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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풍‥>에서 <똑바로‥>까지,`작가` PD 김병욱 론 [5]
김혜리 2003-05-30

<순풍 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똑바로 살아라> 모두 중심에 폭군 같은 가부장이 이끄는 가족이 있는데요. 일일 시트콤인 까닭이 커요. 회사는 일만 하고 아침 9시부터 저녁 10시까지만 있으니 이야기가 커지기 힘든데 가정이 들어오면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소재가 다양해지죠. 조금 오래 쉬고 주간 프로그램을 하면 모를까, 이제 일일 시트콤을 더하면 양심불량이죠. 폭군적 가부장이라는 요소는 테크니컬한 건데, 난 갈등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갈등 자체를 코미디로 보죠. 갈등은 성격에서 오는 것, 지위에서 오는 것이 있는데 폭군이 있어야 갈등이 증폭돼요. 송창의 선배 시트콤은 싸워도 즐거운데 우리 프로 경우는 아주 첨예하게 싸우거든요. <똑바로 살아라>가 <순풍 산부인과>보다 힘이 약한 이유 중에는 노주현씨가 오지명씨처럼 절대자로 보이질 않고 어쩔 수 없이 선해 보이는 탓도 있어요. 극중 역할도 원장이 아니라 한 단계 건너 돈을 투자한 사람이고. 말하자면 <순풍 산부인과>가 원형인데, 반복을 피해 만든 변형은 아무래도 힘이 약할 수밖에 없죠. 우리 프로를 욕하는 의견 중 하나는 무슨 가족이 만날 모함이나 하고 따뜻한 맛이 없게 너무 치열하다는 거죠.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 사회적 권력을 가족에 이입해보고 싶은 욕구가 점점 강해져요. 지난번 대통령과 검사들의 대화를 병원 사우회 문제로 옮겨놓은 에피소드처럼 다소 무리한 걸 알면서도 하고 싶어요. (<똑바로 살아라>는 콧수염 사내가 경영하는 순댓국집이 노주현에게 월세를 미납해 영규가 쳐들어가는 에피소드로 이라크전을 패러디하기도 했다.)

영화계에서는 종종 단순한 연기를 ‘시트콤 연기’라고 부를 때가 있는데 김병욱 시트콤을 보면 어불성설인 것 같습니다. 연기자가 갖고 있는 면을 취해서 캐릭터를 만들기 때문인가요? 캐스팅 전에 하는 인터뷰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리딩이 아니라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데, 연기자가 평소 쓰는 말투나 용어를 중요하게 봐요. 전개 도중에 끼어드는 캐릭터도 기본은 본인의 됨됨이에 맞춰요. 이응경씨는 아주 조신한데, 보통 수다쟁이로 나오는 짠순이 아줌마 캐릭터를 비틀고 싶었어요. 홍리나씨는 커피숍에서 만났는데 실제로 긴장해서 커피도 엎지르고 목소리톤도 변하고 그랬죠. 캐릭터에 대해서는 애착이 커요. <똑바로 살아라>의 민정이 같은 캐릭터는 자랑스럽기도 해요.

세편의 시트콤을 하나의 선상에 놓고 변화를 설명할 수 있을까요? 우리 드라마는 자꾸만 현실로 접근하고 싶은 욕심이 커지는 것 같아요. 이웃집 창문을 들여다보는 느낌으로. <똑바로 살아라>에서는 노주현씨가 공익광고를 찍는데 공연하는 아역 탤런트와 계속 싸우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막상 광고가 방영되니까 애들은 감동해서 울고. 이동욱씨가 미니시리즈에 발탁되며 빠지는 경위도 어찌 보면 누워서 침뱉기인데 그대로 이야기로 만들었어요. 변화라면 <순풍 산부인과>는 구성이 단순했죠. 선을 봐서 목소리가 유난히 작은 여자를 만났는데 나중에 그 집에 가보니 온 식구가 목소리가 작더라 하는 1차적 구성이었요. 지금은 재환과 리나 커플의 이야기처럼 큰 스토리가 없더라도 장면의 재미를 주고 복잡한 구성을 하려고 해요. 대신 힘은 약해졌죠. 어려서도 만화 같은 걸 안 보고 자라 <인어공주>처럼 유명한 작품도 모르는데 그래서인지 리얼하지 않으면 재미를 못 느껴요. 뮤지컬이나 오페라도 소양을 쌓아야 하는데, 통 재미가 없어서 못 봐요.

인터넷 시청자 소감 게시판에서 소동난 적도 있었지요? 제 말투가 고분고분하지 않고 도전적이라서.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서 박정수씨가 죽는 마지막회에 대해 뭐 이런 게 다 있냐고 항의가 들어오면 “의견을 수렴하겠습니다” 하는 게 아니라 마치 “그 시각에 뉴스도 하고 다른 채널도 있으니 다른 걸 보시라” 하는 투로 답하니 얼마나 사람들이 화가 나겠어요. 9시20분이 되면(최근 <똑바로 살아라>는 저녁 8시50분으로 방영시간을 옮겼다) 내 자신이 보고 싶은 걸 맘대로 할 테야 하는 마음이 점점 커져요.

시트콤 장르에 대한 특별한 애착이 있나요?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면 장르는 상관없어요. 시트콤은 사람들의 편견부터 개입되는 게 안 좋아요. 시추에이션드라마라고 하면 편한데 괜히 시트콤이라고 하니 지금부터 웃기겠다고 하는 거나 다름없잖아요. 꼭 얇은 지갑을 들고 시장에 가는 것 같아요. 스튜디오를 쓰고 비워주어야 할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까 대본도 불만족스런 상태에서 손을 떼야 하고 동선은 반쪽짜리고, 하루에 100신을 찍으니 맘에 안 들어도 넘어가고 야외 나가서 찍어오면 의도와 어긋나는 것이 더 많고. 영화나 드라마는 잘되건 못되건 최선을 다한 그림을 만들 수 있잖아요. 이젠 고스톱 치는 장면에서 카메라쪽 자리를 비워두는 것도 마음에 걸려요. 내게 남은 이야기가 많지 않으니 아껴서 하고 드라마건 영화이건 좋은 작품을 하나쯤 제대로 만들고도 싶은데, 게을러서 혼자 두면 칠렐레 팔렐레 놀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러나 기본적으로 무엇을 하든 유머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아요. <생활의 발견>에서 예지원 캐릭터가 갖는 유머, 그런 걸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진행 남동철, 김혜리, 백은하·정리 김혜리·사진 이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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