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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풍‥>에서 <똑바로‥>까지,`작가` PD 김병욱 론 [7]
이다혜 2003-05-30

“오늘따라 노형욱씨. 무지하게 오바시네요. ” “오바라뇨. 이게 파카지 무슨 오바에요.” “아니 노형욱씨. 왜 그런 형편없는 농담을 하세요.” “형편이 없으면 아우편은 있나요? ” “아유 노형욱씨. 왜 이렇게 또 말꼬릴 붙잡고 늘어지세요? ” “그럼 소꼬리 닭꼬리 돼지꼬리 붙잡고 늘어질까요? ” ”아유 노형욱씨. 농담도 잘하셔.하하하하하하.” 얼마 만에 듣는 웃음소리던가. 지난 3년의 시간은 미달에게 웃음과 활기를 빼앗아갔다. 그러나 감상에 빠질 시간이 없다. “시끄럽다, 음란사이트나 뒤지는 너희 같은 꼬맹이말고 어른은 없느냐? ” 그때 밖에서 노주현의 차가 집 앞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미달은 서서히 다가오던 노주현의 검은색 세단 앞을 막고 섰다. 부드럽게 창문을 내리는 주현은 온화한 목소리로 미달에게 말을 건낸다. “왜? 사인을 원하나? ”

“왜? 사인을 원하나? ”

노주현 | 만년 소방파출소장이었던 그는 아줌마들에게 먹히는 얼굴로 탤런트로 업종전환했다. 아내였던 박정수의 무덤에 때도 안 말랐는데 아나운서 김연주와 재혼을 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지조없는 남자.

이응경 | 예쁜 외모와는 달리 오랜 가난과 고생 탓에 상당히 염치없는 아줌마가 된 여자. 어떤 상황에서도 돈을 챙긴다. 미달에게도 역시 밥값을 잊지 않는다.

그러고보니 주현과 미달은 초면이 아니었다. 한때 ‘마음의 불을 끄지 못하여’ 고민하던 미달은 소방서에 있던 노주현에게 은혜를 입은 적이 있다. 이 사람일까? 미달은 잠시 고민한다. 아빠와 엄마,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두 몰살시키고 소방서를 차리기 위해 혹시 이 사람이 나를 3년 동안 가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유일한 단서인 ‘K’라는 이니셜은 ‘노주현’ 이름 어디에도 적용되지 않았다. “아이∼몰라 몰라 몰라아~.” 갑자기 용녀가 그들 앞을 확 스치고 지나갔다. 시스템의 오류는 여기저기서 시시때때로 나타난다. 그떄 주현은 미달에게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놓았다. “자네 아버지가 살아 있네….” 더벅머리 가발을 벗고 휑한 가운데 가르마를 드러내며 다가오는 사람은 바로 꿈에도 그리던 아빠, 영규가 분명했다. “아… 빠? 난 아빠가 죽은 줄로만 알았는데….” 영규는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었다. 시스템과 결탁해 아내와 딸을 버리고 주현정형외과에 취업한 그는 이응경이란 새 여자와 결혼해 배다른 동생 혜진을 낳았다.

그때 형욱이 뒤에서 속삭인다. “최근엔 아저씨는 자기 이름의 ‘박’, 혜진이의 ‘혜’, 응경 아줌마의 ‘경’ 자를 따서 ‘박혜경’이라는 차를 경품으로 타고 즐거워하기도 했어요.” “그…래…?” 미달의 머릿속엔 온 동네 잔칫집을 돌며 돼지머릿고기와 광어를 훔쳐먹던 다정했던 아빠 영규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그랬군,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 거야. 엄마를 배신한 사람이라면 다 쏴죽여버리겠어” 미달 리로디드의 잘 단련된 근육질의 팔이 재빨리 총을 찾았다. 그때 저 멀리서 단명이 흘러 나왔다. “안 돼!!!!!!!” 응경이었다. 아빠를 빼앗은 여자, 그녀였다. “아니… 그러니까.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저… 밥은 먹고 이야기를 하자구….” 많은 것을 잃었지만 식욕만큼은 좀체로 사그라질 줄 몰랐던 미달은 그 말에 자동적으로 총이 내려졌다.

밥은 모든 이들을 평화롭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니, 이거 못 보던 옥돔인데 어디서 났어?” “어… 당신 처제가 놔두고 갔어? ” “처제? 아 혜교 처제….” 2년 전 가을, 동화구연대회에서 숫검댕이눈썹과 공동우승을 차지하면서 이름을 알린 혜교는 결국 창훈을 배신하고 순풍 산부인과를 떠났다. 요즘엔 제주도 카지노에서 만난 새 애인과 이탈리아 등지를 여행하며 호화로운 생활을 구가하고 있다고 했다. “세상 정말 엿 같군. 궁뎅이마저…이런 쉣!” 원래도 건전한 어린이가 아니었던 미달의 입에서 이런 상소리가 튀어나오는 것이 크게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투에서는 지난 3년간 그녀가 겪었을 고단한 세상의 그늘이 느껴졌다.

