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인베이더>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역사상 가장 훌륭한 게임이라고 말하기는 뭐하지만, 가장 유명한 게임을 뽑는다면 반드시 후보에 올라갈 것이다. 일명 ‘인베이더’라고도 불렸던 이 게임이 낯설게 느껴지는 사람이라도 게임 화면을 한번만 보면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게임의 후속작이 자그마치 4반세기나 지난 지금 나온다는 소식은 반갑지 않았다. <스페이스 레이더스>, 제목부터 영 무성의해 보인다. 제작사인 타이토는 지금이야 대단치 않지만 한때 오락실을 휩쓸다시피했던 회사다. 이제 와서 ‘인베이더’를 들고 나오는 건, 아무리 봐도 과거의 영화에 기대어 요즘 유행하는 액션어드벤처에 편승해보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게이머들이 얼마나 동전을 오락실에 갖다바치며 많은 UFO를 해치웠건만, 지구는 결국 외계인과의 싸움에서 패배했다. 하늘은 UFO로 가득하고 우주 괴물들이 기세등등하게 휘저으며 지구인을 학살하고 다닌다. 살아남은 것은 단 세명이다. 일없이 빌빌거리고 다니던 불량 청소년 저스틴은, 친구들이 죽는 모습에 외계인과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다. 아슈레이는 실종된 애인을 찾기 위해 애인이 입던 가죽 재킷을 걸치고 뛰어든다. 동료들을 모두 잃은 특수경찰 나지도 복수를 위해 나선다. 물론 3D 배경에 3D 캐릭터다. 그러나 예상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다. 나머지는 상상을 뛰어넘었다.
게임을 시작한다. 황량한 도시가 있고, 단신으로 적과 맞서는 주인공의 뒷모습이 보인다. 하늘에서 우주인들이 천천히 내려온다. 피하면서 총을 쏴야겠는데 위로도 아래로도 움직일 수 없다. 오직 좌우로만 이동이 가능하다. 다행히 적들과 나 사이에 드럼통 비슷한 게 세개 있어서 아쉬운 대로 엄폐물 역할을 한다. 요즘 유행하는 게임과는 거리가 먼 엉성한 게임을 하면 할수록 어딘지 모를 친숙하고 그리운 느낌이 든다. 마침내 깨달았다. 이 게임은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아류가 아니라 정통 후계자다.
그리움의 원천은 다름 아닌 드럼통 세개였다.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세계는 원래 모노톤이지만 동네에 따라서는 모니터에 셀로판지를 붙여놓아 색을 덧입히기도 했다. 천천히 내려오기에 더 무서웠던 외계인들과 싸우면서 의지할 만한 것이라고는 오로지 그 드럼통처럼 생긴 방어막 세개뿐이었다.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일 수 없는, 1차원 같은 2차원 세계에서 그 드럼통들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어주었는지 모른다. <스페이스 레이더스>는 그 1차원적 2차원 공간의 공방을 3차원 그래픽으로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다. 분명 3D 그래픽임에도 불구하고 예전의 느낌이 지나칠 정도로 똑같이 살아나고 있다.
이 게임이 상업적으로 대단히 성공할 것 같지는 않다. 게임 세계에 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참이라면 당혹감밖에 가지지 못할 것이고, 새롭게 발견되는 추억에 흥분하며 친구에게 전화를 걸 고참 게이머의 수도 엄청나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옛 추억을 기리는 열성 팬들이 아닌 타이토가 왜 이 게임을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그들 자신이 그 누구보다도 <스페이스 인베이더>에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예전의 영화에 도전하려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옛 추억을 자극하는 것만으로도 흥행에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만큼 순진하거나 오만한 것일까? 답은 알 길이 없지만 우리 손에는 이미 <스페이스 레이더스>가 쥐어져 있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www.MadOrDea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