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발부는 수지부모요로 시작하는 고리타분하기 이를 데 없는 옛날 가락이 있다. 몸, 터럭, 피부, 즉 우리 몸이 부모로부터 받은 거라는 뜻인데, 이건 곧이 곧대로 읽은 경우다. 누가 모르나, 부모에게 받은 거, 인간 복제한다 해도 최소한의 것은 받아야 하는데. 그런데 이게 속뜻은 만만치 않다. 부모에게 받은 것이니 잘 간수해야 한다는 거면 좋은 거고, 나쁘게 보면 내 몸의 주인이 오로지 내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내 몸 함부로 굴리지 말라는 뜻도 되지만, 내 몸 내 맘대로 할 수 없다는 뜻도 된다. 그렇다면 내 몸이 내 몸이 아녀? 어떤 뜻으로 받아들일지는 옛날 가락 읽는 사람 마음이겠으나, 신체발부는 수지부모요를 떠들어대는 족속들은 대가 그렇고 그렇거나 거기서 거기인 사람들이니, 떠드는 속내가 의심스러울 때가 더 많다.
잘라서 말하는데 아무리 부모가 날 낳아주고 껍질주고 터럭주었대도 내 몸은 내 거인 것이다. 이게 확고하게 세팅 안 되면 다른 거 다 부질없고, 속절없고, 무의미하다. 한번 따져볼까? 내 몸은 내 거다. 그러니 내 몸에 붙은 내 머리카락도 내 거다. 내 머리카락을 빡빡 밀고 다니든 치렁치렁 기르고 다니든 내 거니까 내가 알아서 하면 그만이다. 머리가 왜 그 모양이야 하고 옆에서 구시렁거리고 훈계할 거 없다. 길러보니 정말 간섭하는 사람 많았다. 그런 걸 그냥 내버려두질 못하는 게 이 땅덩어리 사람들 심사다. 간섭하고 싶어서 미친다. 말로 간섭 못하면 시선으로라도 찔러보고 싶어서 난리를 친다.
내 몸은 내 거다. 그러니 내 몸에 뭘 걸치든 그것도 상관할 바 아니다. 옷에서 독이 뿜어져나와 다른 사람 몸에 치명상을 입히지 않는 한, 뭘 걸치든 내버려둬야 옳다. 그걸 가지고 품위가 있네 없네, 누굴 모독하네 마네 하는 건 옷을 대단한 걸로 보는 페티시즘 신봉자들뿐이다. 부도덕한 것도 아니고 불법도 아닌데 법전 뒤적이는 거 정말 꼴사나운 짓이다.
눈에 빤히 보이는 내 몸도 내 거라는 것이 잘 인정되지 않는 판에 몸 안에 들어 있는, 전혀 보이지 않는 인격을 인정 받는 건 정말 어렵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요를 뒤집어 내 자식은 내 거라는 생각이 많은 부모들 머릿속에 콱 박혀 있다. 자식의 몸과 마음은 자식 것인데, 그걸 착각하고 조몰락주물락한다. 인격모독도 이만저만 아니다.
학교 가면 선생은 학생의 몸을 자기 것으로 삼는다. 벌주고 패고 그런다. 내 몸은 내 재산이고 남의 몸은 남의 재산인데, 그걸 맘대로 다룬다. 이거 어찌보면 절도요 강도다. 회사에서는 윗사람이 아랫사람 몸을 내 것으로 삼는다. 이리 가라, 저리 서라 이래라저래라한다.
근대 이후 만들어진 모든 법은 나는 내 신체의 주인이라는 명제에 근거하고 있다. 이 명제가 인간의 권리, 즉 인권의 시작점이다. 길가는 사람 무작정 붙잡고 불심검문하는 거 한번 따져보자. 길가는 사람 붙잡는 거, 이거 안 된다. 자기 몸에 붙은 발로 멀쩡하게 걸어가는데 왜 잡는가. 남의 주머니 안에 들어 있는 거 꺼내보자고 하는 거 이거 안 된다. 눈에 보이는 명백한 잘못 안 했는데 보자는 거 말도 안 된다. 영장 없이는 체포할 수 없는, 인신구속을 당하지 않을 자유, 남에게 해 안 끼치면 아무 데나 갈 수 있는 여행의 자유, 내 머릿속에 무슨 생각을 담고 있든 건드리지 못할 사상의 자유, 내 입으로 내가 떠드는데 내버려둬야 할 언론의 자유, 이른바 헌법에 보장된 모든 자유가 바로 이 명제, 내 몸은 내 거다에 근거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명제에 근거해서 법을 만들어야 근대국가인 거고, 그 법 실천해야 근대화된 거다. 조국 근대화한답시고 남의 몸 함부로 잡아다 족치고, 일하는 사람들 몸뚱이를 멋대로 이리 굴리고 저리 패대기치면 안 되는 거다. 그건 근대화가 아니라 공업화였을 뿐이고, 야만화였을 뿐이다.
남의 몸 함부로 건드리는 거, 그 몸에 붙어 있는 거 함부로 만지는 거 인격모독을 넘어 재산침해가 된다. 사람 대접, 어려운 거 아니다. 내 몸은 내 거고, 네 몸은 네 거인 거, 이걸 인정하고 실천하는 데서 시작된다. 시시껍질하게 옷가지고 트집 안 잡는 데서 출발한다. 남이야 뭘 입고 나오든 그냥 내버려뒀으면, 자기가 생각하기에 좀 창피하면 다음부터 안 했을 텐데 괜히 시비거는 바람에 그런 사람들만 웃음거리되고 만 거다. 왜 그런지 아나? 남의 몸 건드려서 그런 거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남의 몸 건드리지맛!강유원/ 회사원·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