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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2 리로디드> 스포일러 [2]
김혜리 2003-05-23

정의와 역사

생체전기는 인간을 가뒀다

|||||||||||||||||||||||| 매트릭스란 <매트릭스>에서 가장 창의적이면서 섬뜩한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시대(1편에서는 1999년, 그러니까 2편에서는 2003년일 것이다)는 미래인 2199년에 만든 디지털적인 가상세계라는 기가 막힌 설정이다. 매트릭스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은 가상적인 인간이고, 매트릭스를 해킹해서 (우리의 현재이자 영화에서의 과거세계인) 매트릭스와 (우리의 미래이자 영화에서의 현재 세계인) 시온을 왔다갔다하는 인간은 진짜 실재의 인간이다.

매트릭스는 철저히 수학적이고 함수적인 계산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세계다. 계산되는 세계는 완벽한 통제가 가능하다. 그런데 함수적인 계산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은 시온이 있다. 매트릭스를 만든 인물은 이 시온의 세계를 파괴하고 모든 존재를 매트릭스로 만들어 완전한 지배를 꿈꾼다. 그 어느 곳도 예외가 될 수 없는 완벽한 필연의 세계, 모든 선택이 필연적으로 이미 그렇게 선택하도록 되어 있는 세계가 매트릭스의 세계다.

<매트릭스>에서 약간씩 언급되던 선택이니 운명이니 필연이니 하는 말들이 <매트릭스2 리로디드>에서는 영화 전체를 이끄는 키워드처럼 중요한 장면에서 수시로 등장한다. 메시아로 운위되는 네오마저 매트릭스의 필연성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아 보일 정도로 매트릭스의 포괄적인 필연성이 강조된다. 매트릭스 소스를 관장하는 신적인 인물은 네오가 시온을 살릴 것인가, 아니면 그의 애인인 트리니티를 살릴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후자를 택할 때, 네오의 두뇌가 트리니티를 살리는 쪽으로 이미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매트릭스> 시리즈를 보고나면 왠지 불쾌한 묵시록적인 기분이 다가온다. 그것은 우리의 삶의 터전인 현실세계를 가상의 필연적인 매트릭스 세계라는 사실을 주입시킴으로써 영화를 보고 난 뒤 돌아오게 되는 구체적인 우리의 삶의 세계를 정말이지 공허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식하게도 매트릭스 속에서 기계적인 노예인 것도 모르고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 매트릭스의 역사 인간은 어쩌다가 기계들의 식량으로 전락했는가. 워쇼스키 형제는 영화 안에서는 말할 수 없는 긴 역사를 시나리오에 기록해 <애니매트릭스>의 에피소드 두개로 나누어 담았다. <청의 6호>의 마에다 마히로가 연출한 <두 번째 르네상스 1, 2>, 억제된 스타일로 전쟁과 굴욕의 역사를 읽어내리는 에피소드가 그것이다. 영화 <매트릭스>는 모피어스를 통해 인간은 기계를 파괴하기 위해 “하늘을 불태웠다”는 희미한 단서를 던졌다. 인간이 그처럼 차마 못할 짓을 하기까지의 사정은 이렇다.

문명이 절정을 이루었던 20세기 말, 인간은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을 생산에 이용했다. 로봇은 차츰 인간생활 모든 부분에 필요한 존재가 돼갔지만 그에 상응하는 대우 대신 학대만을 되돌려받았다. 마침내 어느 로봇의 주인 살인사건을 계기로 인간과 기계 사이의 갈등이 폭발했고, 학살에서 살아남은 기계들은 자기들끼리 조그만 나라를 이루어 살아갔다. 마치 인간의 도시 시온처럼. 그러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엄청난 능률을 가진 기계국가는 인간을 위협하면서 경제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인간은 성장하는 기계국가에 공포를 느껴 두 번째 전쟁을 시작했고, 태양 에너지를 차단하기 위해 하늘을 태워 검은 연기로 세상을 덮었다. 인간은 파멸을 자초한 것이다. 기계는 태양 에너지가 고갈되기 전에 인간의 신체를 대체에너지원으로 개발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진 체온, 인간의 신경이 활동하면서 생산하는 에너지는 전쟁을 기계의 승리로 이끌었다.

