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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으로의 초대
2001-05-10

일상의 리얼리티로 승부하는 금융회사 광고 2편

세종증권

제작연도 2001년 광고주 세종증권

대행사 코래드 제작사 까치&까치(김영배

감독)

특별한 트렌드가 없다는 게 트렌드인 요즘이다. 복고니, 키치니, 무협이니, 엽기니 하는 온갖 트렌드가 혼재해 있는 상황이고 ‘오! 놀라워라’라는

감탄사를 동반한 대박이 없는 가운데 익숙한 양식의 광고들이 소비자의 마인드에 좀더 넓고 확고한 지분을 차지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리얼리티 광고도 이미 충분히 주목받은 형태다. 연출없는 연출이라는 고도의 연출기법으로 자연스럽게 메시지를 노출하는 이 방식은 몰래카메라를

보는 듯 은근한 관음증을 유발하며 신선한 반응을 자아냈다. 리얼리티 광고의 모범답안은 한미은행 CF가 제시한 바 있다. 주인공은 주로 부부,

혹은 가족이었는데 발톱을 깎아주는 행위 같은 그들의 지극히 일상적인 단면을 드러내며 소비자들 사이에 ‘내 얘기 같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도토리 키재기에 안분지족하는 무림을 평정할 어떤 비책이 없다면 기존 양식을 익숙하지만 새롭게 업그레이드하는 방법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은행이나

증권사 같은 금융권 광고에 불고 있는 ‘리얼리티 바람’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자연인의 소소한 일상사를 원신 원컷으로 따라잡는

현실 채록 형식의 리얼리티 광고는 사실 변주의 여지가 별로 없다. 그래서인지 이미 보여줄 것을 다 보여준 한미은행 CF는 사실성을 살리되

기존의 극단적 리얼리티에서 조금 벗어난 형태로 새 길을 개척하고 있다. 오히려 기존 한미은행 CF의 틀을 빌려온 최근 사례는 외환은행 CF.

다른 점이 있다면 시청자들이 실제로는 그런 관계가 아님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한석규-설수진에게 부부 역할을 맡겼다는 것. 그럼에도 무심코

보면 속아넘어갈 수도 있을 것 같다. 남편을 위해 빵에 잼을 바르는 부인(설수진)과 신문을 펼쳐든 남편(한석규)의 모습을 통해 ‘일상의

단면 가운데 하고 싶은 말(광고 메시지) 슬쩍 집어넣기’의 수를 제법 능란하게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은행 CF는 ‘메모’편에서 어느 신문의 독자투고란에 실린 실제 미담을 영상에 옮겼다. 예쁜 전원주택으로 한 가족이 이사를 온다. 그런데

아내가 부엌에서 그릇을 정리하다가 전 주인이 남겨놓은 메모를 발견한다. 메모의 내용은 이렇다. ‘이 집은 목련꽃이 피면 참 예쁘고요. 과일은

오른쪽 슈퍼가 싱싱하고 소아과는 길 건너가 잘 봐요.’ ‘나도 이런 이웃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 법한 사려심 깊은 이웃의 행동이

아닐 수 없다. 광고는 흐뭇한 기분을 안겨주는 가운데 말미에 정작 하고 싶은 말을 자연스럽게 이어붙였다. ‘음∼ 그리고 은행은 요앞 한미은행이

참 좋더라구요.’

‘한미은행 좋아요’란 얘기가 나오자 하마터면 ‘속보인다’란 배신의 감정이 들 뻔했다. 그러나 마지막에 재치있는 카메라 워크로 유종의 미를

거둔다. 메모를 읽은 뒤 흐뭇한 미소를 머금는 아내의 모습에서 서서히 줌 아웃하더니 집 외관과 저 멀리 집 뒤로 보이는 빌딩의 한미은행

간판을 자연스레 포착한다. ‘좋은 만남, 굿 뱅크’(Good Bank)라는 간결한 카피도 마음에 성공적으로 안착한다.

한미은행 제작연도

2001년 광고주 한미은행 대행사 제일기획 제작사 동진(김승환 감독)

아무리 실제 얘기를 소재로 삼았다지만 이번 한미은행 광고가 이전 것보다 작위적 연출의 냄새를 더 풍기는 것은 사실. 그러나 예전의 리얼리티

기법도 어차피 설득력 배가의 기술이었을 따름이다. 악센트를 살린 이번 CF의 전개방식이 여운있는 호감을 주는 데 오히려 더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듯 보인다.

개그맨 남희석의 코믹한 표정으로 기억에 남는 세종증권 광고도 일상에 눈을 돌려 변신을 꾀했다. 주인공은 영화배우 설경구. 지명도는 높지만

튀지 않는 평범한 이미지의 소유자라는 점에서 일상성을 살리는 데 적절한 모델이다. 설경구의 배역은 아기아빠. 그것도 아이를 너무나 끔찍히

사랑하는 초보아빠 역을 맡았다.

봄햇살의 따스한 기운이 감도는 거실에서 설경구가 갓난아기의 목욕을 준비한다. 파우더, 수건, 장난감 등을 세심하게 준비한 아빠는 마지막으로

욕조의 물 온도를 점검한 뒤 발가벗은 아기를 씻기기 시작한다. 물이 싫은 아기는 울음을 터뜨리고 설경구는 우는 아이 달래느라 어쩔 줄 모른다.

감동은 다음부터. 손가락 하나하나, 엉덩이 사이 등 아이의 몸 구석구석을 빈틈없이 닦인 다음 곤히 잠든 아이에게 입맞춤하는 보통 아빠의

모습에서 일상의 행복감이 묻어난다. 광고에서 아기아빠 설경구는 세종증권의 분신. 아기를 보살피듯 고객을 위해 애쓰겠다는 ‘고객 곁에 스탠바이’란

광고 메시지를 비유법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카메라를 고정한 뒤 아기의 목욕과정을 다큐멘터리형식으로 따라잡은 이 광고는 귀여운 아기를

외면할 시청자는 많지 않다는 통설을 증명한다. 광고의 다감한 분위기에 젖어들다보면 부모의 마음을 가진 기업이 어디 있겠느냐라는 냉정한 의구심을

조금 양보하고 싶어진다.

금융권 광고가 일상성에 주목하고 있는 것은 좀더 친밀하게 고객과 근접조우하겠다는 희망사항의 표현일 것이다. 사실 일상으로의 초대장을 보내고

있는 이들 광고의 경향은 수익률 얼마 따위의 실제적 이익 전달보다 돈 냄새를 덜 내서 그런지 정서적으로 호의도를 제고하는 힘이 만만치않다.

현실적 이해관계에 가장 밀착해 있는 금융권 광고가 일상성과 휴머니즘으로 승부하겠다는 것은 어찌 보면 이율배반적인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인데도

말이다.

조재원|스포츠서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