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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2 리로디드>의 의문점 9가지 Q&A [1]
김현정 2003-05-30

네오는 왜 실컷 싸우다가 하늘로 날아가지?

1999년 세계를 휩쓸었던 한마디는 “매트릭스란 무엇인가?”(What Is Matrix)였다. <매트릭스>는 한줄의 광고카피가 곧 영화 자체라는 사실을 증명하면서 끝없는 질문과 마침표를 찍지 못한 대답들을 쏟아내도록 만들었다. 철학자들이 책을 한권씩 쓸 수 있을 정도였으니, 한낱 주간지가 Q&A라는 기획을 만드는 건 가당치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매트릭스2 리로디드>는 전편이 탄탄하게 짜맞춘 구조를 조금씩 파먹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리로디드>는 “왜?”라는 지적인 질문에서 “왜!”라는 허무한 탄식으로 자리를 옮겼다. 물리력을 초월한 듯 신비한 고리들을 남기면서 공중을 꿰뚫던 총알은 네오의 절대적인 손바닥 앞에서 창문에 붙여둔 포도씨처럼 멈춰섰고, 시스템과 단절한 에이전트 스미스는 그새 인간의 유머감각까지 익혔는지 황당한 표정으로 네오가 떠난 자리에 남아 있다. <매트릭스3 레볼루션>이 이 거대한 신화를 마무리할 수도 있겠지만, 그때까진 삼삼오오 모여서 궁금증을 풀어봐도 좋을 것이다. 여기 있는 건 <…리로디드>를 향해 던지는 몇 가지 질문, 워쇼스키 형제에게 물어봐야 마땅하나, 그들이 인터뷰를 하지 않는 탓에 누구도 묻지 못할 질문들이다. 일단 묻기는 한다. 그러나 무책임하게도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고 외면하고 싶다.

Q <매트릭스>에서 오라클은 네오가 ‘그’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녀는 왜 그렇게 말했을까? <매트릭스2 리로디드>에선 네오를 ‘그’로 대할 거였으면서. 그리고 오라클은 컴퓨터 프로그램답지 못하게 왜 그토록 모호한 대사로 일관하는 걸까.

→ 오라클은 네오가 ‘그’일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다음 생에서라면 또 모르지”(Your next life. Who knows?)라고. 그 예언대로 네오는 <매트릭스> 끝부분에서 호흡을 멈췄고, 트리니티의 키스를 받아 부활한 뒤 진정한 메시아로 거듭난다. 오라클이 그처럼 애매하게 말할 수밖에 없는 건 이름과 함께 받아들인 숙명 탓이다. 오라클은 (고대 그리스의) 신탁, (예루살렘의) 지성소, 예언자라는 뜻을 가진 단어다. 고대 그리스에서 신탁은 흔히 아폴론을 섬기는 델포이 신전의 신탁과 동일시됐고, 그 신탁은 모호하기로 이름높았다. 오이디푸스만 해도 신탁을 잘못 해석해서 신세를 망친 바 있다. 이상한 일은 오라클이 네오에게만 모호했다는 것. 모피어스에겐 “네가 ‘그’를 찾아낼 거야”, 트리니티에겐 “네가 사랑하는 남자가 ‘그’야”라고 똑 부러지게 말해준 듯하다. 오라클이 여자인 까닭은 아폴론이 암뱀 피톤을 쏘아죽인 뒤 속죄의 의미로 오직 여성만 사제로 삼았기 때문일 것이다.

Q 네오는 100여명의 에이전트 스미스와 싸우다가 결국 하늘로 날아오른다. 왜 그는 처음부터 날아가버리지 않았던 걸까.

→ 국적과 노소를 불문한 전세계의 평론가들이 이걸 궁금해했다. <롤링스톤>의 피터 트래버스는 네오가 “재미로, 시험삼아, 관객을 위해” 그랬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워쇼스키 형제가 들었으면 기분 나빠했을지도 모르겠다. 트래버스도 이건 “쉬운 대답”이라고 전제했으니 어려운 대답을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네오는 스미스가 업그레이드됐다는 사실을 깜박하고선 100명도 문제없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아니면 자기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깜박? 혹은 메시아로서의 자존심이 훌쩍 도망가는 걸 허락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네오가 날아다니기만 한다면 무술수련하느라 죽도록 고생하는 다른 배우들이 반기를 들지도 모른다는 고민의 소치일 수도….

