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일드가 희곡을 쓴 <어니스트가 되는 것의 중요성>은 1895년 무대에 올려졌을 때 관객과 평자들로부터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지만, 공연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작가의 이름은 지워져야 했고 공연도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건 이 작품을 쓴 작가가 “그 이름을 감히 말해서는 안 되는 사랑”(와일드의 시 <두 가지 사랑>에 나오는 한 유명한 시구를 빌리면)에 빠져든 역겨운 ‘죄’를 지었다는 이유로 재판정에 서야 했기 때문이었다. 자기들이 속한 세계를 비꼬는 와일드의 연극을 보면서 대범하게 웃어줄 수 있었던 당시 런던의 사교계 사람들이었지만 그 작가의 위험한 일탈 행동에 대해서는 관용을 보여주지 않았다. 결국 와일드는 2년의 징역형을 받았고 이후 거의 완전한 추락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 와일드에 대한 기소를 강력하게 주장했던 사람들 가운데에는 허버트 아스퀴스라는 사람이 있었다. 뒤에 영국 총리에도 오를 이 사람에게서 태어난 아들은 상류계급의 자식답지 않게 영화감독이 되고자 했다. 결국 아들 앤서니는 나중에 영국의 유명영화감독 반열에 올랐고 마치 아버지가 와일드에게 했던 지나친 일에 대해 용서를 구하기라고 하려는 듯 영화 한편을 만들었다. 바로 그에 의해 와일드의 마지막 희곡 <어니스트가 되는 것의 중요성>이 스크린에 훌륭히 옮겨진 것이다.
영화의 이야기는 극장에 온 두 남녀가 자리에 앉으면 무대에서 연극의 막을 올리면서 시작한다. 여기서 이미 짐작할 수 있듯이 <비잉 어니스트>는 연극 형식에 가까이 다가가 있는 영화이고 그만큼 원작에 최대한 충실한 영화, 그래서 와일드에 대한 공경심을 잃지 않으려는 아스퀴스 감독의 자세가 여실히 드러나는 영화다. 아스퀴스가 우리에게 펼쳐주는 이 와일드의 세계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주인공 잭(마이클 레드그레이브)은 망나니 같은 남동생 어니스트를 만난다며 자주 런던에 들르는 인물이다. 그러나 어니스트란 동생은 사실 실재하는 인물이 아니라 잭이 런던을 방문할 핑계로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일 뿐이었다. 런던에서 잭은 어니스트라는 이름을 쓰며 그웬들린(조앤 그린우드)이란 미모의 아가씨와 교제를 하고 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잭의 친구 앨지넌(마이클 데니슨)은 잭 몰래 시골에 있는 잭의 집으로 간다. 그리고는 자신이 잭의 동생 어니스트인 척 하고서 열여덟살 먹은 아리따운 잭의 피후견인 세실리(도로시 튜튼)를 유혹하려 한다.
다소 비상식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몇명의 인물들로부터 빚어지는 터무니없으리만치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 <비잉 어니스트>에서 중심 행로 같은 게 있다면 어니스트를 가장했던 잭이 실제로 자신이 어니스트임을 깨닫고 사랑을 쟁취하기까지의 행로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어니스트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또 다른 의미, 즉 진지함이라든가 성실함의 중요성을 깨닫는 과정을 따라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이 영화 속의 인물들은 되돌릴 수 없을 만큼 허위의 삶을 살아가는 속물들일 뿐이다. 상류사회의 아가씨들은 실제의 어떤 사람이 아니라 바이브레이션 효과가 뛰어난 ‘이름’(즉 어니스트라는 이름)과 뜨거운 사랑에 빠지고 언제나 근엄한 척하는 귀부인은 알고 보면 돈 계산에서만 즉각적인 반응을 한다. 그 밖에 다른 인물들은 멍청하거나 교활하다. 영화는 이런 인물들을 다소 부조리한 이야기 속에 연루시키며 상류사회의 가치들을 풍자하는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런 풍자와 조소를, 영화는 어떤 무거움이나 어두움의 터치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가벼운 톤을 유지하며 수행한다. <비잉 어니스트>가 주는 경쾌한 재미는 위트가 무언가를 제대로 보여주는 대사들의 향연(과 그걸 훌륭히 전달하는 배우들의 연기력)으로부터 나온다. “모든 여자들은 엄마를 닮게 되지. 그게 여자들의 비극이라네. 반면 남자들은 안 그런데 그게 또 그들의 비극이지”, “부모 중 한 사람을 잃는 건 불운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양쪽 모두를 잃으면 부주의한 거라네” 같은 일련의 명대사들이란 외워두었다가 어딘가에서 한번쯤 멋지게 써먹고 싶은 충동이 일게 할 정도다.
아스퀴스의 이 대표작이 나온 지 50년 뒤인 지난 2001년에도 같은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이 나온 바 있다. 루퍼트 에버렛, 콜린 퍼스, 주디 덴치, 리즈 위더스푼 등을 기용해 올리버 파커가 만든 2001년작 <비잉 어니스트>는 지극히 연극적인 아스퀴스의 영화와 달리 이런저런 ‘영화적인 시도’를 하려 했으나, 중평을 들어보면 아스퀴스의 영화에서 증명된 영국 연극전통의 힘을 이겨내지 못한 듯하다. 홍성남/ 영화평론가 gnosis88@yahoo.com
The Importance of Being Earnest1952년, 감독 앤서니 아스퀴스출연 마이클 레드그레이브, 조앤 그린우드화면포맷 1.33:1 풀 스크린오디오 돌비디지털 2.0자막 한국어, 영어출시사 한신코퍼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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