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적 실험보다 기자회견이 더 두려워”
칸 최고의 화제작 <도그빌> 감독 라스 폰 트리에 독점 인터뷰
칸영화제 기간 중에 입장 경쟁이 가장 치열했던 시사회와 기자회견을 꼽으라면, 단연 <도그빌>을 들 수 있다. 이날 기자들은 참 많이 뛰었다. 아침 8시30분이라는 이른 시각에 열리는 기자시사에 늦지 않기 위해, 2시간58분의 러닝타임을 꼬박 지킨 뒤엔 기자회견장의 자리를 맡기 위해, 뛰고 또 뛰었다. 엄청난 취재 인파가 몰려든 탓에 안전사고를 우려한 회견장 가드들은 ‘과잉 진압’으로 원성을 사기도 했다. 이런 열기는 멀리 할리우드에서 왕림한 니콜 키드먼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도그빌>이라는 작품에 대한 경탄 또는 혐오의 마음, 괴물 같은 감독 라스 폰 트리에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이렇듯 <도그빌>이 영화제 중반, 핫이슈로 떠오른 것은 소재와 형식, 어느 하나 범상한 구석이 없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공황기의 미국, 작은 마을에 찾아든 천사 같은 여인이 사랑받고 학대당하고, 탈출과 복수를 꿈꾸게 되는 과정을 그린 <도그빌>은 라스 폰 트리에의 ‘미국’ 3부작(U, S and A triology) 중 그 첫 번째 작품이다. ‘희생자의 역습’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 관객을 불편하고 불쾌하게 할 소지가 다분한, 매우 논쟁적인 작품이다. 또한 연극과 소설을 천연덕스럽게 접합해 보이며 ‘영화적이란 게 대체 뭐냐’고 빈정대는 듯, 낯설고 대담한 스타일을 전시하는 영화다. 영화제가 후반으로 치닫고 있는 시점까지 <도그빌>은 경쟁 진출작 중에서 미국과 유럽의 유력 평론가들로부터 가장 높은 평점을 받아냈다.
라스 폰 트리에를 <도그빌> 기자 시사 직후에 열린 기자회견장에서, 그리고 칸과 니스 사이 바닷가 호텔에서, 두 차례 만났다. 기자회견장에서 미국 기자들의 무례하고 공격적인 질문에 때론 날카롭게 때론 시큰둥하게 반응했던 그는, 며칠 뒤 주선된 다국적 그룹 인터뷰에선 좀더 나긋해진 태도로 <도그빌>에 대해, 작품을 둘러싼 이런저런 반응들에 대해, 영화작업에 대한 애증의 심경에 대해 털어놓았다.
당신은 안전불감증이 있는 것 같다. 언제나 위험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또 성사시키는 비결이 뭔가. 나도 잘 모르겠다.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서 새로운 실험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가 두려워하는 건 이런 자리다. 기자회견장이나 인터뷰장. 모처럼 많은 배우들과 함께 일하면서, 좋은 호스트가 되려고 했는데, 잘해냈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대단한 배우들과 함께할 수 있었던 걸 행운으로 생각한다.
<브레이킹 더 웨이브> <어둠 속의 댄서> 그리고 <도그빌>까지 당신은 언제나 여주인공을 고문하고 괴롭힌다. 대체 왜 그러는 건가. 남자를 고문하는 것보다 여자를 고문하는 것이 더 흥미롭기 때문이다. 그건 내 취향의 문제다. 그리고 이 영화를 그렇게 이해했다면, 그건 너무 피상적인 해석이다. 유감이다.
미국에 대한 3부작 영화를 찍을 만큼 미국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나. 난 그렇게 주장한 바 없다. 이건 미국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내가 구상한 인물과 사건이 미국이라는 공간을 빌리고 있는 것뿐이다. 내가 가본 적 없는 나라를 무대로 영화를 만든다는, 그렇게 다른 얘기가 나올 수 있을 거라는 아이디어가 나는 좋았다. 내가 갖고 있는 미국에 대한 느낌 그리고 지식에 대한 영화라고 이해하면 된다. 나는 종종 내가 곧 미국인인 것처럼 느껴진다. ‘Ich bin ein America!’ 내가 미국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이 영화는 ‘이라크 해방‘에 이은 일종의 ‘미국 해방‘ 캠페인 같은 거다. 나는 이라크 다음은 미국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널리스트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거나, 잘못된 커뮤니케이션 때문에 내가 그렇게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미국에 대한 이미지는 그렇다. 받아들이든 말든 상관없다.
