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실 벌레를 보고 ‘끼야악’ 하는 소리를 지르거나 쥐를 보고 얼굴이 파래지는 스타일은 아니다. 벌레를 눌러 죽이지는(‘빠지직’ 하는 질감이 싫다) 않지만 책 같은 것에 파란 박스테이프를 양면으로 붙여 그 벌레 위로 ‘터억’ 하고 책을 던져서 ‘이힛 죽였다’ 하곤 한다. 그리곤 방치한다. 테이프에 붙은 동료 시체를 보고 벌레들이 긴장하겠지…. 줄곧 나에게 벌레박멸 퇴치용 책이 되었던 건 <보물섬>이었고 지금은 영화잡지들(^ ^;)이다. 한번은 한참 TV에서 ‘나도 발명가’풍의 프로를 할 때 동생들과 책에 테이프를 양면으로 붙여서 ‘당신마저 할 수 있는 벌레퇴치 발명품’이라고 우기면서 나가보자 하며 정말 잠시 망설이기까지 했다.
같이 작업하는 친구들과 작업실로 지내던 곳이 전세 계약이 끝나 요즘은 모두 월세로 바꾸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새로운 전셋집을 찾기 시작했다. 회비제로 작업실을 운영하는 우리로선 월세는 부담이므로(사실 회비도 잘 안 걷힌다… 다들 돈이 없다) 우리가 가진 보증금으론 서울 하늘 밑에 지하밖에 없었다. 옥탑이라도 찾아볼까 했지만 어찌 그리 옥탑도 없는지 줄곧 우린 지하방을 돌아다니다가 지하철역에서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덜컥 계약을 했다. 지난번 집도 사실 반지하였지만 남쪽으로는 지층과 맞닿아 있고 북쪽으로 지하여서 그럭저럭 쾌적하게 지냈지만 지금은 더더욱 땅속으로, 정확히 말해서 지난번보다 화장실과 방의 높이가 30cm 차이가 났다. 그런데 문제는 채광, 쾌적함 이런 우아한 것이 아니었다. 바로 이사들어 온 날 다소 수다스런, 전에 살던 학생의 아버지가 한 말 때문이었다. “밤에 불끄면 바퀴벌레들이 우르르 몰려나와요.”
제길… 아무 말도 안 했으면 기분이라도 안 나쁠 텐데…. 바퀴벌레는 정말 미친 듯이 나왔다.
그 대답 잘해주기로 유명한 친절하신 세스코를 부르고 싶었지만 비쌀까봐 엄두도 못 내고 동네 방역아저씨를 부르고 철물점에서 방충망을 사다 갈아끼우는 정도로 환경을 바꾸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밤만 되면 우리의 작업실은 스멀스멀 몰려드는 알 수 없는 검은 기운에 무서워지기 시작했고 화장실을 들어갈 땐 꼭 노크를 하고 들어갔다. 안에 사람이 있을까봐가 아니라 쥐와 바퀴에게 사람이 들어가기 때문에 나가달라는 신호를 보내는 셈이다. 그렇지 않으면 문을 열자마자 쥐와 눈이 마주친 동료의 경험담을 되새기며 노크를 하는 것이다.
어느덧 우리의 작업실은 ‘죠의 아파트’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죠의 아파트>(JOE’S APARTMENT, 감독 존 페이슨, 1996), MTV에서 만든 바퀴벌레가 그야말로 떼거지로 나오는 코미디… 4만 마리의 바퀴떼… 변기 속에서 수중발레하는 고놈의 바퀴벌레들…. 촌놈 죠가 도시에 와 오래된 아파트에 기거하면서 그 아파트에 집단기거하는 ‘말하는 바퀴벌레’와 동거하며 벌어지는 이야기. 고놈의 바퀴벌레들은 자기들보다 더 지저분한 죠의 생활방식이 마음에 들어 전폭적으로 지지해준다. 집주인을 쫓아주기도 하고 죠의 직장까지 쫓아가기도 하고…. 그런데 그만 죠의 여자친구에게도 좋은 일을 해준다는 게 그녀의 머리 위에 우르르르….
바퀴의 선심이 사실 뻔하지 뭐… 그냥 변기 속에서 수중발레나 하며 노래나 부를 것이지 고것들 참…. 이 발칙하고 유쾌한 코미디는 사실 영화니까 즐거웠을 뿐이지 고놈의 바퀴벌레들이 그지없이 귀엽지만 현실은…. 변기 속에 고것들이 우글우글 모여 아무리 낭랑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줘도 수중발레 할배라도 싫다…. 아니면 우리 모두 영화 속 죠처럼 벌레마저 좋아하는, 지저분하게 사는 사람처럼 될까 해도(난 될까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 지저분하기도 하다) 모두들 그렇게까지야 못하지…. 결국 우린 가로수, 벼룩시장 등을 열심히 보며 오늘도 지상으로의 귀환을 위해 다시 집을 알아보고 다닌다. 사실 노크 안 하고 들어갔다가 변기 속에서 수중발레하는 쥐와 눈이 마주치는 것은 더더욱 싫으니까…. 김정영/ 영화제작소 청년 회원·프로듀서 sicksadworld@orgi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