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그놀리아>로 잘 알려진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2002년작 <펀치 드렁크 러브>(Punch-Drunk Love)의 음악은 매우 흥미롭다. 황홀할 정도로 비현실적이고 달콤한 사랑 이야기에 범죄영화적 요소를 살짝 섞어넣고 있다. 전체적으로 펀치를 마신 얼떨떨함을 즐거우면서도 시니컬하게 유지하는 이 영화의 음악을 맡은 사람은 존 브라이언(Jon Brion). 우리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미국에서는 이미 재능있고 기이한 뮤지션으로 정평나 있는 인물이다. 영화의 센스있는 코믹함과 묘한 비꼬기 등에 걸맞은 음악을 하고 있다.
‘다재다능하다’는 말이 무척 잘 어울리는 그는 폴 토머스 앤더슨과는 이미 <하드 에잇>(1996), <매그놀리아>(1999)에서 호흡을 같이했다. 그는 영화음악가로서는 아직 신참이지만 미국 팝/록계에서는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일급 프로듀서로 분류된다. 그가 프로듀스했거나 함께한 뮤지션들만 봐도 그렇다. 피오나 애플, 에이미 만(이 여가수는 <매그놀리아>에서도 존 브라이언과 함께 음악을 맡았었다), 러퍼스 바인라이트를 비롯해 월플라워, 일즈(Eels), 젤리피시쉬, 게다가 엘리엇 스미스의 음악에까지 그의 손길이 닿았다. 1990년대를 풍미했던 이른바 ‘얼터너티브’ 사운드의 후미를 담당한 프로듀서라고나 할까. 한마디로 지금은 미국에서 ‘사운드의 리더’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또 프로듀서뿐 아니라 직접 밴드를 하는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결성한 ‘그레이스’라는 밴드는 1990년대 중반 딱 한장의 앨범을 발표했지만 인디 팝의 한 전설로 남아 있다. 또 2001년에는 솔로 데뷔 앨범 <무의미>(Mealingless)를 발매하여 좋은 평가를 얻었다. 그는 현재 LA의 유명한 클럽인 ‘라르고’에서 이른바 ‘하우스 밴드’ 역할을 하며 금요일마다 팬들 앞에 서고 있다.
그 와중에 만든 <펀치 드렁크 러브>의 음악은 가히 사운드의 재주꾼 존 브라이언답다. 미국 팝의 역사 전반을 아우르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운드가 혼합되어 있다. 그야말로 ‘푸릇 펀치’와도 같다. 여러 종류의 타악기에서 샘플링한 드러밍 연주곡들은 긴박하면서도 위트있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테크노적인 면도 도입된 이 인상적인 드러밍에서는 그가 미니멀리즘의 먼 제자쯤으로 보이기도 한다. 스트링을 쓸 때에는 시절 좋았던 1950년대의 로맨틱한 분위기가 차용된다. 거의 클리셰에 가까운, 어디선가 들은 듯한 달콤한 선율이 현을 타고 흐르는데 그렇다고 해서 존 브라이언이 이런 음악들을 있는 대로 가만 놔두지는 않는다. 중간중간 날카로운 금속음 등의 사운드를 앰비언트적으로 끼워넣어 불안감을 조장하기도 한다. 이럴 때는 꼭 존 존(John Zorn)의 포스트모던스러운 혼성모방을 연상하도록 한다.
<펀치 드렁크 러브>는 또 해리 닐슨이 만들어서 디즈니의 영화 <뽀빠이>에다가 삽입시킨 <그는 내가 필요해>(He Needs Me), 전형적인 하와이안 발라드 <와이키키> 등 여러 곡의 유행가들을 절묘하게 선곡하고 있다. 이 선곡된 음악들은 예쁘긴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닭살 돋는’ 앙증맞음을 지니고 있다. 일부러 관객을 약간은 닭살 돋게 하는 것이 어쩌면 이 영화의 키포인트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종류의 음악들은 관객의 기분을 부추겨 살짝살짝 들뜨게 한다. 물론 감독은 이런 분위기를 철저하게 이용한다. 존 브라이언의 음악 역시 그만큼의 여유와 냉소를 가지고 감독을 돕는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