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이 피고 또 질 때면
5월 아카시아꽃이 필 무렵이면, 광주항쟁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러나 필자에게 광주는 간접경험일 뿐이다. 그 경험은 당시를 기록한 사진들과 망월동 그리고 5·18 집회를 통해 이루어진 것들이다. 하지만 그 기억은 잊을 수 없이 깊이 각인된 것들이었다. 그리고 한참 뒤 광주항쟁을 소재로 한 몇몇 영화들을 볼 수 있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김태영 감독의 <칸트씨의 발표회>(16mm/ 1987년)이다. 광주항쟁을 다룬 거의 최초의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은유적인 방식이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도발적으로 광주의 상처를 이야기한다. 알 듯 말 듯한 말들을 하면서 서울 시내를 쏘다니는 ‘미친 칸트’씨가 있다. 그리고 그를 쫓는 사진사가 있다. 영화 속에는 애국가가 울려퍼지고, 칸트씨는 태극기를 들고 있다. 그리고 ‘전통!’적인 것들을 이야기하고, ‘트럭에 싣고 어디 갔지’, ‘두부처럼 잘려나간… 젖가슴’을 중얼거린다. 그리고 광주항쟁을 담은 스틸컷과 고문받는 모습이 삽입된다. 한 사진사가 미친 사람을 쫓으며 사진을 찍는 구조 속에 광주항쟁의 이미지들은 강렬하고 세련되게 영화에 담긴다. 독재정권이 한 사람에게 어떤 시대의 아픔과 상처를 남겼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사진사는 칸트씨를 모델로 ‘자유’라는 이름의 사진전을 열지만, 칸트씨는 변사체로 발견된다. 광주의 상처를 함께 공유하고 아파하려 했지만 어쩌면 우리는 사진사처럼 광주의 상처를 바라보고만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그 아픔을 다시 떠올리고 공유하려는 시도이다(KBS2TV 5월16일(금) 밤 1시15분 방송).조영각/ <독립영화> 편집위원 phille@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