영화에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장점도 분명 있다. 돈과 숙련도로 만들어지지 않는, 열정과 희생으로 만들어지는 어떤 요소가 한국영화의 에너지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제작환경개선위원회는 국내의 전문화 시스템이 민간주도 모델인 미국과 관(官)주도 모델인 프랑스의 중간에서 정착될 수 있으리라 전망한다. 철저히 시장원리에 의해 만들어진 직능조합이 중심인 미국은 조합이 파업을 결의하면 전체 메이저 영화사의 제작이 차질을 빚을 정도로 조합의 힘이 세다. 자연히 조합의 요구를 무시 못하게 된다. 반면 프랑스는 일정한 기준을 통과한 기술인력에게 직업카드를 발급한다. 제작사는 영화를 만들 때 일정 비율 이상 직업카드 소지자를 고용해야만 영화위원회(CNC)의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직업카드 소지자에 대한 권익을 보호하는 식이다. 두 나라 모두 숙련된 인력을 구분해 스탭의 권익을 보호하는 시스템이다. 국내에선 당장 한쪽으로 노선을 정하지 않고 미국식 직능조합을 만들면서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도 기대하는 상황이다. 좀더 장기적인 전망은 협회가 스스로 고민할 문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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