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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감독이 말하는 <장화,홍련> 제작기 [2]
권은주 2003-06-07

기획1/장화홍련 제작기

# 2002. 08.25

아버지 역에 김갑수 선배를 만나 제의를 했다.

연극 <길 떠나는 가족>에서의 너무나도 훌륭한 연기로 감동, 감화받은 나는 언젠가 저분과 꼭 작업을 해야지 하고 마음먹고 있던 차였다.

시나리오를 읽으시고는 아버지 캐릭터의 어려움을 정확하게 짚어내었다.

“시나리오에서 모자란 부분, 선배님께서 채워주세요.”

이런 말을 하는 내가 꼭 장사꾼 같았다.

# 2002. 09. 07

극중에선 항상 반듯한 이미지로 나온 염정아씨를 만나다.

“장화 역 때문에 만나자고 하신 거죠?” 하며 혼자 깔깔거리며 웃는다.

항상 쾌활하고 털털한 모습이다가 순간순간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그녀의 모습이 흥미로웠다.

어쩐지 재밌는 새엄마의 캐릭터가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2002. 09.09 ∼10. 06

1차 테스트 촬영 양수리 6세트에서 연기자 한명을 두고 인물, 엠비언스 조명과 벽지를 가지고 테스트 촬영을 함. 밤샘 촬영을 함(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렇게 수많은 색깔의 천을 많이 봄).

2차 테스트 촬영 보성 율어 외부세트장에서 촬영을 함.

조감독과 김정화 실장, 이모개 촬영감독, 연출부 이안규가 <살인의 추억> 촬영장을 방문.

오는 길에 안개에 휩싸여 길을 잃다. 덜컥 겁이 났다. 혹시 이게 내 모습이 아닐까?

작은 일에도 불길한 징조로 생각하는 내 모습에 겁이 났다. 혹시 이게 내 모습이 아닐까?

깊은 밤에 숙소 도착.

촬영감독이 안개장면을 직접 찍고 싶다고 해서 새벽부터 서둘러서 부지로 올라가 촬영. 안개 지긋지긋하다.

보성 차밭에서 리버설 필름 테스트도 하고 밤 늦게 서울로 출발.

3차 테스트 촬영. 양수리 2세트의 내부세트를 짓는 곳에서 주연배우들과 함께 테스트 촬영.

실제 세트와 비슷한 느낌의 임시 세트를 지어 벽지와 가구 등으로 전체 분위기를 테스트함.

테스트 촬영결과물을 보고 애초에 디지털 색보정 기획을 안 해도 좋은 색감과 톤을 건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 2002. 10. 21

보성 율어세트장에서 #9신 촬영.

고사도 함께 지냄. 오전에 비가 조금 내리다 고사를 지내고 날씨가 갬.

계속 그럴 줄 알았는데 해가 구름에 들어갔다 나갔다 해서 그림이 영 신통치 않음.

그래도 첫날부터 허탕칠 수 없어서 밤늦게까지 촬영을 강행하고 훤한 보름달이 떠서 달CG소스 촬영.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며 오늘 처음으로 큰소리로 O.K사인을 냈다(첫날 유일하게 건진 O.K컷. ㅜㅜ).

# 2002. 10. 24. 4회차

40신 그네에서 수미와 무현이 대화하는 장면 다시 찍음. 원신 원컷으로….

영화를 하면서 정말이지 해도해도 안 나오는 신이 꼭 한개씩 있다.

딱히 어려운 것도 아닌데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감이 안 잡히는 신들.

아마 40신 그네신이 그럴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밤에 첫 레커신을 찍는데 너무 추웠다.

10월에 입대해서 깊은 산속, 부대에서 찬물로 머리를 감던 그 뼛속까지 얼어붙을 것 같은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내 기억 속엔 10월이 가장 춥다.

# 2002. 10. 27. 5회차

저수지 선착장신.

집에 도착한 두 자매가 집으로 들어가기 전 선착장에 들렀다 들어가는 장면이다.

아직 영하는 아니지만 바람부는 저수지의 체감온도는 장난이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 수미, 수연이 맨다리로 저수지 물에 발을 담구는 장면을 찍는다.

