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라프 천사의 또 다른 이름이며 ‘치품 천사’라 하여 천사의 9계급 중 가장 으뜸인 제1계급의 천사이다. 인간과 닮은 모습에 세쌍의 날개를 가졌다. 네오가 오라클을 만나기 직전 중국 복장을 한 세라프와 한수 대결을 벌인다. <와호장룡>에 본 천의무봉함은 없어도 제한된 공간에서 벌이는 쿵후 격투에선 원화평의 홍콩식 무술연출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쿵후 하는 천사라니, 확실히 워쇼스키 형제는 동서고금을 솜씨 좋게 섞어놓는다.
|||||||||||||||||||||||| 오라클 아폴론의 신탁을 전하는 고대 그리스의 여사제처럼 오라클은 여자다. 오라클은 그대로 번역하면 신탁이다. 시온에 속한 진짜 인간들, 특히 그들을 지도하는 모피어스가 전적으로 신봉하는 예언자가 오라클이다. 모피어스에게 전달되는 예언은 메시아인 ‘그’가 나타나 매트릭스를 파괴함으로써 전쟁이 곧 종식되고 시온의 평화가 보장될 것이라는 것이다. 1편에서 오라클은 매트릭스의 세계에 살고 있지만 매트릭스 바깥에서 온 인물처럼 표현된다. 그러면서 스미스 요원 일당과는 반대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표현된다.
그러나 2편에서 오라클은 매트릭스의 체계 내에서 만들어진 인물임을 드러낸다. “당신은 인간이 아니죠?” “그건 무엇보다 확실하지.” “내 짐작에 당신은 기계 세상의 프로그램이오.” 오라클은 네오에게 계속해서 필연성의 인과법칙을 강조한다. 오라클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표현은 우리가 역사적으로 신탁이니 신의 계시니 하면서 믿어왔던 것들은 모두 다 매트릭스의 산물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모피어스는 필연적인 인과법칙인 오라클에 얽매어 있고 그래서 메시아가 될 수 없다. 네오는 오라클의 정체를 알고 난 뒤 오라클을 벗어나고 그럼으로써 결국 매트릭스 소스에 접근하여 신적인 인물을 만난다. 오라클의 정체가 드러나 극복되듯이 아마도 예고되고 있는 3편에서 이 신적인 인물조차 매트릭스의 산물임이 밝혀지면 또다시 극복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네오가 참된 메시아가 아닌 것으로 될 것이기 때문이다.
|||||||||||||||||||||||| 키메이커 <메트릭스> 시리즈에서 ‘문’은 항상 새로운 단계의 세계로 나아가는 통로 역할을 한다. 그런데 그 문을 열기 위해서는 반드시 열쇠가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키메이커의 역할이 성립된다. 2편의 후반부는 이 키메이커를 매트릭스쪽에서 장악하는가 아니면 인간이 장악하는가를 둘러싸고 환상적인 전투와 스릴 만점의 질주를 보여준다. 키메이커는 매트릭스의 비밀을 캐내는 데 필수불가결한 인물이다. 따라서 우리의 현실 인생사가 영화의 설정처럼 매트릭스 내에서 이루어진다면, 키메이커는 우리의 인생사에서 생기는 온갖 물음에 대한 답을 알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인 셈이다.