그렇게 ‘매트릭스’는 시작됐다. 인간 대표들이 평화조약에 서명한 뒤, 인간은 계속 신경을 움직여 에너지를 생산하도록 투명한 캡슐에 갇힌 채 영원한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이 세상을 지배한다면, 그 악순환이 다시 시작되지 않을까? 그 답에 도달하는 길은 아직 멀다.김현정 parady@hani.co.kr

키워드

|||||||||||||||||||||||| 시오니즘 저항군 기지, 기계에 쫓긴 인류의 마지막 보루, 희망의 근거지…. 시온은 예루살렘의 예루살렘이다. 다윗은 예루살렘 언덕 하나를 중심으로 수도를 세웠고, 법궤를 여기로 옮겨와 이스라엘의 정치 및 종교적인 중심지가 되었다. 유대 민족주의를 뜻하는 ‘시오니즘’도 여기서 유래. 시온을 움직이는 것도 바로 저 기계들이야, 라고 네오를 데리고 시온의 가장 밑 동력실로 안내한 원로의원은 나지막이 내뱉는다. 시온이 해방구가 아닌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지배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 메시아 세례 요한은 예수가 메시아인 것을 발견하고 믿음으로써 기독교를 탄생시켰다. 고대 유대인들의 메시아 사상도 이와 다를 바 없다. 모피어스가 세례 요한이라면 네오는 예수인 셈이다. 하지만 <매트릭스>에서 구원의 의미는 유대-기독교와 아주 달랐다. 기독교에서는 신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어 신에게 도전하는 데서 인간의 죄와 사망이 비롯된다. 메시아인 예수는 곧 신이다. 신이 인간을 사랑한 나머지 신이 인간을 대신해서 죽임을 당함으로써 신과 인간이 통일을 이룬다는 것이 기독교의 메시아 사상이다.

<매트릭스2 리로디드>에서는 예외없이 인과론적인 철저한 필연성으로 움직이는 매트릭스의 세계로부터 자유로운 선택을 원하는 인간세계를 구원해내는 역할을 하는 자가 메시아다. 따라서 메시아가 되기 위해서는 철저한 필연성에 의한 미래의 결정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네오가 메시아가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중요한 장면이 있다. 네오가 매트릭스의 소스에 접근했을 때 자칭 매트릭스를 창조하고 부수고 재창조하는 능력을 지닌 인물이 나타난다. 그는 네오가 불규칙성의 함수관계가 잘못 들어가 만들어진 인간이라고 말한다. 인과적인 필연성이 제아무리 복잡한 병렬적인 피드백의 원리로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지독한 불규칙성을 제어하지 못한다.

이 점을 감안하면 <매트릭스2 리로리드>에서 암시하는 메시아는 철저한 우발성과 돌출성에 의거한 존재의 가능성, 즉 그 어떤 디지털적인 함수적인 장치에 의해서도 만들 수 없는 존재를 의미한다. 우리의 현실을 철저히 디지털화한 매트릭스의 가상세계로 설정한 것은 우리가 말하는 자유의지나 사랑을 비롯한 모든 느낌들이 알고보면 누군가에 의해 철저히 조종되는 필연적인 인과성에 의한 것이고 따라서 근본적으로 무의미한 것임을 주장하는 것이다. <매트릭스>적인 메시아는 매트릭스의 불완전성을 드러내는 구멍이다.

하지만 그 구멍은 어둡지 않고 밝다. 밝은 구멍을 통해 아날로그적인 세계의 원천인 진정한 몸을 지닌 인간세계 즉 <매트릭스>의 시온이 디지털적인 매트릭스의 위세로부터 해방될 수 있으리라는 예감을 하게 하는 것이다.조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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