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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작 혹평 속,최고 최대 영화제 칸이 56번째 문을 열다 [1]
이다혜 2003-05-23

파업과 사스를 뚫고, 애타게 ‘발견’을 찾아서

칸=글 박은영·사진 정진환·취재지원 성지혜

수만 와트의 햇살이 드리워진 코발트 블루의 바다. 프랑스 남부 휴양 도시 칸의 풍광은 비현실적이다. 비행기에 오르며, 그 믿을 수 없을 만큼 눈부시고 화려한 경치를 등지고, 도저한 작가주의에 동참하기 위해 동굴처럼 어두컴컴한 극장 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현실을 잠시 한탄했다. 그러나 곧 후회했다. 그 현실마저 누리지 못할 뜻밖의 위기 상황이 닥쳤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파업이 유난히 성하다는 프랑스의 5월. 얼마 전부터 노동계의 쟁점으로 떠올랐다는 연금문제로 공공서비스 노조가 파업을 공표한 날은 하필이면 칸영화제가 개막하기 전날인 5월13일이었다. 12일 밤 시간부터 시작된 부분파업으로, 니스로 가는 비행 연결편은 줄줄이 취소되거나 연착돼, 여행객들은 하루 가까이 공항에서 대기하거나밀라노나 마르세유 등의 주변 도시로 둘러 돌아가야만 했다. 파업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기내에서 사스 추정 환자가 발생했다며 신상 명세서를 시시콜콜하게 작성한 뒤에야 풀려난 탑승객도 있었다. 영화제에서는 친절하게도, 사스 증세가 나타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담은 전단을 배포하고 있다. 영화제의 거리 크로와제트의 화두는 지금, 영화가 아니라 파업과 사스다.

프랑스는 반미, 칸은 친미?

개막작 <팡팡 라 튤립>에 출연한 페넬로페 크루즈(왼쪽). 하지만 <팡팡 라튤립>은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내우외환의 악재가 겹친 칸영화제에선 흥성스러운 축제의 분위기를 감지하기가 힘들다. 이는 단지 외부적인 상황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지난해 구색에서나 함량에서나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라인업을 꾸렸던 영화제 프로그램팀은 올해 반드시 모셔오리라 호언장담했던 테오 앙겔로풀로스, 에미르 쿠스투리차, 코언 형제, 왕가위,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쿠엔틴 타란티노 등을 놓치고 말았다. 다만, 라스 폰 트리에, 클린트 이스트우드, 피터 그리너웨이, 라울 루이즈, 앙드레 테시네, 알렉산더 소쿠로프 등 ‘칸 패밀리’ 멤버십 회원들의 신작을 포진시키는 데 만족해야 했던 것. 애초 눈독을 들였던 작품들이 제작 지연을 이유로 줄줄이 출품을 포기하자 프로그램팀의 대안책은 빈센트 갈로나 로우예처럼 경쟁부문에 온 적 없던, 비교적 젊은 감독들의 작품과 프랑스 자국의 영화를 끼워넣는 것이었다. 그 결과, 그간 공식부문에 진출한 적 없는 감독 6인의 작품과 프랑스영화 6편을 섭외했다. 결과적으로 프랑스, 미국, 일본의 영화가 경쟁작의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게 됐다.

여기 재미난 대비가 있다. <카이에 뒤 시네마> 등의 프랑스영화 저널은 “반미 감정에도 불구하고 미국영화의 라인업이 크게 강화됐다”는 데 주목하고 있는 반면, 미국쪽은 “미국영화가 적다”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이는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악화된 두 나라의 신경전의 또 다른 양상이다. 그러나 칸이 ‘반미’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경쟁부문에 미국영화를 3편 초대한 것을 물론, 비경쟁으로 <매트릭스2 리로디드>를 프리미어로 소개하고 <타이타닉>의 제작기에 해당하는 제임스 카메론의 다큐멘터리 <심연의 유령>을 초대하는 등의 배려를 아끼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미국 영화인들 사이에 칸영화제 보이콧 움직임이 있었다는 후문이 돌고 있다.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미국의 대표 선수 스티븐 소더버그와 멕 라이언은 물론 “모르는 일”이라고 입을 모았고, 심사위원장인 파트리스 셰로는 “여기(심사위원단) 프랑스인 셋과 미국인 둘이 모였다. 이건 우리(프랑스-미국)가 대화하고 있다는 증거다”라는 낙관론을 펼쳤다.

올 프로그램이 ‘프랑스 편향’이라는 데 대해 영화제쪽은 그것이 ‘올해의 현실’이라고 응수한다. 프랑스영화가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유난히 풍작을 이뤄냈다는 것. 예술감독 티에리 프레모에 따르면, 그 쟁쟁하다는, 자크 리베트, 카트린 브레이야, 브루노 뒤몽의 신작을 밀쳐내야 했을 정도란다. 데드라인을 늦추면서까지 가능한 한 많은 작품(81개국 2498편)을 보고 또 검토했으며, 지리적이고 주제적인 밸런스를 따진 프로그래밍이라는 것이 영화제쪽의 자랑. 그러나 올해 프로그램에서는 기이하게도 어떤 경향이나 특징을 잡아낼 수가 없다. 검증된 거장과 의외의 신인들을 두루 함께 모은 경쟁부문의 영화들은, 국적이나 세대를 제외하면 주제나 형식적 특성을 일별할 수 있는 다른 카테고리로 분류되지 않는다. 티에리 프레모는 그래서인지, 올해를 영화제의 ‘과도기’ 또는 ‘전환기’라고 소개하고 있다. 무엇으로의 전환인지는, 그조차도 알지 못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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