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 로맨스>는 꼭 10년 전에 개봉했다. 당시 한국 극장가에 걸렸던 <트루 로맨스>를 야단스럽게 수식했던 문구들은 ‘신세대와 MTV의 영화!’ 비슷한 유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의 낯선 느낌은 그 홍보 문구와는 별 상관이 없었다. 당혹스러움의 정체는 오히려 <트루 로맨스>에 충만한 일종의 난폭한 정서에서 비롯되었다. 그건 폭력이 난무한다는 의미에서의 물리적인 난폭함이 아니다. 처음 만나는 남자에게 “넌 나의 운명이야”라고 곧장 고백하고, 재수없는 포주를 곧장 처단하러 달려가고, 자신의 혈통을 조롱한 상대방의 머리에 곧장 총구를 들이대고, 친구의 행방을 묻는 악당에게 망설이지 않고 곧장 정답을 누설하며…. 그런 식의 ‘곧장’의 물결들. 직설적인 유머와 조롱의 기이한 랑데부, 잔혹한 죽음과 천진난만한 사랑의 맹세가 시침 뚝 떼고 나란히 연결되는 정서의 만화경은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이제 2003년으로 넘어온다. “안녕하세요, 전 쿠엔틴 타란티노입니다. 자, 무슨 얘기부터 시작할까요?” 쿠엔틴 타란티노의 음성이 화면 위로 겹쳐지면서 이미 심장은 두 방망이질을 친다. <트루 로맨스>는 1980년대 중반 타란티노가 비디오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시절 완성한 첫 시나리오다. ‘첫 번째’라는 단어가 으레 암시하듯이 그는 시나리오에 당시의 자전적인 이야기와 아직 이루지 못했으나 언젠가 꼭 실현시키고 싶은 꿈을 투영시켰다. 타란티노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뻔뻔스러울 만큼 낭만적인 연애, ‘할리우드는 모르지만 영화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남다른 시나리오를 쓸 수 있다는 용기, 남들 모두 좀 이상하다고 느끼지만 분명 현실에 존재하는 아이러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욕망…. 하지만 타란티노는 결과물로서의 <트루 로맨스>가 토니 스콧의 영화라고 단언한다. “대본은 애인과 같죠. 옛날 대본은 옛날 애인이에요.” 6년 동안 제작자를 찾지 못했던 <트루 로맨스>는 타란티노가 이미 시나리오를 완성할 당시 품고 있던 내면의 동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당대 최고의 스타일리스트 토니 스콧에게 넘어갔고, <저수지의 개들>에 가까운 어두운 인디영화가 아닌 ‘때깔 좋게 근사한 홈무비’로 재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토니 스콧은 진심으로 클레어런스와 앨라배마의 러브스토리에 매혹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 두 마리 ‘상처받은 새’들이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에 원래 각본의 비극적 결말(클레어런스가 죽고 앨라배마가 비참한 심정으로 돈가방을 챙겨 고속도로를 달리며 혼잣말을 지껄이는 장면. 어쩐지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에 바치는 타란티노의 오마주처럼 느껴진다)을 행복하고 낭만적인 그것으로 바꿀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타란티노가 끼어든다. “이 영화는 어디까지나 두 연인의 동화였어요. 토니는 그것을 한층 더 동화처럼 만들었죠. 토니의 영화에는 토니의 엔딩이 더 어울렸어요.” 잠깐, 거기에 한마디만 첨가해도 될까? <트루 로맨스>를 관람한 커플들이 주문처럼 되뇌었던 “You’re so cool”은 토니 스콧과 쿠엔틴 타란티노에게 그대로 바치고 싶은 찬사라고. 기꺼이 오디오 코멘터리에 참여한 배우들이 고백하는, 단역 출연을 감수하고서라도 이 영화의 일부가 되고 싶어했던 무수한 욕망을 듣고 있노라면 그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노라고.
PS1: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옥에 티. 익스플로테이션영화를 ‘개척영화’로, 스파게티 웨스턴을 ‘웨스턴식 스파게티’로 번역한 자막은 폭소를 터뜨리게 한다.
PS2: 서플먼트에 수록된 삭제신의 놀라운 진실! 단 한컷 출연한 장면이 삭제되는 바람에 안타깝게도 영영 영화에서 사라진 배우는 잭 블랙이다(<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와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의 바로 그 남자). 김용언 mayham@empal.com
True Romance Special Edition, 1993년감독 토니 스콧 | 출연 크리스천 슬레이터, 패트리샤 아퀘트, 데니스 호퍼, 크리스토퍼 워컨장르 드라마, 액션 | 화면포맷 아나모픽 와이드스크린 2.35:1, NTSC 오디오 dts & 돌비디지털 5.1 서라운드 & 2.0 스테레오출시사 스펙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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