그때 이응경은 미달에게 눈짓을 보낸다. ‘밥 밑에 고기 깔았어~.’ ‘흥! 나쁜 여자 우리 아빠를 뺏어간 것도 모자라서 내 환심을 사려고 하다니….” 그러나 이런 미달의 예상은 벗어났다. 응경이 관심을 둔 것은 영규의 목숨도, 미달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아니… 밥을 먹었으면 돈을 내야지… 아무리 아가씨가 뭐 혜진이 아빠 친자식이라고 해도 공은 공이고 사는 사지!” 세상은 비정한 거다. 혹시 K는 응 ‘경’의 K가 아닐까. “저 아줌마 진짜 치사해요 . 돈벌레예요 돈벌레… 타고난 뻔순이.” 더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배도 부르겠다, 이제 다 쓸어버리겠어, 어차피 복수란 건 무의미해져버렸어! ” 그때 저 멀리에서 하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놈들들들들들들… 오바 하지마마마마마마마.”

“오바 하지마마마마마마마.”

박영규 | 순풍 산부인과가 문을 닫고 소방서가 들어서면서 일자리를 잃었으나 동정심을 유발시키던 숱없는 머리를 더벅한 가발 속에 숨기고 주현정형외과에 위장취업에 성공했다. 그 와중에 마누라까지 바꾼 얍삽한 인물. 지금은 간간이 들어오는 의료기상의 ‘떡고물’을 에너지원 삼아 노주현의 비위를 맞추며 살아가고 있음. 미달의 등장으로 가장 큰 혼란에 휩싸인다.

혜교 | 튼실한 하체로 미달에게 늘 ‘궁뎅이’를 집중 가격당하던 꿈 많고 불평 많은 소녀였던 혜교는 2년 전 가을, 동화구연대회에서 입상하면서 홍제동을 떠났고 우연히 제주도 카지노에서 만난 남자와 결합하면서 신분상승을 이룬다. 3년 만에 재회한 미달을 모른 척 무시한다.

저 하늘에서 들리는 듯한 소리. 시스템이다. S·B·S(식충이 박멸 시스템)의 주조정실에 앉아 요상해도 이렇게 요상할 수 없는 인간들을 세상에 창조해낸 그는 끝내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채 미달을 향해 말했다. “니가 찾고 있는 사람은 아마 나, 김병욱일 것이다. 그러나 너 정도의 내공으로 나를 파괴할 수는 없어. 3년 전 점점 식량자원이 고갈되어가는 이 세계에서 미달이네 가족처럼 먹는 걸 밝히는 인종들은 격리수감되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니가 야밤에 훔쳐먹은 개고기에 약을 타서 잠재운 뒤 다른 세계로 던져버렸던 거야. 그러나 문제는 다 노구, 그 영감 때문이었다. 살려두는 것이 아닌데…. 그 영감이 먹다 흘린 과자부스러기 때문에 쥐가 생겨 시스템에 작은 구멍이 나면서 니가 다시 이 세계로 흘러올 수 있게 된 거야. 그러나, 너의 부활을 안 이상 그대로 살려둘 순 없다!”

결국 시스템 본부에서 쏘아내린 불빛은 다스베이더의 광선검처럼 강하고 분명하게 날아들어 미달 리로디드의 급소에 똥침이 되어 꽂혔다. 순간 미달의 몸은 마치 활처럼 휘어져 공중으로 붕 날듯이 뜬 뒤 이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 시스템… 당신의 순풍은 웬만해선 똑바로 막을…수…없…군….” (풀썩) 그때 쓰러지는 미달을 받아낸 건 정배였다. 미달은 정배의 가슴에 안겨 조용히 마지막 가쁜숨을 내쉬었다. “아… 정배로구나. 그거 알아? 나 사실 그동안 너무 많은 일이 있었어. 엘리베이터에 나비넥타이 낀 사연? 그건 말로 못해. 지하철문에 핸드백 끼고 달린 사연? 그것도 말로 못해. 한숨자고 나니 불빛 하나 없는 종점? 황당해 말로 못해. 혼자 졸고 있는 저 가로등이 나일까… 태어나서 처음 본 세상, 울 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는 일들이… 아… 아….”

조용히 정배의 어깨에 기대어오는 미달의 머리. 정배의 어깨축이 이내 축축해졌다. 그리고 조용히 이마를 치던 정배의 입에서는 작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맙소사!” 글 백은하 luc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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