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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군인의 인생,<코로넬 블림프>
이다혜 2003-05-27

‘영국의 아벨 강스’라 불린 마이클 파웰이 한때 독일의 우파영화사 등지에서 작업했던 헝가리 출신의 유능한 시나리오 작가 에머릭 프레스버거를 만난 것은, 1930년대 후반에 알렉산더 코다의 런던 필름즈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다. 이후 두 사람은 영국적 리얼리즘의 전통에서 벗어나 거의 사치스럽다고 표현해도 좋을 매혹적인 이미지의 영화들을 함께 만들어냈다. 1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삶과 죽음의 문제>(1946), <흑수선>(1947), <분홍신>(1948) 등을 비롯해 모두 열다섯편의 인상적인 영화들을 만들어낸 이 둘의 공동창작 활동은 영화사상 가장 눈부신 창조적 협력관계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할 만한 것이었다. 1939년쯤에서 시작되는(<검은 옷을 입은 스파이>) 그 특별한 협력관계는 1942년에 와서 또 다른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해에 파웰과 프레스버거는 그들 자신의 제작사인 아처스(The Archers)를 설립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후로 둘은 제작, 감독, 각본의 크레딧을 공유하며 영화를 만들게 된다. 파웰과 프레스버거의 1943년작인 <코로넬 블림프>는 아처스를 통해 나온 첫 영화로 두 사람 사이의 이처럼 공고한 파트너십이 공식화되었다는 점에서 우선 역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영화다.

영화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군인들에게 자정에 전쟁이 시작될 것이라는 군사훈련 명령이 하달되면서 막을 연다. 그러나 실제 전쟁은 이처럼 규칙에 따라 수행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젊고 혈기방장한 장교 하나는 그 즉시 ‘전쟁 게임’에 돌입해 터키탕에서 쉬고 있는 늙은 퇴역 장군 클라이브 캔디(로저 리브시)를 ‘포로’로 삼는다. 캔디는 전쟁은 자정에 시작하기로 되어 있는 게 아니냐고 고함을 치지만 젊은 장교로부터 도리어 언제 전쟁이 규칙에 따르며 일어나는 것 보았냐며 비웃음을 산다. 캔디와 ‘무례한’ 젊은 장교 사이의 몸싸움이 벌어지면서 영화는 40년 전으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캔디란 인물이 그 긴 세월 동안 세번의 전쟁(보어전쟁,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군인으로서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는가가 이야기된다.

영화의 제목으로 쓰인 ‘블림프 대령’은 원래 1930년대에 데이비드 로라는 영국의 정치만화가에 의해 창조된 만화캐릭터였다. 이 캐릭터를 통해 데이비드 로가 겨냥했던 것은 둔탁하다고 표현할 만큼 무모하게 구식의 가치에 매달리는 보수파들에 대한 풍자적인 공격이었다. 파웰과 프레스버거가 스크린 위에 살려낸 ‘블림프 대령’ 캔디도 어떤 사람들이 보기에는 답답하다고 가슴을 칠 정도로 지나치게 꽉 막힌 인물이다. 처음 등장할 때부터 이미 알 수 있듯이, 그는 전쟁도 일종의 ‘게임의 규칙’을 따라서 해야 하는 행위이며 정정당당하게 싸운 쪽이야말로 승리를 쟁취한다고 생각하는 고지식한 이상주의자이다.

그럼 이 대책없는 몽상가를 데이비드 로처럼 파웰과 프레스버거도 조롱하는 쪽이냐고 하면, 결코 그렇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반대로 파웰과 프레스버거는 캔디에게 심적으로 동정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들이 봤을 때, 캔디는 그저 과거의 가치가 아니라 ‘좋은’ 과거의 가치를 고집하는 인물이다. 캔디는 자신의 견고한 명예율 때문에 타락한 시대에서 방황하는 인물로 그려지기에 영화는 그를 비판의 시선을 가지고서만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코로넬 블림프>의 매우 인상적인 한 장면은 이것이 캔디에 어떤 식의 태도를 갖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독일군 장교들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젊은 시절의 캔디는 그들 가운데 하나, 즉 앞으로 그와 평생의 우정을 나눌 친구가 될 슐도프(안톤 월브룩)와 결투를 벌여야 한다. 이들 사이의 결투에 앞서 펼쳐지는 영화는 어리석다고 생각될 정도로 ‘이상한’ 의례를 한참 보여주더니 정작 결투가 시작되자 카메라를 공중으로 올려버리더니 결국 결투장면으로부터 시선을 거두고 만다. 피로 얼룩질 싸움장면을 지켜보느니 차라리 다소 우스꽝스럽더라도 나름의 명예율에 입각한 의례(혹은 허례?)를 보는 게 낫다는 것이다!

사랑, 우정, 상실 등의 행로를 거쳐가는 캔디의 감상적이면서도 코믹한 여정을 미묘한 톤으로 그린 <코로넬 블림프>는 전쟁이 한창이던 어려운 시절에도 기어코 테크니컬러를 이용해 찍었다는 점에서 화려한 비주얼에 대한 파웰과 프레스버거의 집착을 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영화는 윈스턴 처칠의 분노를 사 유명해진 영화이기도 했다. 영국의 군인이 적국의 장교와 평생의 친구로 지낸다는 설정이나 캔디가 치사하게 싸우는 전쟁이 무슨 소용이냐고 한탄하는 장면 같은 것은 처칠이 보기에 이적 행위 같은 것으로 비쳐졌는지도 모른다. 덕분에 영화는 오랫동안 다른 나라에 수출되는 게 금지되었고 나중에 미국에서 공개되었을 때는 전체 163분의 러닝타임 가운데 50여분이 잘리는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홍성남/ 영화평론가 gnosis88@yahoo.com

The Life and Death of Colonel Blimp1943년, 감독 마이클 파웰, 에머릭 프레스버거출연 로저 리브시, 데보라 카 | 화면포맷 4:3 풀스크린오디오 돌비디지털 2.0 | 자막 한국어, 영어출시사 한신코퍼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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