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Morts Sur Ordonnance, 1975년감독 자크 루피오 | 출연 미셸 피콜리 EBS 5월24일(토) 밤 10시
만화 <몬스터>는 제목만이라도 아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의학스릴러라는 장르를 떠올릴 때면 이 만화가 먼저 연상된다. 만화 <몬스터>엔 한 전문의가 나온다. 그는 자신의 손으로 되살린 한 생명을 스스로 끊어버리려고 결심한다. 일종의 절대악을 상징하는 생명을 의학의 힘을 통해 연장시켰으며 이를 뒤늦게 알고 제거하려고 하는 것이다. 만화엔 다른 곁가지 에피소드가 많지만 중심 서사는 ‘스릴러’라는 장르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는 것도 사실이다. ‘의술’이라는 영역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작품을 심리스릴러 영역으로 접목하는 기법 역시 탁월하다. <죽음의 사중주>은 거칠게 비유하자면 축소판 <몬스터>다. 병원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 그리고 의사들의 강박관념, 끔찍한 범죄, 이를 영민하게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외과의사 로스레이는 병원주와 별로 사이가 좋지 않다. 병원의 실질적 소유주인 브레제는 의료계와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로스레이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 로스레이는 건강상의 이유로 잠시 일에서 멀어져 있다가 복직하지만 여전히 병원주와의 관계가 평탄치 않다. 그리고 로스레이를 괴롭히는 다른 이유는 베르그라는 외과의사에 관한 것이다. 베르그라는 의사는 일에 관한 강박관념으로 시달리다가 가족과 함께 자살한 의문의 인물이다.
<죽음의 사중주>은 영화 서사에 관심있다면 같은 영역에서 고심할 만한 여지를 준다. 영화 전체가 모자이크식으로 구성된 듯 시간적 배열이 뒤엉켜 있는 것이다. 우리는 먼저 로스레이라는 의사의 시점에서 영화를 보게 된다. 그는 몸이 쇠약한 상태이며 병원에서 난처한 입장에 처해 있다. 그런데 다른 이야기가 개입한다. 행복한 가정을 이끌고 있는 한 의사가 갑작스레 가족에게 총을 난사하는 것이다. 다시 영화는 시간을 거슬러올라 베르그라는 의사가 어떻게 정신적으로 황폐한 지경에 몰리게 되었는지 살펴본다. 이렇듯 다소 복잡하게 얽혀 있는 서사 패턴은, 영화를 보는 이에게 이 두 주인공이 결국은 같은 운명, 또는 도플갱어로서 서로에게 분신 같은 의미를 지니는 것임을 암시한다.
“대상 자체가 역겨운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보며 우리는 때로 즐거움을 느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언급이다. <죽음의 사중주>은 유럽의 잔혹 서사극, 그중에서도 프랑스 그랑기뇰 연극의 전통을 상기시킨다. 20세기 초반 파리의 어느 극장에서 상연된 이 연극들은 판타스틱한 전통 대신 사실적인 무대와 소품으로 객석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그중에선 의사와 과학자에 관한 작품이 적지 않았는데 이 소재는 일반 서민들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더욱 놀라운 효과를 낳았다. <지평선> 등을 연출한 자크 루피오 감독은 코미디 등의 분야에서 이름을 날렸으며 그의 대표적인 스릴러영화이자 상업적 성공작이 <죽음의 사중주>이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