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랑루즈>나 <시카고>에 이미 익숙해진 우리에게 1950년대 뮤지컬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을까? 뮤지컬에 사용되는 음악의 장르적 특성에서 완전히 자유로우며, MTV로부터 물려받은 스타일리시한 카메라 워킹으로 귀뿐 아니라 눈까지 완벽하게 사로잡아버리는 우리 시대의 하이브리드한 뮤지컬에 비교해 보았을 때 <상류사회> 같은 작품은 대단히 심심한 ‘드라마’ 정도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50년대 후반, 이미 뮤지컬이 한물간 것이 아닌가라는 그 당시 스튜디오의 근심을 보기좋게 불식시킨 당대 최고의 히트 뮤지컬이기도 하다. 그것은 분명 콜 포터라는 최고의 작곡가가 느긋하게 들려주는 달콤한 러브 송들이 지금에 와서 다시 들어봐도 전혀 색바래지 않는 매력을 과시하고 있다는 것, 스튜디오 시스템하에서 철저하게 대중의 취향을 고려한 ‘장르영화’의 익숙한 매력의 장점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예이기도 할 것이다.
제임스 스튜어트와 캐리 그랜트, 캐서린 헵번이 주연했던 40년대 영화 <필라델피아 스토리>를 리메이크한 <상류사회>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차갑고 도도한 전처 트레이시(그레이스 켈리)를 잊지 못한 채 그녀의 재혼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재즈 뮤지션 덱스터(빙 크로스비) 사이에 나무 토막같은 재혼 상대 조지(존 런드)와 시니컬하고 유쾌한 삼류 기자 마이크(프랭크 시내트라)가 끼여들면서 벌어지는 한바탕 소동이 전부다. 이 진부한 상류층들의 연애놀음을 부드럽게 완화시켜주는 존재는 뭐니뭐니해도 루이 암스트롱과 콜 포터다. 일종의 내레이터 역할을 수행하는 루이 암스트롱의 걸쭉한 음성과 <True Love> <Who Wants to be a Millionaire?> <Well, Did You Evah> 등 콜 포터가 작곡한 귀에 익은 달콤한 곡들이야말로 심심한 스크루볼코미디를 보기 드물게 매력적인 뮤지컬로 환골탈태시킨 셈이다(덧붙이자면 막판에 아주 특별한 재즈 버전의 결혼 행진곡도 들을 수 있다!).
당시 최정상의 인기를 구가했던 배우들의 총집합이라는 점에서도 <상류사회>의 인기는 대단했다고 한다. 스페셜 피처에 수록된 셀레스트 홈(극중 프랭크 시내트라의 동료이자 연인 리즈로 출연했다)의 회고 부분에서 그녀는 ‘이미 왕비 같은 품위를 지니고 있었던 아름다운 그레이스’와 ‘성질이 급하지만 유쾌한 친구였던 프랭크’, ‘느긋하고 편안한 상대였던 빙’에 대해 유머러스하게 들려준다. <상류사회>를 통해 처음으로 함께 공연한 프랭크 시내트라와 빙 크로스비 사이의 긴장감이 트러블을 일으킨 것은 사실이지만(“둘은 마치 커피와 우유처럼 달랐어요”), 그리고 그레이스 켈리 역시 이 영화 이후로 다시는 영화계에 돌아오지 않은 채 모나코의 상류사회로 떠나갔지만, 셀레스트 홈의 기억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50년대 할리우드는 여전히 ‘술과 장미의 나날들’로 충만한 황금의 땅처럼 보인다. 이미 반세기가 지난 시절의 ‘꿈의 공장’의 가장 아름다운 단면을 감상할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제공한다는 면에서도 <상류사회>는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작품이다.
이제 <상류사회>에 이어 거의 동시에 출시되는 3편의 뮤지컬 역시 콜 포터가 음악을 맡았다는 것과 당대의 최고 인기 뮤지컬이었다는 사실을 공유하고 있다. 프레드 아스테어, 진 켈리, 시드 셰리스, 미치 게이너 같은 뮤지컬 스타들이 총출동하여 날아갈 듯 아름다운 춤과 노래로 우리를 도취시키는 <실크 스토킹> <키스 미 케이트> 와 함께 ‘아날로그’ 뮤지컬의 가벼운 매혹에 몸을 맡겨보시길. 김용언 mayham@empal.com
High Society, 1956년감독 찰스 월터스출연 빙 크로스비, 그레이스 켈리, 프랭크 시내트라, 셀레스트 홈화면포맷 아나모픽 와이드스크린 16:9, NTSC 오디오 돌비디지털 5.1 서라운드출시사 워너브러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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