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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댑테이션>,찰리 카우프만 [2]

말하자면, <존 말코비치 되기>는 나르시시즘을 동원하여 타자의 욕망 안으로 들어서보는 영화이다. 타자의 육체 속에서 나의 정신은 어떻게 ‘적응’될 수 있는가(개조당할 수 있는가)를 질문한다. <휴먼 네이처>는 강제적인 ‘개조’의 과정을 통해 타자를 ‘적응’해가는 지배논리의 과정을 묘사한다. 그리고 <어댑테이션>은 원작에 ‘적응’하고, 원작을 ‘개조’하면서 이루어지는 거래의 고통을 누설한다. 찰리 카우프만의 시나리오들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거나, 나의 욕망을 타자에 의해 변신시키려는 과정들에 바탕을 둔다. 또는 <어댑테이션>에서 난초와 말벌의 탈영토 과정을 읽어내지 않더라도, 영화 속 인물들은 식물의 ‘적응’ 능력을 감지하고 언급한다. 찰리 카우프만의 인물들이, 혹은 영화적 형식들이 항상 서로 다른 면에 이접해 있거나, 무언가로 ‘되어가고’ 있는 것은 접면에서 욕망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 속의 인물들은 항상 ‘자유를 찾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출구만을 찾는다’. 그 접면 위에서 욕망을 변신시키고, 증식시키고, 도주시키는 것이다. 사실과 허구의 혼재, 인물의 변신, 대상의 바꿔치기는 여기에서 벌어진다. <어댑테이션>에서 찰리 카우프만은 그 욕망의 술래로 소심한 자신을 선택한 것이다.

적응과 개조, 거래의 고통을 누설

찰리 카우프만이 인터뷰에서 제일 잘하는 대답은 “잘 모르겠는데요”이다. 그리고 더 잘하는 대답은 “정말 잘 모르겠는데요”이다. <존 말코비치 되기>가 왜 말코비치냐고 묻는 질문에 그는 명확하지 않은 말로 얼버무린다. <어댑테이션>에서 왜 수잔 올린의 이야기와 스스로의 이야기를 뒤섞었냐는 질문에도 “이유가 있다는 건 알지만 왜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고 답한다. 매체를 상대하는 그의 불편한 태도임은 분명하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찰리 카우프만에게 ‘왜’는 불안이며, ‘무엇’은 영감이고, ‘어떻게’는 혼란이기 때문이다. 찰리 카우프만은 “내 영화 속에서 어떤 결론도 끌어내기를 원하지 않는다. 나는 결론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탐구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고 말할 뿐이다.

할리우드의 ‘단식광대’ 찰리 카우프만의 독특한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호명되는 수많은 작가 중 하나가 카프카다. 그 카프카를 비유적 작가의 수렁에서 건져 넨 알랭 로브그리예는 자신이 주창하는 누보로망의 의미를 묻는 질문들에 이렇게 답했다. “소설가의 모든 비평적 의식은 선택의 수준에서만 작가에게 유익할 수 있을 뿐 그 선택의 정당화의 수준에서 유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어떤 형식을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고 어떤 형용사를 거부하는 것이 필요하고 어떤 방식의 문단을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작가는 자신의 모든 정성을 정확한 단어와 그 단어의 정확한 위치의 완만한 탐구에 기울인다. 그러나 작가는 이 필요성에서 어떠한 증거를 제시할 수 없다. 작가는 사람들이 자기를 믿고 자기에게 신뢰를 보내기를 간곡히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기에게 왜 그 작품을 썼느냐고 물을 경우에 작가는 한 가지 대답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 즉 ‘그것은 내가 왜 그 작품을 쓰고 싶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입니다’.”정한석 기자 mapping@hani.co.kr

찰리 카우프만 인터뷰 “머리를 쥐어짜다 나를 집어넣어 버렸지”

‘은둔자’ 찰리 카우프만은 비협조적인 인터뷰 상대로 악명 높다. 그가 가장 애용하는 답변 문구는 “안 그러는 게 좋겠어요”, “모릅니다”, “그런 의미가 아니었어요”로 알려져 있다.

어느 시점까지 <난초도둑>을 정통적 방식으로 각색하려고 노력하다가 마음을 바꿨나. 영화에 나오는 내력 그대로다. 각색을 시작한 지 4, 5개월쯤 됐을 때 나의 이야기를 집어넣는 해결방식을 찾았다. 영화가 될지 안 될지 모른 채 그냥 완성본을 제출했다.

시나리오 초고를 받아든 제작자 에드워드 색슨의 첫 반응은. 화를 내고 혼란스러워하더니 도널드 카우프만이 대체 누군지, 왜 내가 시나리오 일부를 맘대로 차지했는지 알고 싶어했다. 이 영화가 정말 만들어질 거라고 생각했다면 이렇게 쓰지 못했을 거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과 두번 일했고, <순결한 정신의 영원한 빛>을 찍으면 <휴먼 네이처>의 미셸 곤드리 감독과도 두번 일하는 셈이다. 감독 선택권이 있나. 꼭 그렇진 않다. 내가 프로듀서였던 <휴먼 네이처>는 그럴 수 있었던 유일한 예다. <존 말코비치 되기>는 시나리오 판권을 내가 갖고 있었기 때문에 통제력이 약간 있었다. 하지만 <어댑테이션>은 전혀 영향력이 없었다.

<어댑테이션>은 비평의 해방구에 있는 영화 같다. 그런 의도는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냉소적인 인간들이 아니다. 목표는 사람들을 감탄시키거나 비평가들의 입을 막거나 흥행에 성공하려는 게 아니라 뭔가 의미있는 걸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다음 작품 <순결한 정신의 영원한 빛>은 어떤 내용인가. (현재로서는) 2년간 사귄 여자친구가 기억에서 자기를 지우는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발견한 남자 이야기다. 사실을 받아들이려다 실패한 남자는 자신도 같은 수술을 받는다. 영화의 대부분은 애인의 기억이 역순으로 지워지는 동안 남자의 머릿속에서 진행된다. 삭제가 반쯤 진행됐을 때 아름다운 기억이 많아지면서 남자는 수술 중단을 원한다. 짐 캐리와 케이트 윈슬럿이 출연한다.

머릿속으로 들어가는 주제를 왜 그렇게 좋아하나. 내가 머릿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나는 머릿속에서 산다. 정리 김혜리 vermeer@hani.co.kr

*이상의 문답은 <어니언> <빌리지 보이스> <어바웃닷컴>의 찰리 카우프만 인터뷰에서 발췌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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