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재미있는 얘기가 나온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어느 날 야훼로부터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는다. 100살이 넘은 노파의 몸에서 아이가 태어나게 할 때는 언제이고, 이제 와서 다시 거두어가는 것은 또 무슨 변덕이란 말인가? 하지만 아브라함은 신의 명령에 순종한다. 제 손을 잡고 산길을 걸어 올라가는 아비에게 아들이 묻는다. “아버지, 근데 제물로 바칠 양은 어디 있지요?” 아들의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묵묵히 산에 오른 아브라함은 아들을 제단에 올려놓고 칼을 높이 치켜든다. 순간 하늘에서 신의 음성이 들려와 그를 만류한다. 정말로 산 사람을 제물로 받으려 한 게 아니라, 그저 그의 믿음을 시험하려 했다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이 일화는 사람을 바치는 인신공희가 짐승을 바치는 희생양 제의로 바뀌는 시대의 상징인지도 모른다. 아브라함을 제지한 야훼는 그에게 주위를 둘러보라고 말한다. 그때 아브라함의 눈에 저쪽에 있는 가시덤불에 양이 한 마리 걸려 버둥거리는 것이 들어왔다. 아브라함은 신의 명령에 따라 아들 대신 그 양을 제단에 바치게 된다. 물론 이 일화에서는 이삭이 아비에게 양이 어디 있냐고 묻지만, 그것은 인간 대신 짐승을 바치는 것이 널리 관행이 된 이후에 그 이야기에 첨가된 요소일 게다. 인류 문화의 특정단계에서 인간은 신에게 사람을 바치는 대신 짐승을 바치게 되었고, 그 희생양 제의 자체는 나름대로는 ‘문명화’의 결과인 셈이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신의 제단에 산 짐승을 바치는 관습은 사라졌다. 세계의 대부분은 이미 서구적 문명화의 세례를 받아, 어떤 종교집단에서 산 짐승을 죽이는 의식을 한다면,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될 것이다. 하지만 문명화되었다는 서구의 일각에도 부분적으로나마 희생양 제의는 여전히 남아 있다. 몇년 전에 독일의 텔레비전에서 게르만 민속종교의 맥을 이으려는 사람들에 관한 프로그램을 보았다. 칼로 산 닭의 모가지를 치니, 놀랍게도 목이 달아난 닭이 여전히 두발로 퍼득거리며 걸어다닌다. 대부분 우익단체의 회원인 이들은 독일 정신의 근원을 찾아 게르만족의 민족전통을 되살리려 그런 종교의식을 행한다고 했다.
얼마 전 텔레비전 뉴스에서 일군의 이라크인들이 칼로 산양(羊)의 멱을 따는 장면을 보았다. 하얀 털을 적시며 흘러나오는 검붉은 피는 솔직히 끔찍하게 여겨졌다. 이른바 ‘문명화’되었다고 자부하는 사회의 눈에는 이런 잔혹한 관행이 야만적으로 비칠 수 있다. ‘문명화’의 본질 중 하나는 공공장소에서 잔혹함의 현시를 금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나 알량한 일인가? 그 문명화된 사회라고 양들로 하여금 수명대로 다 살게 내버려두지는 않는다. 내가 유학 시절 학생식당에서 받아먹던 사료(?)에는 분명히 양고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걸로 보아 그들 역시 양을 도축함에 틀림없다. 다만 그 도살장면을 공개하지 않는 것뿐이리라. 그들은 이것을 ‘문명화’라 부른다.
우리 개고기 문화에 각별한 관심을 가진 불여우(佛女優) 바르도 여사가 우연히 이것을 본 모양이다. 이 사실을 들어 그는 이슬람교도들이 무슨 야만인이나 되는 양 몰아붙였다고 한다. 물론 개를 도축하거나, 양을 공개적으로 살해하는 것의 정당성을 논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특히 동물애호가들의 경우에는 이런 관습에 윤리적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여, 그 사랑을 생명이 가진 모든 것에 확장하려다 보니 그런 문제제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브리지트 바르도 여사는? 과연 그가 이런 사람들 축에 속하는가? 그럴 리 없다. 이제 자랑할 거라고는 피부색밖에 안 남은 이 정신나간 여인의 각별한 동물사랑은 지독한 인간혐오를 위한 변명일 뿐이다.
언젠가 터키와 이라크에서 핍박을 받던 어느 쿠르드족이 서방 기자들에게 울부짖던 말이 생각난다. “당신들이 개에게 보여주는 관심의 10분의 1만이라도 우리에게 보여달라.” 바르도 여사를 보면, 산정의 별장에서 사랑하는 개와 다정하게 노닐던 히틀러가 생각난다. 그 지극한 개 사랑의 10분의 1만이라도 유대인에게 나눠줬다면 아우슈비츠의 비극은 없었을 게다. 어쨌든 툭하면 인종주의 발언을 하여 사회를 시끄럽게 하는 극우파 바르도 여사께서는, 내가 정보를 드렸으니, 당신 사상의 원조인 게르만 용사들이 독일에서 행하는 그 끔찍한 닭 살해의 관행에 대해서도 독설을 퍼부어주시기 바란다. 피부색 같다고 봐주지 말고….진중권/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