키메이커는 매트릭스의 산물인 것으로 보인다. 즉 진짜 인간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 키메이커는 인간의 편을 드는 쪽으로 기운다. 오라클의 능력으로는 매트릭스의 소스에 들어갈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일러줄 수 없다. 그러나 키메이커는 모든 물음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열쇠를 만들 줄 아는 인물이다. 결국 네오는 키메이커의 도움으로 매트릭스 소스에 접근하게 된다. 그러고보면 키메이커는 매트릭스의 배반자라 할 수 있다. 이 역시 어쩌면 메시아인 네오처럼 불규칙성의 함수에 의해 잘못 만들어진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키메이커 역시 매트릭스의 산물인 까닭에 결국에는 네오가 자칭 매트릭스 설계자인 신적인 인물의 위대함을 깨닫도록 하는 수단에 불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매트릭스 설계자를 만난 네오가 결국 시온의 구원을 버리고 애인의 목숨을 구할 수밖에 없는 필연에 의거한 선택을 한 것 역시 매트릭스 설계자의 의중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된다. 그러고보면 키메이커는 매트릭스의 또 하나의 하수인에 불과한 것이다. 만약 키메이커가 현실의 성직자나 철학자들을 상징한다면 인간의 부조리한 운명이 얼마나 강고한 것인가를 말할 것이다. 조광제
|||||||||||||||||||||||| 느브갓네살 네오와 모피어스가 타고 활약하는 전함 이름이자 인간도시 시온의 희망호. 이 이름에 우리는 전율을 느껴야 한다. 왜냐하면 얼마 전 이라크 전쟁에서 바그다드 북쪽을 사수하던 공화국 수비대의 최정예가 바로 ‘느브갓네살 사단’이었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라고도 하며 부왕의 뒤를 이어 신바빌로니아 제국을 건설해 이집트와 유대 왕국을 멸망시킨 장본인. 전설의 바벨탑도 그의 이름과 함께하며, 왕비를 위해 공중정원을 짓기도 했다. 이런 때에 그런 이름이라니, 할리우드의 악취미는 고약하다. ‘거북선’이란 이름의 함정으로 일본군이 한국을 침공한 격이라 할까. 그러나 도저히 의미를 알 수 없는 꿈으로 번뇌하던 느브갓네살이 다니엘이라는 예언자를 만나 그 꿈을 푼다는 성경의 이야기처럼, 네오를 비롯한 느브갓네살 전함의 대원들은 가상현실 매트릭스의 진실에 다가선다.김장호
|||||||||||||||||||||||| 시온 다윗이 성궤를 옮겨놓은 장소로 일컬어지는 시온은 <매트릭스2 리로디드>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1편에서 인간의 마지막 도시가 지하세계에 있다는 것을 대사로 알게 된 뒤 처음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기계의 시온 공격이 초읽기에 들어가자 느브갓네살호는 시온으로 향한다. 시온에 진입할 때 관제소의 모습이 나온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톰 크루즈가 투명한 모니터의 정보들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조작하는 것처럼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니터를 이용하여 느브갓네살호를 견인하고 있다. 느브갓네살호의 지저분한 모습이나 시온 전체의 약간 원시적인 분위기와는 어긋나는 풍경이다.
시온이 지하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말도 있었지만, <매트릭스2 리로디드>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모피어스 일행이 시온의 사람들을 만나고, 네오는 처음으로 시온이 어떤 곳인지 보게 된다. 카메라가 비치는 광경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래로 깊게 파들어간 도시다. 수직으로 구멍이 뚫려 있고, 구름다리가 층층이 놓여져 있는 곳.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니헤이 쓰토무의 만화 <브레임>이 떠오른다. 누가 지었는지 알 수 없는 거대한 지하세계, 하늘은 보이지도 않고, 수직으로 무한대의 건물이 이어진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다는 니헤이는 <브레임>의 지하 공간을 과거 어떤 SF에서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이미지로 구축해냈다. <매트릭스2 리로디드>는 <브레임>의 공간을 인용하지만, 그 이미지까지 끌어들이지는 않는다. 문명의 폐허가 인간을 위협하는 <브레임>과 달리 시온은 방공호처럼 도피처이긴 하지만 아늑하고 ‘인간적’인 영역으로 묘사된다.김봉석
|||||||||||||||||||||||| 컨셉추얼 디자이너 조프 대로 스튜디오가 <매트릭스>의 제작을 망설일 때, 워쇼스키 형제는 만화가 조프 대로를 ‘컨셉추얼 디자이너’로 ‘고용’했다. 조프 대로는 ‘네오 누아르’의 수작으로 일컬어지는 <하드 보일드>를 만들었는데, 워쇼스키 형제는 이 만화를 보고 자기들의 구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그가 적격이라고 봤던 것. 파리에 살던 대로는 워쇼스키 형제와 전화통화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팩스로 그림을 넣어주는 작업을 벌였다. 그가 그린 600장의 그림은 스튜디오쪽에 <매트릭스>에 대한 확신을 불어넣어주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매트릭스>에서 실재 세계의 디스토피아적 이미지는 대부분 그가 만들어냈는데 이는 <스타워즈>에서 화가 랠프 매쿼리가 조지 루카스의 요청을 받고 시각적인 기초 작업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생체 에너지를 뽑아내는 인간 발전소의 위압적이고도 놀라운 이미지, ‘느브갓네살’호의 복잡다단한 내부 인테리어, 해파리처럼 움직이는 끔찍스런 살인기계 등은 대로의 스케치로 탄생했고 워쇼스키 형제는 그대로 복사한 듯 스크린에 옮겨냈다. 대로는 프로덕션디자이너 오언 패터슨과 호흡을 맞추며 2, 3편 작업을 계속했다. 2편에서 시각적으로 그로테스크한 쾌감을 주는 건 시온의 동력과 식수 등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지하공장 풍경이다. 이성욱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