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명 이유없이 맞지 말자. 직업 나이트클럽 영업부장. 취미 권투. 애창곡 <그집 앞>. 학력 고졸. 해병대 제대. 장래희망 나이트클럽 사장. 나이 20대 중반. MBC 주말드라마 <죽도록 사랑해>의 남자주인공 김재섭(이훈)의 프로필이다. 때는 아직 서울에도 ‘동네’가 있던 1970년대. 초등학교 친구들이 평생 지기가 되고, 이웃집과 사돈을 맺는 시절이다.
홀어머니의 기대와 달리 대학 진학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재섭은 고3 때 경찰서 피의자 대기실에서 만난 또래의 설희(장신영)를 평생 ‘죽도록 사랑한다’. 그러나 이수일의 순정보다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믿는 설희는 그를 이용하고 끝끝내 내친다. 속칭 피엑스(PX) 양키 물건 장사를 하는 어머니와 양공주 출신 언니를 보면서 자란 설희에게 사랑은 거추장스러운 사치일 뿐이다.
재섭은 오래간만에 브라운관에서 만나는 일편단심 민들레, 고전적인 남성상이다. 한국사회는 더이상 이 촌스런 남성상에 열광하지 않지만, 여전히 일군의 마니아 집단은 남아 있다. 대한민국 10%의 시청자들은 주말마다 텔레비전 앞에 앉아 정의의 주먹을 휘두르고, 친구에게 의리있고, 가족에게 기댈 언덕이 되는 이 청년에게 빠져든다. 근육질의 착한 남성(우겨서 선한 마초)은 여전히 참을 수 없는 유혹이다. 더구나 비열한 마초와 수다스런 꽃미남이 점령한 브라운관에서 선한 마초는 희귀동물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재섭은 직장에서 부패척결에 앞장서는 용기있는 시민이기도 하다. 나이트클럽 부장이 돼 ‘사나이답게’ 부하 직원들의 상납금 받지 말자고 상사들을 설득하고, 클럽 무대에서 말썽의 소지가 큰 저항가요인 <타는 목마름으로>를 부른 가수를 감싸준다. 그에게 나이트클럽은 일종의 지역사회운동이다. 재섭이 한없이 진지한 얼굴로 “장시간 노동에 지친 동생 같은 여공들이 마음놓고 즐기고, 매형 같이 주눅 든 만년 과장들이 가벼운 호주머니로 스트레스를 푸는 나이트클럽을 하고 싶다”고 말할 때면 적금이라도 털어주고 싶은 심정이 된다. 건강한 육체에 깃든 건전한 정신, 한국 근대 교과서가 권장해온 남성상이다.
주인공 커플이 곰 같은 사내와 여우 같은 여성의 대립이라면, 나머지 커플은 무능한 남성과 억척스러운 여성들의 조합이다. 우선 <죽도록 사랑해>의 여성들은 모두 커리어우먼이다. 이들은 일하는 여성이라기보다는 일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이다. 제 몸 하나 움직이지 않으면 먹고살 길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남편과 헤어진 재섭의 어머니는 갈빗집을 해 세 남매를 키웠고, 착하지만 무능한 아버지를 둔 재섭의 형수 광숙은 여공 출신 의류업체 사장으로 인생 역전에 성공한다. 이 드라마의 여성들은 먹고살기 위해서라면 양공주, 술집 마담도 마다지 않는다. <죽도록 사랑해>는 한국 근대를 밀어온 힘은 여성 노동이라고 말하고 있다.
반면 남편들은 부재하거나 무능하다. 억척스러운 여성들은 돈 벌고 아침상 차리는 것도 모자라 상처받은 남성들을 보살피고 껴안는 역할까지 도맡아야 한다. 시국 사건으로 폐인이 된 재섭의 형은 아내의 세심한 보살핌으로 사회에 복귀한다. 만년 과장인 재섭의 매형도 아내의 힘으로 세상을 근근이 버텨간다. 이처럼 <죽도록 사랑해>에서 남자들은 비틀거리고 여자들은 초지일관한다. 그러나 주인공 커플의 캐릭터만이 역전돼 있다. 재섭은 보살피고 설희는 배신한다. 사랑받는 남성들 속에서 사랑받지 못하는 재섭의 불행은 더욱 도드라진다. 비틀거리는 남성들 속에서 재섭의 묵묵한 어깨는 더욱 빛난다. 어떤 이의 말처럼 매력없는 근육덩어리였던 이훈은 재섭을 통해 비로소 남자로 다시 태어났다.
작가 김운경은 <죽도록 사랑해>에서도 조연 캐릭터를 살리는 솜씨가 녹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독립운동가의 아들인 엿장수 이씨(임현식)는 서민들의 해학을 능청스럽게 드러내고, 현실순응 체질인 남 과장(이문식)은 소시민의 비굴함을 가감없이 연출한다. 한편 김운경은 이전 작품들에 비해 조봉암 사건, 여공들의 노동운동, 시국사건 피해자 등 역사를 좀더 직접적으로 드라마에 끌어들인다. 역사에 대한 언급만큼 조연들의 감칠맛이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웃음을 자제하는 모습은 김운경 드라마의 ‘정공법’인지도 모른다.
<죽도록 사랑해>의 작가 김운경의 드라마에는 마초이즘이 흐르고 있다. 다행히 그 마초이즘은 폭력적이기보다는 귀여운 쪽에 가깝다. 정의의 주먹, 의협심에 대한 찬가는 <파랑새는 있다> <서울의 달> 등 김운경 드라마에서 빠지지 않는 줄기였다. 그래서 가끔씩 반성도 하게 된다. 과연 선한 마초에게 마음을 빼앗겨도 되는 것인가. 사나이 순정 드라마에 열광해도 괜찮은가. 그래도 사람에 대한 애정이 녹아 있는 드라마라고 나의 취향을 변명할 것인가. 어쨌든 죽도록 사랑하지 못하는 현실이 <죽도록 사랑해>를 사랑하게 한다.신윤동욱/ <한겨레> 기자 s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