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칸에서 날아오는 소식을 접하면서 왠지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아마도 지난해를 기억하기 때문일 겁니다.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과 박진표 감독의 <죽어도 좋아>가 나란히 레드 카펫을 밟았던 2002년은 분명 한국영화의 행복했던 한해로 기억될 만했으니까요. 그러나 데뷔작으로 너무나 과도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했던 박진표 감독은 아마도 빨리 이 모든 관심과 흥분이 잦아들길 바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뒤로 1년, 지난해 12월에 조용히 개봉을 마치고 두 번째 작품준비에 여념이 없는 박 감독은 등급이니 뭐니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작품에만 신경쓸 수 있는 요즘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고 합니다.
지난달, 언제나처럼 운동화 한 켤레에 큰 배낭을 짊어지고 내려간 부산에서 그는 바닷바람을 쐬며 두 번째 작품의 워밍업을 끝냈습니다. 요즘 한참 시나리오를 써내려가고 있는 <브라보 내 인생>(가제)은 지방 소도시 노총각과 다방 아가씨의 사랑 이야기라고 합니다. “드라마가 강하게 살아 있는 멜로영화인데 쓰다보니 자꾸 코믹하게 되어가서 큰일이에요….” 참, 걱정도 팔자십니다. <죽어도 좋아>도 알고보면 ‘코믹멜로’가 아니었던 가요?. 아직도 머릿속에 하고 싶은 영화가 너무 많다는 그는 세 번째 작품이 될 <그 놈, 목소리>를 영진위 시나리오 지원작 공모에 출품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데뷔작 때문인지 저란 사람에 대해 너무 무겁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제작하겠다고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네요. 하하하….” 멀쩡하게 다니던 방송사 문을 박차고 보통 영화의 1/10도 안 되는 스탭과 예산으로 영화를 만들겠다고 나섰던 분이, 참 걱정도 팔자십니다. 글·사진 백은하 luci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