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반에, 한국 음악계에 헤비메탈 바람이 불었다. 나는 그 신나는 음악이 좋아서 공연장을 곧잘 쫓아다녔다. 그러던 중 등촌동 88체육관에서 모 밴드의 적지 않은 규모의 공연이 있었는데 인상적이었던 것은 객석 앞줄 한켠에 휠체어를 탄 어린 학생들 한 무리였다. 당시만 해도 부정적 이미지가 강했던 헤비메탈 공연을 보려고 자진해서 떼지어 온 아이들이라고 보기엔 그다지 흥겨워 보이지도 않았고 오히려 난감한 상황을 지그시 참아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공연은 ‘장애청소년 돕기 콘서트’라는 참 좋은 명분으로 개최된 것이었더라. 그렇다면 차후에 수익금만 전해주면 되지 그 친구들이 꼭 공연을 관람해야 하나. 솔직히 말하자면 장애청소년들에게 공연을 보라고 불러앉힌 게 아니라 사람들에게 그들을 보이려고 불러앉힌 게지. 결과적으로 누가 누굴 돕는 콘서트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들은 이런 식으로 수시로 동원되기도 한다.
‘구경’ 하면 쌈구경, 불구경이 최고라 했고 은밀하기로 섹스구경, 기형구경하기를 꼽을 수 있다. 이 원초적 구경거리는 불구경만 제외하고는 쌈구경-격투기, 섹스구경-핍쇼와 스트립쇼, 기형구경-서커스의 프릭쇼(freak show), 사이드쇼 등 각종 유형으로 구경거리(엔터테인먼트)로서의 역사도 유구하다. 이 구경거리들이 라이브 쇼에서 대량복제 형식으로 확장된 것이 다름 아닌 영화의 본질이라고 단언하는 바, 쌈구경은 액션영화, 불구경은 재난영화, 섹스구경은 포르노가 된다. 그리고 <엘리펀트맨>에서부터 <아이 엠 샘>에 이르기까지 기형, 장애인 등장 영화들이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혐오의 쾌감을 즐기는 프릭쇼에서 출발한 것이 연민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감동휴먼드라마로 확장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헤비메탈 공연장의 휠체어군단은 확실히 악의와 선행이 공존 교차하는 기묘한 프릭쇼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혐오와 비하가 문화적으로 우아해지면 동정과 연민이 된다. 영화에 동원되는 장애인들도 기묘한 장애증상과 기발한 생활력을 다각도로 보여주며 맘껏 동정과 연민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고자 하는 것이 기획, 연출 의도이다.
누군가에게 연민을 가지고 온정을 베풀고 측은지심을 가지고 물심양면 도움을 주는 것은 참 거룩한 일이다. ‘칭찬 릴레이’ 받아 마땅한 선행일 터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연민과 동정을 가지게 하고 감히 나를 불쌍히 여겨 돕겠다고 나서도록 허락하는 것은 더더욱 거룩한 일임은 대체로 모르고 있다. 장애인들은 할 수 있지만 영화 속의 샘이 분류한 ‘당신 같은 사람들’은 절대로 못하는 것이라면 ‘당신들 맘껏 저를 불쌍히 여기세요’라고 낮은 데로 임하는 태도이다. 이를테면 앞을 못보는 아이에게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파란 하늘을 보고 싶어요”라고 대답해 주는 식이다. 사실은 세계적인 음악가가 되고 싶은 꿈이 있지만 ‘당신 같은 사람들’이 정말 궁금해하는 것은 원대한 포부가 아니라 ‘얼마나 불쌍한 아이일까’라는 점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누가 누굴 동정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들은 ‘착한 역할 사람들’을 위하여 기꺼이 ‘불쌍한 사람’다운 대답을 해주는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예를 들면 장애인 운전자는 고속도로 통행료가 50% 할인되는데 배기량 2000cc 이상 중형차를 탈 경우에는 할인이 안 된다. 신체장애와 엔진배기량은 아무 관계없지만 대체로 ‘불쌍하지 않은 장애인’이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나는 “<아이 엠 샘> 정말 감동”이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그것이 보편정서인 세상을 비웃는다.김형태/ 궁극종합예술가 kongtem@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