아이들 다리에 붉은 반점의 알레르기 같은 것이 일어나 다시 다리를 따뜻하게 하고 메이컵한 뒤 촬영재개.

그걸 보고 있던 촬영감독과 조명감독은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고 함.

바람이 너무 많이 부는 관계로 지미집 컷을 찍는 데 고생했다.

최상의 장면을 잡기가 너무 어렵다.

지미집은 바람에 흔들리고 수미, 수연의 다리는 물에 퉁퉁 불기 시작하고….

결국 신을 다 찍지 못하고 철수.

악몽을 꾼다.

촬영감독과 조명감독이 테스트 촬영을 해야 하는데 연기자가 아직 도착 안 했다며 나보고 저수지에 들어가 있으라고 한다. 분명히 수미, 수연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 2002. 11.01. 10회차

변덕 심한 날씨와 일광조건 때문에 아직도 집으로 못 들어간 두 자매, 계속 선착장장면을 찍고 있다.

스탭들이 도대체 아이들이 언제 집에 들어가냐고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집에 도착한 지 9일이 지났는데 아직도 집에 못 들어가고 있다.

이러다가 스탭들이 들고 일어날 것 같아 할 수 없이 눈물을 흘리며 O.K사인을 냈다.

그리고 다시 밤촬영.

화순에서 촬영을 하던 <살인의 추억>의 봉준호 감독, 송강호, 김무령 PD가 촬영장을 방문.

봉 감독인지 송강호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여기는 여배우들이 많아 좋겠네. 우린 현장은 여배우가 없어!” 하며 탄식한다(어쩐지 말투로 보아 송강호 같다).

그 말을 들은 김갑수 선배가 “여기도 뭐 마찬가지야. 한 사람도 정상적인 여자는 없어” 한다.

# 2002. 11. 04. 12회차

조금 안정된 날씨 덕에 촬영 재계. 최고의 압권은 쥐새끼의 목이 서랍에 끼는 장면.

몸을 사리지 않는 쥐새끼의 열연에 노고를 치하.

이에 자극받은 다른 쥐새끼가 농약 먹은 쥐연기를 실감나게 열연.

마취에서 깨어난 쥐들을 다시 연구실로 돌려보냈다.

떠나는 쥐들에게 전 스탭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냄.

# 2002. 11. 14. 16회차.

양수리종합촬영소 2스튜디오.

이틀 뒤에 이모개 촬영감독 결혼식이어서 촬영 빨리 끝나고 집에 가서 결혼 준비를 해야 하는데 진행은 더디어만 간다.

나도 빨리 O.K사인을 내고 싶은데 만족스런 그림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다가 오승철 조명감독이 이모개 촬영감독 빨리 가시라고 열심히 조명을 한 덕분에 새벽 1시에 촬영이 끝남.

# 2002. 11. 22. 20회차

수미가 수연의 소리가 난다는 말을 듣고 1층에 내려오는 장면을 돌리 이동장면으로 촬영.

카메라 동선을 말해주니까 촬영감독과 영상시대가 난감해한다.

거의 돌리 위에서 360도를 돌아야 했다.

가능한지 아닌지 일단 테스트는 해보자고 합의한 뒤 모니터를 보니까 만족스런 이동이 나왔다.

“좋은데…” 하는 말을 하려고 세트 안으로 들어갔더니 촬영감독이 360도를 돌아서 모니터 라인과 배터리 라인에 감겨 있었다.

“왜 그러고 있어? ”

다른 스탭들은 웃음을 참느라고 컥컥거렸고 이모개 촬영감독이 나를 노려보고 있다.

# 2002. 11.30 26회차

우리 세트장의 여배우들이 예쁘다는 송강호의 소문을 듣고 <살인의 추억>의 김상경과 김뢰하가 옆 세트장에서 놀러옴.

여배우들과 인사를 나눔.

그뒤로 틈만 나면 세트장에 놀러오는 송강호와 김상경. 그리고 김뢰하.

송강호가 “감독님이 계시나?” 하면서 팀들을 몰고 들어온다.

촬영장에 당연히 감독님이 계시지.

김상경은 아예 나를 보고 의자왕이라고 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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