Q 그렇다면 스미스는 왜 날지 못하는가? 그는 이제 매트릭스 시스템의 일부도 아닌데.

→ 마음을 자유롭게 하지 못해서 그렇다. 프로그램의 한계다. 혹은 그에겐 모피어스 같은 사부가 없었다. 아니면 100명의 분신들을 추스르느라 바빠서.

Q 페르세포네는 매트릭스의 모든 문을 열 수 있는 ‘키메이커’를 네오의 키스 한번에 넘겨준다. 네오가 좋아서가 아니다. 그녀는 게임 <엔터 더 매트릭스>에서도 고스트와의 키스 한번에 만족했다. 페르세포네가 그 이상을 요구하지 않는 이유는.

→ 여러 가지 설이 있을 수 있다. 먼저, 맛보기다. <매트릭스2 리로디드>는 페르세포네가 남편의 사주를 받아 “네오를 치명적인 위험에 빠뜨린다”고 홍보했는데, 정작 치명적인 위험에 빠진 건 “이놈의 여편네, 가만두나 봐라”고 분통을 터뜨리는 남편 메로빈지언이다. 홍보를 믿어본다면, 네오에겐 뭔가 더한 위험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키스는 결정적인 그물을 치기 위한 입질용 미끼가 아니었을까? 혹은 시간도 없는데, 장소도 마땅치 않고, 보는 눈도 있고 해서, 대충 끝낸 거다, 성감대가 혀에만 쏠려 있는 거다, 트리니티가 무서웠던 거다라는 소수 의견도 있다. 그녀에게 이름을 준 그리스 신화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페르세포네는 저승을 지배하는 하데스에게 강제로 끌려가 결혼을 했다. 시작은 별로였지만, 이후 그녀는 꽤 정숙했던 것 같다. 신화 속의 그녀는 항상 하데스 곁에 얌전하게 앉아 있는 모습으로 등장하므로 <매트릭스2 리로디드>의 페르세포네도 키스까지만 허용하는, 억눌린 한이 많지만 나름대로 착한 아내가 아니었을까?

Q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와 그의 함선 느부갓네살호 대원들은 파수꾼 역할을 하는 기계 ‘센티넬’을 무력화하는 전자파 EMP가 자신들의 유일한 무기라고 말했다. 그런데 애니매트릭스 시리즈의 <오시리스 최후의 비행>에 나오는 오시리스호는 EMP도 있고 커다란 기관총과 비슷한 무기 몇대도 장착하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인가.

→ 모피어스는 인간의 도시 시온을 지키는 함대사령관 락과 앙숙지간이다. 모피어스의 옛 연인 니오베가 두 남자 사이에 끼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락은 오라클과 메시아와 예언 운운하는 모피어스가 시온을 말아먹을 정신나간 함장이라고 믿고 있다. 따라서 상관인 락은 모피어스에게 EMP만 되는 낡은 함선을 주고 “전부다 이래”라고 설명했을지도 모른다. 오시리스호와 느부갓네살호는 이름부터 격이 다른 것이 사실이다. 오시리스는 죽음에서 부활해 저승을 다스리고 죽은 자를 심판하는 이집트의 주신(主神) 중 하나고, 느부갓네살은 선지자 다니엘을 핍박하다가 그를 정점으로 왕국은 쇠락하고 멸망하리라는 예언을 듣는 폭군이다. <다니엘서>는 “그는 세상에 쫓겨나 소처럼 풀을 뜯어먹으며 몸은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에 젖었고…”라고 느부갓네살의 미래를 경고한다. 저승의 신 오시리스는 이름이 주는 불멸의 느낌과 달리 일찍 최후를 맞았지만, 느부갓네살호의 몰락과 함께 시온이 파멸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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