당신은 <도그빌>이 미국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당신의 머릿속에 있는 미국에 대한 영화라고 밝혔다. 미국에 가봤다면, 영화가 많이 달라졌을까. (잠시 생각) 그런 것 같다. 그렇게 믿고 싶다.
반미영화라는 반발에 당신은 어떻게 대응하겠나. 아직 리뷰들을 못 봤다. 원래 잘 안 본다. 내 생각에 정치적으로 도덕적인 부류는 미국인 전체의 10% 정도인 것 같다. 물론 요즘 덴마크도 그보다 낫다고 볼 순 없다. 난 반미주의자는 아니다. 다만 이즈음의 미국 정치노선에 반대하는 것뿐이다. 서구사회 전체가 이슬람 문화권과 맞서야 한다는 건 정말 어리석은 주장이다. 아무리 슈퍼파워가 있다고 해도, 그래선 안 된다. 그건 역사가 허락하지 않는다.
이 영화작업에 착수한 시점은 이라크전 발발 훨씬 이전일 텐데. 물론이다. 훨씬 이전에 시작했다. 좀 당황스럽다. 내가 여기 칸에 오자마자 정치적으로 굉장히 올바른 사람인 양 다뤄지고 있으니. (폭소)
마지막 그레이스의 복수 장면이 9·11 사건을 연상시킨다. 어찌 보면, 테러리즘을 옹호하는 것 같기도 하다. 테러리즘이고 파시즘이라고, 분명 그렇게 볼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걸 옹호하거나 방어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테러리즘은 위험하다. 특히 정치적으로 테러를 동원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다. 테러는 국제법으로 금지돼왔지만, 미국에서만은 예외인 것 같다. 미국은 독립전쟁, 남북전쟁 등의 테러리즘으로 건설된 나라니까.
미국이 자기 반성이나 성찰이 없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렇게 본다. 학급에서 가장 힘이 센 아이가 있다고 치자. 그 아인 친구들에게 너그러워야 한다.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의 비판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한다.
당신은 도덕주의자인가? 점점 그렇게 변해간다는 인상을 준다. 부인하고 싶지만, 아마 그럴 거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그렇게 변해가는 것 같다. 그게 굳이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관객의 감성에 호소한 <어둠 속의 댄서>에 비하면, <도그빌>은 지성과 이성에 어필하는 작품인 것 같다. 그렇게 볼 수 있다. 영화로 다양한 길을 갈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내 자신에 좀더 가까이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비꼬는 듯한 내레이션은 나 자신의 삐딱한 성향을 많이 반영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3부작은 ‘골든 하트’ 3부작 보다 훨씬 개인적인, ‘라스 폰 트리에적인’ 프로젝트다.
제목이 왜 ‘개의 마을’인가. 어떤 함의가 있는 것인가. 오랜 작업 파트너인 작가와 함께 아주 특별한 제목을 지어보자면서, 오래 고민했다. 왜냐면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파괴하느냐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특별한 제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그들 안의 야수와, 동물과 공생한다. 그래서 ‘개의 마을’로 정하기로 한 것이다. Dog’s ville이 아니라 Dogville인 것은 의도된 실수다. 재밌자고 그런 거다.
2부는 <만달레이>(Manderlay)라고 밝혔는데, 3부의 제목은 정했나. <워싱턴>이다. 그런데 h가 빠진, ‘Wasington’이다. <도그빌>이 끝난 뒤 몇주 뒤의 상황인데, 그레이스와 아버지의 이야기다. 갱스터 파워를 좋은 일에 쓴다는 얘기다.
<도그빌>의 세팅은 매우 단순하다. 작업이 수월했을 것 같진 않은데. 그렇다. 복잡하게 만드는 것보다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 훨씬 어렵다. <도그빌>을 촬영한 6주는 재미라는 걸 느낄 수 없을 만큼 너무나 힘들었다. <어둠 속의 댄서>와 비길 바가 아니었다. 그래도 각본과 편집과정은 재밌었다. 종종 15명의 출연진 전원이 한신에 동시에 등장하기 때문에 지휘하기가 난감했던 기억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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