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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삭제 고어영화를 만난다, <좀비>

이탈리아 감독 루치오 풀치의 영화가 무삭제로 출시된다는 것은, 사실 놀라운 일이다. 일반 대중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루치오 풀치는 공포영화 마니아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감독이다. 고어의 황제로 불리는 루치오 풀치의 영화는 머리가 터져버리거나 안구를 자르는 등 극악한 고어장면으로 유명하다. 그 덕에 그동안 루치오 풀치의 영화는 아예 비디오로 출시되지 않거나, 나왔어도 누더기가 되고 말았다. <좀비>도 1992년에 이미 비디오로 나왔지만, 중요한 부분은 모두 잘려나갔다.

1927년생인 루치오 풀치는 어떤 장르이건 능숙하게 만들어내는 장인으로 알려져 있다. 뮤지컬과 코미디, 서부극 등 다양한 장르를 만들어내던 루치오 풀치는 60년대 후반부터 스릴러에 주력한다. 가톨릭 교회에 대한 풍자가 문제가 되어 고난을 겪었지만 루치오 풀치는 79년에 만든 <좀비>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이후 루치오 풀치는 <하우스 바이 세미테리> <비욘드> <시티 오브 리빙데드> <뉴욕 리퍼> 등 고어영화의 대표작들을 연이어 발표한다. 하지만 루치오 풀치는 거장으로 추앙받은 ‘라이벌’ 다리오 아르젠토에 비해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각본의 허술함과 캐릭터의 빈약함은 그의 전작에서 항상 비판받는 부분이고, 그의 작품 전체에 흐르는 일관된 사상이나 철학 같은 것도 두드러지게 발견되지 않는다.

<좀비>의 내용도 아주 간단하다. 뉴욕만에 들어온 요트에서 이상한 괴물이 발견된다. 괴물은 경찰 하나를 죽인 뒤 총에 맞아 물속으로 사라져버린다. 요트 주인의 딸인 앤 바울스는 기자인 피터와 함께 사라진 아버지를 찾아나선다. 아버지가 거쳤던 섬에 도착한 앤과 피터는 의사인 데이비드를 만나 아버지의 소식을 듣는다. 섬에는 이상한 병이 돌고 있었고, 아버지도 그 병에 걸려 죽었던 것이다. 병에 걸린 사람이 죽으면 좀비가 되고, 좀비에게 물린 사람 역시 좀비가 되어 섬은 점차 폐허로 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다. <좀비>의 영문 제목은 <Zombi2>다. 그렇다면 1편은 어디로 간 것일까? 조지 로메로의 좀비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인 <Dawn of the Dead>가 이탈리아에 개봉했을 때의 제목이 <Zombi>였다. 파격적인 고어장면과 비관적인 세계관이 인상적인 <Zombi>의 대성공을 본 루치오 풀치는 자신의 영화에 <Zombi2>라는 제목을 붙여 개봉했다. 뉴욕이 좀비 천지가 되어버린 <좀비>의 마지막 장면은 조지 로메로의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그리고 한국 출시명은 <루치오 풀치의 Zombie>로 되어 있다).

조지 로메로의 좀비 3부작에 견주기는 힘들지만, <좀비>는 공포영화 애호가에게 남다른 작품으로 꼽힐 만하다. 몇개의 명장면들이 있다. 튀어나온 나무토막에 눈이 찔리는 것을 천천히, 자세하게 보여주는 장면은 루치오 풀치의 전매특허다. 400년 전의 무덤에서 스페인 병사 시체가 천천히 일어서는 과정을 보여주는 장면도 볼 만하다. 그러나 그 어떤 장면도 상어와 좀비의 혈투를 능가할 수는 없다. 섬으로 향하던 앤 일행은 상어를 발견한다. 바다 밑에서 상어를 피하던 여인 하나가 좀비에게 붙잡힌다. 여인은 겨우 도망치고, 상어가 좀비를 공격한다. 좀비가 상어를 물어뜯고, 상어도 좀비의 팔 하나를 가져간다. 그러면 상어도 좀비가 되는 걸까? 이 장면은 정말 난데없다. 좀비가 깊은 바닷속에 어떻게 들어갔는지도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갑자기 나타날 이유도 없다. 하지만 멋진 주제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상어와 좀비의 혈투는, 기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황당하면서도, 대단히 멋지다. 스토리와는 아무 상관없는 장면을 찍기 위하여 바닷속으로 카메라를 끌고 들어간 루치오 풀치의 ‘호기’는 감탄할 만하다.

이미 말했지만, <좀비>의 무삭제 출시는 놀라운 일이다. <좀비>는 DVD로 결코 훌륭한 화질이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라면 감지덕지다. 국내에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고어’를 만나기 위하여, 몇번씩 복사하여 조악한 화면의 비디오로 겨우 공포영화를 만난 기억이 있다면 공감할 것이다. 요즘 <할로윈>이나 등이 무삭제로 출시되고는 있지만, 진짜 고어영화들이 무삭제로 출시되는 행복한 날은 아마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루치오 풀치, 조 다마토, 람베르토 바바 등의 영화들을 언제나 무삭제 DVD로 만날 수 있을까.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

Zombie, 1979년 감독 루치오 풀치 | 출연 리처드 존슨 화면포맷 와이드스크린 오디오 돌비디지털 5.0 & 2.0 자막 한국어, 영어 | 출시사 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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