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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식 사랑법 보여주는 <내인생의 콩깍지>

운명의 연인이 따로 있나요?

<내인생의 콩깍지> MBC 매주 월·화 밤 9시55분1992년에 우연히 만난 남녀가 이후 10년 동안 펼치는 연애담. MBC 월화드라마 <내인생의 콩깍지>를 이처럼 간단히 설명하면,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진부해진다. 그들은 사소한 오해와 성격차이로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다가, 결국엔 상대가 자신의 ‘콩깍지’라는 사실을 깨닫고 결혼에 골인할 게 뻔하니까. 자신에게 걸맞은 남자가 인물 좋고 학벌 좋고 집안 좋고 직업 좋은 남자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 은영(소유진)과 만나는 여자들 모두에게 껄떡대며 수작을 거는 모양새가 마초 바람둥이의 전형인 경수(박광현)는 각자 몇 차례의 이별과 인생의 쓴맛단맛을 경험한 뒤 최근에야 서로의 ‘가치’를 깨달았다. 호감이 사랑으로 발전하는 단계에서 번번이 사건이 터지는 것도 예상했던 대로다.

그럼에도 <내인생의 콩깍지>는 그렇게 간단한 드라마가 아니다. 오히려 <아내>와 <야인시대>에 밀려 낮은 시청률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정도로 구석구석 새로운 시도가 돋보인다. 우선 1990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사랑법을 ‘쿨하게’ 묘사했다는 점. 경수가 은영의 연락처를 적은 만원짜리 지폐를 찾으러 백화점에 갔다가 되레 백화점 직원과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이나 낙도로 성민을 찾아간 은영이 돌아오는 길에 성민의 또 다른 애인과 마주친 뒤에도 절망하지 않고 마음을 추스르는 모습은 ‘운명적인 사랑’에 집착하지 않는 신세대 사랑법의 전형이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사랑을 고백하는 데 망설임이 없고 일단 시작하면 열정적으로 빠져들지만, 헤어지고 난 뒤에 ‘너 없으면 세상도 없다’ 식의 신파를 읊지는 않는다. 이별은 고통스럽지만 과거에 연연하는 건 바보같은 일일 뿐. 일상의 흔들림 없이 새로운 사랑을 찾아나서는 경수와 은영의 산뜻함은 삼각관계와 눈물, 죽음에 이르는 사랑으로 점철된 최근 트렌드드라마들을 가뿐하게 뛰어넘는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는 놀랍게도 뮤지컬을 끌어들인다. 뮤지컬은 방송 드라마보다 훨씬 많은 실험이 펼쳐지는 영화에서도 거의 시도되지 않는 ‘위험한’ 장르다. 매회 3분 정도로 비중이 작고 생뚱한 구석도 있지만, 뮤지컬 장면은 자칫 느슨해질 수 있는 ‘그저그런 연애담’을 즐겁고 유쾌한 쇼로 바꿔놓는다. 은영은 경수가 어떤 남자냐고 묻는 친구들에게 “무매너 무교양”이라며 그와의 연애는 당치도 않다는 태도를 보이지만, 잠시 뒤 펼쳐진 뮤지컬에서는 그에게 조금쯤 호감이 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은영이는 문제가 많다”며 내키지 않는 태도를 보이던 경수도 노래를 부를 때만큼은 은영이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뮤지컬영화 <그리스>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이 대목은 <내인생의 콩깍지>에서 뮤지컬의 역할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주인공들이 선택의 기로에 놓이거나 갈등에 직면했을 때 그 사람의 ‘속내’를 살짝 엿볼 수 있게 하는 것. 회가 거듭될수록 뮤지컬의 비중이 조금씩 줄어드는 게 그래서 아쉽다.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건 10년에 걸친 남녀의 연애담에 시대상황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이다. 경수와 은영이 처음 만난 것은 92년 총선 때였고, 은영이 첫사랑에 빠진 것은 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이며 취업을 못해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경수가 은영과 재회한 것은 국제통화기금(IMF) 한파가 몰아치던 겨울이었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내인생의 콩깍지> 대본을 보면, 91년엔 강경대가 죽었고, 92년에 총선이 있었으며 94년엔 전·노 태통령이 재판을 받았다는 등 극의 흐름과는 직접적으로 관련없는 사실들이 죽 나열돼 있다. 단순히 1990년대를 ‘제대로’ 재현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보기엔 성의가 넘친다는 느낌이다.

물론 은영과 경수는 ‘시대를 온몸으로 살았던’ <모래시계>의 주인공들과는 거리가 멀다. “정치의식도 없으면서 왜 선거운동을 하느냐”고 묻는 후배에게 경수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한다. “돈 주니까 하지, 괜히 하냐?” 제작팀은 자신들이 90년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내면서 왜 이처럼 정치·사회적으로 무관심한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일까? 90년대에는 젊은이들의 인생을 짓누를 만한 ‘역사적 사명’이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90년대에 20대를 보낸 젊은이들이 대체로 이러하다고 믿는 것일까. 로맨틱코미디를 보면서 이렇게까지 ‘오버’하는 건, 역시 주인공들과 꼭 같은 세대, 90년대에 20대를 보낸 까닭이겠지.이미경/ <스카이라이프> 기자 friend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